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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정판사 지폐 위조사건' 이관술 선생, 재심서 무죄…유족 환호(종합)

등록 2025.12.22 11:2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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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위조 등 혐의로 무기징역 선고받고 처형

재심서 검찰도 무죄 구형

유족 환호…"사법적 과오 외면하지 않겠단 자기선언"

[서울=뉴시스] 법원 로고. (사진=뉴시스DB)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법원 로고. (사진=뉴시스DB)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수정 기자 =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주범으로 몰려 처형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학암 이관술 선생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현복)는 22일 통화위조 등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 선생의 재심 선고기일을 열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재심 대상 판결이 피고인에 대한 유죄 증거로 고시한 증거들 중 주요한 것은 증거 능력이 없고 나머지 증거들은 증거능력이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증거능력이 없거나 증거가치가 없는 증거들을 유죄 판단 근거로 고시한 재심 대상 판결문의 존재 및 기재 내용만으로는 피고인에 대해서 유죄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무죄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최종 판단"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재판부는 무기징역 선고 당시 유죄 증거로 사용됐던 증거 중 혐의를 자백하는 일부 공동 피고인들의 법정 진술 등 불법 구금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증거능력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재심 대상 판결 당시에도 사법경찰관의 인신 구속이 무제한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것이었으며, 유죄 증거는 법령에 의한 적법절차에 따른 것이어야만 한다는 점이 형성된 상태였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따라서 "공동 피고인들의 자백 진술은 수사에 관여한 사법 경찰관들이 자행한 불법 구금 등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서 위법 수집 증거에 해당함이 명백히 인정되므로 모두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했다.

또 일부 제3자의 진술 증거에 대해서는 그 내용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없다며 유죄 증거로서 독자적 의미를 갖기 어렵다고 봤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공범들과 함께 지폐를 위조하고 행사했다는 행위를 했음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자 유족 등이 자리하던 방청석에서는 일제히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왔다. 

재심 청구인인 이 선생 외손녀 손옥희씨는 선고 후 기자회견에서 "할아버지의 인생은 물론이고 모든 가족이 힘들게 살아왔지만 80년 가까이 된 지금 이렇게 대한민국 사법부가 무죄를 내려준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재심 청구인인 외손녀는 이 선생 막내딸의 자녀다. 그의 어머니는 이 선생 자녀 중 유일한 생존자로 전해진다.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는 "오늘의 무죄 선고 판결은 광복 80년 역사를 맞는 대한민국이 과거 국가 폭력과 사법적 과오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자기 선언"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정부는 이 선생의 항일투쟁과 희생, 감옥 안에서도 이어진 교육과 공동체를 향한 헌신, 그리고 오늘 사법부가 선고한 무죄의 의미를 엄중히 받아들여, 이 선생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함으로써 국가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22일 오전 학암 이관술 선생 유족 등이 재판부의 무죄 선고 후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현복)는 이날 통화위조 등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 선생의 재심 선고기일을 열고 무죄를 선고했다.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22일 오전 학암 이관술 선생 유족 등이 재판부의 무죄 선고 후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현복)는 이날 통화위조 등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 선생의 재심 선고기일을 열고 무죄를 선고했다.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이 선생은 일제강점기였던 1930~1940년대 국내 항일 운동에 앞장선 인물로 여러차례 투옥돼 고문을 겪은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다.

그는 광복후 박헌영의 재건파에 합류해 남로당 전신인 조선공산당에서 활동하던 중 조선정판사 지폐 위조 사건으로 체포됐다.

이 사건은 미군정 공보부가 이 선생 등 조선공산당 간부들이 1945년 10월 하순부터 1946년 2월까지 서울 소공동 근택빌딩에 있는 조선정판사에서 6회에 걸쳐 200만원씩 총 1200만원의 위조 지폐를 찍었다고 발표한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 선생은 조선공산당 간부들과 함께 재판에 넘겨져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6·25 전쟁 발발 이후인 1950년 7월 처형됐다.

이후 이 선생 유족은 2023년 7월 수사기관의 불법 구금 등으로 사건이 조작됐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2년 3개월 만인 지난 10월 재심을 결정했다.

이 선생 측 변호인은 재심에서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한다며 "피고인과 공동 피고인들을 불법으로 장기간 구금하고 고문과 가혹행위로 조작한 사건"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 선생 외손녀 또한 "할아버지는 해방 이후 가장 양심적인 지도자로 존중받았는데 파렴치한 위폐범으로 몰렸다"며 "90세인 어머니가 아직도 눈을 못 감고 정의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 15일 이 선생에게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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