[리뷰] 오직 성악가의 힘만으로…콘서트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서울=뉴시스】 캐슬린 김, 콘서트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루치아. 2017.12.03. (사진 = 아트앤아티스트 제공) [email protected]
신방에서 사랑하지 않는 재력가 신랑 '아르투로'를 막 칼로 찔러 죽인 상황. 이후 약 15분간 '달콤한 그의 목소리'로 요약되는 광란과 착란의 아리아를 부르는 루치아 역의 캐슬린 김은 마치 신들린 듯했다.
뉴욕 메트오페라 스타인 캐슬린 김이 세상에서 오직 홀로 노래하고 있는 것처럼 주변이 잠잠해졌다. 높은 음을 손쉽게 오가는 간드러진 고난도 기교에 다층적인 감정 표현을 얼굴에 한껏 머금은 그녀는 객석을 휘어잡았다.
특히 플루트 선율에만 의치한, 꾀꼬리 같은 절절한 절규는 고요하면서도 어떠한 무대 연출보다 압도적이었다.
스코틀랜드 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불리는 도니제티의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공연기획사 아트앤아티스트가 이 오페라를 2일 밤 롯데콘서트홀에서 콘서트 오페라 버전, 즉 오페라 콘체르탄테 형식으로 선보인 무대는 '목소리가 최고의 악기'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 자리였다.
람메르무어 가문의 루치아와 레벤스우드 가문의 에드가르도는 남 몰래 사랑하는 사이지만 두 젊은이가 각각 속한 가문은 원수 사이다. 결국 엔리코의 계교로 두 젊은 남녀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서울=뉴시스】 김주택, 콘서트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엔리코. 2017.12.03. (사진 = 아트앤아티스트 제공) [email protected]
캐슬린 김을 비롯한 스타 성악가들의 탁월한 노래와 연기가 있어 가능한 것이었다.
루치아 잠옷에 묻은 피를 붉은 꽃을 매달아 표현하는 등 몇몇 장면에서 상징성이 돋보이기는 했지만 오히려 의상, 조명 무대 등이 제대로 갖춰졌다면 집중력이 흐트러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성악가들의 호연 릴레이였다.
한국인 최초로 밀라노 라 스칼라 무대의 주역으로 발탁됐던 테너 박지민이 루치아의 사랑을 받으나 결국 비극으로 생을 마감하는 에드가르도 역을 맡았다.
그는 맑은 미성으로, 루치아와의 사랑과 애꿎은 운명에 설득력과 처연함을 부여했다. 루치아가 죽은 뒤 노래를 부를 때는 감정에 북받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엔리코 역의 바리톤 김주택은 최근 JTBC 4중창 경연 프로그램 '팬텀싱어' 시즌2로 대중적인 성악가가 됐는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활약하며 탄탄한 기본기도 갖춘 그답게 폭발적인 성량으로 무대와 객석을 사로잡았다. 특히 등장할 때마다 일부 객석이 술렁거리기도 했다.
루치아의 가정교사이자 신부인 라이몬도 역의 베이스 박종민도 빼놓을 수 없다.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로 이름을 알린 그는 굵직한 음성은 물론 빼어난 체격 조건으로 존재감을 분명히 했다. 루치아의 유모 알리사 역을 맡은 소프라노 손진희는 튀지 않고도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호세 미구엘 에산디가 지휘한 수원시향 그리고 안양시립합창단은 안정된 기량으로 충분히 제몫을 했다.

【서울=뉴시스】 콘서트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커튼콜. 2017.12.03. (사진 = 아트앤아티스트 제공) [email protected]
최근 안나 네트렙코, 안젤라 게오르규, 디아나 담라우 등 세계적인 디바들이 내한해 성악 열기에 대한 불씨를 지펴놓았는데 최근 베이스 연광철과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독일 가곡의 밤'에 이어 한국인 성악가들로만 꾸려진 이번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거기에 잔뜩 질 좋은 땔감을 쌓아놓은 것과 같은 무대였다.
이날 커튼콜에서는 K팝 스타나 해외 록스타 내한공연 못지않은 환호와 박수가 약 2000석을 꽉 채운 객석에서 우레와 같이 쏟아졌다.
무대 장비를 자제하고 리허설 기간을 단축시켜, 막대한 예산이 드는 정식 오페라보다 제작비를 절감시키면서도 이상의 효과를 내기도 하는 콘서트 오페라의 인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예술의전당이 오는 9일 콘서트홀에서 서울시향과 함께 콘서트 오페라 형식으로 푸치니의 '투란도트'를 선보인다. 미국 스타 소프라노 리즈 린드스트롬이 이날 국내 팬들에게 처음 인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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