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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지역적인 것이 강력한 저항"…'슈퍼볼' 배드 버니가 깬 팝 시장의 불문율

등록 2026.02.15 09: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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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결혼식부터 정전 퍼포먼스까지

슈퍼볼 하프타임 쇼를 '거실'로 만든 연대의 힘

해미시 해밀턴이 설계한 슈퍼볼 노하우, K-팝 심장부서 BTS가 재현

[샌타클래라=AP/뉴시스] 라팁 팝 슈퍼스타 배드 버니가 8일(현지 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의 리바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프로풋볼(NFL) 제60회 슈퍼볼 시애틀 시호크스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경기 하프타임쇼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2026.02.09.

[샌타클래라=AP/뉴시스] 라팁 팝 슈퍼스타 배드 버니가 8일(현지 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의 리바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프로풋볼(NFL) 제60회 슈퍼볼 시애틀 시호크스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경기 하프타임쇼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2026.02.09.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우리는 야만인도, 동물도, 외계인(alien·미국 내 불법체류자 지칭 단어)도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며, 당당한 '아메리칸(Americans)'이다."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리바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제60회 슈퍼볼' 하프타임 쇼는 단순한 스포츠 축제의 막간 공연이 아니었다.

불과 10년 전 푸에르토리코 베가 바하의 '에코노(Econo) 마트'에서 고객의 식료품을 봉투에 담던 청년 베니토 안토니오 마르티네스 오카시오(32), 즉 지금은 라틴팝 슈퍼스타가 된 배드 버니가 영어를 단 한 마디도 섞지 않은 채 미국 보수주의의 심장을 관통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가장 개인적이고 지역적인 것이야말로, 가장 세계적이고 위대한 저항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올해의 앨범' 거머쥔 그래미 영웅

이번 슈퍼볼 하프타임 쇼가 예년보다 더욱 묵직한 무게감을 가졌던 이유는, 불과 일주일 전에 열린 '제68회 그래미 어워즈'의 여운 때문이다. 배드 버니는 앨범 '데비 티라르 마스 포토스(Debí Tirar Más Fotos)(DtMF)'로 비영어권 아티스트 최초로 그래미 최고 영예인 '올해의 앨범'(Album of the Year)을 거머쥐는 파란을 일으켰다.

3년 전 '언 베라노 신 티(Un Verano Sin Ti)'로 후보에만 머물렀던 아쉬움을 털어낸 그는 수상 소감에서 "이민국(ICE)은 물러가라"는 파격적인 발언으로 미국 내 이민자 문제에 불을 지폈다. 그런 배드 버니가 전 미국인이 지켜보는 슈퍼볼 무대 위에 선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정치적 전복'이었다. 그는 시상식에서의 기세를 몰아, 리바이스 스타디움을 거대한 푸에르토리코의 뒷골목과 사탕수수밭으로 치환해버렸다.
[샌타클래라=AP/뉴시스] 라팁 팝 슈퍼스타 배드 버니가 8일(현지 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의 리바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프로풋볼(NFL) 제60회 슈퍼볼 시애틀 시호크스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경기 하프타임쇼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2026.02.09.

[샌타클래라=AP/뉴시스] 라팁 팝 슈퍼스타 배드 버니가 8일(현지 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의 리바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프로풋볼(NFL) 제60회 슈퍼볼 시애틀 시호크스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경기 하프타임쇼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2026.02.09.

명품 대신 '자라(Zara)'

숫자에 숨겨진 내밀한 추모

평소 자크뮈스나 스키아파렐리 등 파격적인 하이엔드 브랜드를 즐기던 배드 버니의 이번 슈퍼볼 하프타임 쇼 패션 선택은 의외였다. 그는 이날 스페인의 패스트 패션 브랜드 '자라(Zara)'의 화이트 슈트를 선택했다. 약 250달러(약 33만 원) 수준의 이 의상은 "나의 예술은 고고한 성에 갇힌 것이 아니라 거리의 사람들과 호흡한다"는 민주적 선언과도 같았다.

또 다른 화제를 모았던 등 뒤의 숫자 '64'는 빌보드 기록, 어머니의 생년 등 팬들의 수많은 추측을 낳았으나, 현지 매체 보도를 통해 과거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하다 세상을 떠난 그의 삼촌을 기리는 번호임이 확인됐다. 가장 화려한 무대에서 가장 사적인 슬픔을 전시함으로써, 그는 거대 담론에 매몰되지 않는 개인의 서사를 증명해냈다. 신발은 그와 오랜 파트너십을 맺어온 아디다스의 협업 모델을 매치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했다.

사탕수수밭과 '정전(正典)'… 무대에 심은 식민의 통증

무대 연출은 치밀하고 날이 서 있었다. 일부 주류 언론이 단순한 '장식용 관목'이라 치부했던 무대 위 식물은 사실 카리브해의 흑인 노예 잔혹사와 미국의 경제적 수탈을 상징하는 사탕수수였다. 배드 버니는 푸에르토리코 소작농의 상징인 밀짚모자 '파바(pava)'를 쓴 남성과 함께 등장해 "라틴계라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라고 일갈했다.
[샌타클래라=AP/뉴시스] 라팁 팝 슈퍼스타 배드 버니가 8일(현지 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의 리바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프로풋볼(NFL) 제60회 슈퍼볼 시애틀 시호크스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경기 하프타임쇼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2026.02.09.

[샌타클래라=AP/뉴시스] 라팁 팝 슈퍼스타 배드 버니가 8일(현지 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의 리바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프로풋볼(NFL) 제60회 슈퍼볼 시애틀 시호크스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경기 하프타임쇼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2026.02.09.

이어 2017년 허리케인 마리아 당시 참상과 정부의 무능을 비판한 곡 '정전'(El Apagón)이 울려 퍼질 때, 댄서들은 전기 노동자 복장을 하고 등장했다. 이는 지금도 빈번한 정전으로 고통받는 푸에르토리코인들의 실존적 위기를 전 세계에 타전한 것이다. 무대 곳곳에 놓인 소박한 흰색 플라스틱 의자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고향에서 밀려나는 서민들의 일상을 대변하는 슬픈 메타포였다.

실제 결혼식과 리키 마틴…연대의 힘으로 뚫은 편견의 벽

공연의 정점은 허구가 아닌 실제 커플의 무대 위 결혼식이었다. 배드 버니를 자신들의 결혼식에 초대했던 푸에르토리코 출신 팬들은 역으로 그의 무대에서 평생의 서약을 맺었다. 배드 버니가 이들의 혼인 신고서에 증인으로 서명하는 장면은, 이민자들을 '불법'과 '외부인'으로 규정하려는 시선에 맞서 '가족'과 '사랑'이라는 가장 원초적이고 강력한 공동체의 가치를 전시한 것이었다.

여기에 90년대 라틴 팝의 선구자 리키 마틴의 합류는 상징적이었다. 과거 정체성을 숨기고 주류 시장의 기호에 맞춰야 했던 라틴 팝 선배가 후배 옆에서 퀴어 댄서들과 함께 '두려움 없는 사랑'을 노래하는 모습은 라틴 음악사의 세대교체이자 인권의 진보를 상징하는 명장면이었다. 이어 등장한 미국 팝스타 레이디 가가 역시 배드 버니의 곡 '바일레 이놀비다블레(Baile Inolvidable)'에 맞춰 춤을 추며 이 '다양성의 축제'에 힘을 보탰다. 제시카 알바, 카디 비, 카롤 G 등 라틴계 유명 인사들도 대거 게스트로 힘을 실었다.
[샌타클래라=AP/뉴시스] 라팁 팝 슈퍼스타 배드 버니가 8일(현지 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의 리바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프로풋볼(NFL) 제60회 슈퍼볼 시애틀 시호크스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경기 하프타임쇼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2026.02.09.

[샌타클래라=AP/뉴시스] 라팁 팝 슈퍼스타 배드 버니가 8일(현지 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의 리바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프로풋볼(NFL) 제60회 슈퍼볼 시애틀 시호크스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경기 하프타임쇼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2026.02.09.


"증오보다 강력한 것은 사랑"…저항의 끝에 핀 꽃

공연이 끝나갈 무렵 전광판을 수놓은 '증오보다 더 강력한 유일한 것은 사랑'(The only thing more powerful than hate is love)이라는 문구는 이번 퍼포먼스의 완벽한 마침표였다. 이는 단순한 격언이 아니라, 언어적 차별과 이민 정책의 압박 속에서도 자신의 언어와 문화를 지켜낸 자만이 내뱉을 수 있는 승전보였다.

공연 직후 소셜 미디어와 현지 커뮤니티는 그야말로 카타르시스의 용광로였다. 단순히 "신나는 공연이었다"는 감상을 넘어, 수십 년간 미국 사회의 비주류로 살아온 라틴계 이민자들의 설움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는 분석이다.

특히 X(옛 트위터)와 틱톡 등에서는 "내 영어가 서툰 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걸 베니토가 증명했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동부 LA의 한 멕시코계 청년은 "영어를 못하는 할머니가 슈퍼볼을 보며 눈물을 흘리시는 건 처음 봤다. 우리들의 거실이, 우리들의 언어가, 미국에서 가장 비싼 광고판에 걸린 느낌"이라고 적었다.

과거 루이스 폰시 '데스파시토(Despacito)' 열풍이 저스틴 비버라는 영어권 스타의 피처링에 빚졌다면, 배드 버니는 순수 스페인어만으로 빌보드와 슈퍼볼을 점령했다. 이는 "성공하려면 영어 앨범을 내야 한다"는 팝 시장의 오랜 불문율을 깨뜨린 사건이다. 향후 라틴 아티스트들은 '미국화''라는 타협 없이도 자신의 모국어로 주류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거대한 교두보를 확보하게 됐다.

배드 버니가 열어젖힌 문으로 '제2의 라틴 침공'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멕시코의 전통 음악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코리도스 툼바도스(Corridos Tumbados)' 장르의 페소 플루마(Peso Pluma) 등이 차트를 휩쓸고 있는 현상이 이를 증명한다. 레게톤에 국한됐던 라틴 팝의 저변이 멕시칸 리저널, 바차타 퓨전 등으로 확장되며, K-팝과 더불어 미국 시장을 다양화하는 가장 강력한 장르적 세력이 될 것이다.
[샌타클래라=AP/뉴시스] 라팁 팝 슈퍼스타 배드 버니가 8일(현지 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의 리바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프로풋볼(NFL) 제60회 슈퍼볼 시애틀 시호크스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경기 하프타임쇼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2026.02.09.

[샌타클래라=AP/뉴시스] 라팁 팝 슈퍼스타 배드 버니가 8일(현지 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의 리바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프로풋볼(NFL) 제60회 슈퍼볼 시애틀 시호크스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경기 하프타임쇼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2026.02.09.

이번 슈퍼볼 하프타임 쇼가 국내에서도 주목한 이유 중 하나는 영국 출신 쇼 감독 해미시 해밀턴(Hamish Hamilton)이 때문이다. 글로벌 슈퍼 K-팝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내달 광화문 광장에서 펼치는 컴백 라이브 '아리랑(ARIRANG)'의 연출을 그가 맡는다. '라이브 이벤트의 제왕'으로 통하는 해밀턴은 2010년 '더 후(The Who)'의 공연을 시작으로 거의 매년 슈퍼볼 하프타임쇼의 연출을 맡아왔다. 미국 힙합 거물 켄드릭 라마와 함께 미국 사회의 균열과 힙합의 정점을 시각화하며 '예술적 선언'을 일궈냈던 인물로 이번 배드 버니 하프타임 쇼 역시 그가 참여했다.

7만 관중석을 배경으로 쓰는 대신, 그라운드 위에 보데가(식료품점), 사탕수수밭, 거리의 벤치 등을 배치해 '푸에르토리코의 일상'을 다큐멘터리처럼 구현했다. 화려한 폭죽이나 드론 쇼 대신, 해밀턴의 카메라는 춤추는 노인, 실제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 땀 흘리는 댄서들의 표정을 집요하게 클로즈업했다. 이는 거대한 스타디움을 '거실'처럼 보이게 만든 마법이었다.

해밀턴은 서울의 심장부 광화문에서 펼쳐질 방탄소년단의 완전체 컴백 무대를 어떻게 그릴까. 업계는 슈퍼볼의 노하우가 집약된 'K-스케일'의 결정판을 예상한다. 해밀턴은 공간의 맥락을 중시한다. 배드 버니 슈퍼볼 하프타임 쇼 무대에서 사탕수수를 세웠듯,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과 뒤편의 경복궁을 배경이 아닌 '무대의 일부'로 적극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배드 버니가 '뿌리'를 이야기한 것처럼,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인 아리랑을, 가장 보편적이고 거대한 사랑으로 치환할 것으로 보인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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