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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문도, 편지도 AI에"…글쓰기를 외주화한 사람들[사유의 위기②]

등록 2026.02.15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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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 글쓰기, 생성형 AI에 맡기는 젊은 세대

"고민할 필요 없다"…편리함 뒤엔 사유의 퇴행

전문가 "말하기 교육 등 대안 필요" 지적

[AP/뉴시스] '챗GPT' 앱 아이콘. (사진=뉴시스DB) 2026.02.15. *재판매 및 DB 금지

[AP/뉴시스] '챗GPT' 앱 아이콘. (사진=뉴시스DB) 2026.02.15.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다솜 김윤영 기자 = #1. 연인과 크게 싸운 뒤 20대 여성 백모씨는 복잡한 심경에 빠졌다. 머릿속에는 서운함과 미안함이 뒤섞였지만 메신저 창에 칠 수 있는 말은 마땅치 않았다. 평소 회피 성향이 있는 데다 말솜씨가 좋은 남자친구를 상대하기엔 늘 논리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백씨는 메신저 창 대신 챗GPT를 켰다. 현재 상황과 전달하고 싶은 핵심 내용, 사과의 뜻을 상세히 입력하자 인공지능(AI)은 몇 초 만에 논리적이고 세련된 문장들로 구성된 장문의 메시지를 내놓았다. 백씨는 이를 복사해 남자친구에게 보냈다. 백씨는 "내가 직접 쓴 것보다 훨씬 전달력이 좋고 정돈된 느낌이라 마음이 편했다"고 했다.

#2. 미디어 업계에 종사하는 28세 직장인 이모씨도 상사에게 보낼 반성문을 AI에게 맡겼다. 업무 일정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 펑크를 낼 뻔한 데 대해 AI 도움을 받아 최대한 객관적이고 정중한 톤으로 반성문을 작성했다. 의외로 마음은 편했다. 감정이 뒤섞이지 않은 문장이었고 불필요한 사과나 변명도 걸러졌다.

이씨는 "상사도 AI가 쓴 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며 "오히려 감정 소모 없이 상황을 정리할 수 있어 안도감이 들었다"고 했다.

그 후 이씨는 보고 메일을 쓸 때도 AI를 자주 활용하게 됐다. 초안을 적어 넣은 뒤 '가독성 좋게 정리해 달라', '겨울이라 감기 조심하시라는 안부 인사도 덧붙여 달라'고 요청하면 몇 초 만에 여러 버전의 문장이 생성된다. 이씨는 "내 말보다 AI가 더 정중하다"고 말했다.

사과·보고·고백까지…일상 글쓰기 파고든 AI

생성형 AI가 대학 과제나 리포트를 넘어 일상적 글쓰기 영역까지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직장 상사에게 보내는 사과·보고 메일, 관계를 정리하는 장문의 메시지, 연인에게 보내는 화해 문장까지 AI에 상황을 설명하고 문장 작성을 요청하는 방식이 일상화되는 모습이다.

취업 준비생 박모(26)씨는 "친구에게 거절 메시지를 보내야 할 때, 직설적으로 말하기 어려워 AI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보통 1차 초안을 직접 쓴 뒤 맞춤법과 어투를 점검받는다. 박씨는 "말투가 공격적으로 들릴까 불안할 때 AI가 정돈해 준 문장을 보면 심리적 안정감이 든다"고 했다.

공공기관 인턴인 안모(27)씨 역시 AI를 '사회생활용 문장 생성기'로 적극 활용한다. 최근 안씨는 팀장의 결혼 소식에 축하 메시지를 보낼 때도 챗GPT를 찾았다.

안씨는 "조직 내 위치에 맞게 정중하면서도 결례가 없는 최선의 문장을 AI가 만들어준다"며 "나보다 예의범절에 더 밝은 AI 덕분에 감정 소모를 해야 할 무의미한 상황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꼽은 AI 활용 이유는 '감정 소모 최소화'와 '시간 절약'이다. 특히 사과문, 해명문, 관계 정리 메시지처럼 감정 노동이 필요한 글일수록 AI 의존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사용자들 사이에선 "어차피 형식적인 글인데 굳이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도 퍼지고 있다.
[보스턴=AP/뉴시스] 지난해 1월 21일(현지 시간) 미국 보스턴에서 한 사용자가 컴퓨터로 인공지능(AI) 챗봇 챗GPT를 사용하고 있다. 화면 앞에는 챗GPT를 개발한 오픈 AI 로고가 스마트폰 화면에 떠 있다. 2026.02.15. *재판매 및 DB 금지

[보스턴=AP/뉴시스] 지난해 1월 21일(현지 시간) 미국 보스턴에서 한 사용자가 컴퓨터로 인공지능(AI) 챗봇 챗GPT를 사용하고 있다. 화면 앞에는 챗GPT를 개발한 오픈 AI 로고가 스마트폰 화면에 떠 있다. 2026.02.15. *재판매 및 DB 금지


사유의 증발…"AI 글쓰기엔 '내 목소리' 없어"

그러나 글쓰기 외주화가 심화하면서 '사유의 증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글을 쓰는 과정은 단순히 문장의 생산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며 자기 내면을 성찰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과문을 쓰는 일은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관계를 정리하는 메시지는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는 훈련이 된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째로 AI에 맡길 경우 자기 성찰과 사유 능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글쓰기는 본래 부담스러운 행위다. 잘 쓰고 싶은데 쉽지 않으니까 고민이 되는 것"이라며 "그런데 요즘은 '이거 좀 써줘' 하면 AI가 금방 결과물을 내놓고 그걸 활용할 수 있게 됐다. 편하게 글을 쓰려는 선택인 셈”이라고 진단했다.

문제는 도구의 사용 여부가 아니라 사고 과정까지 통째로 AI에 위임하는 방식에 있다. 신 교수는 "AI를 활용했다고 상대에게 밝히지 않으면서, 마치 자기 생각인 것처럼 제출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진심이 온전히 담긴 글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도구로 활용하는 것과, 나를 대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자신의 목소리가 들어가지 않은 결과물을 편하고 쉽다는 이유로 내놓는 것은 '나를 AI로 대체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AI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스스로 글을 완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광고 기획자 박모(28)씨는 키워드만 던지면 결과물이 나오다 보니 단어를 고르고 문맥을 고민하며 사고를 확장할 기회가 줄었다. 박씨는 "이제는 AI의 도움 없이는 완성도 있는 글을 쓰기 어렵고, 혹시나 내 문장이 결례가 되진 않을지 불안감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대학 교육과 시민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텍스트 위주의 평가는 수강생과 평가자 모두 AI를 활용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전달하는 말하기 능력을 함양하는 방향으로 교육을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말하기는 AI가 온전히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자신의 능력을 성장시키고 증진하고 싶다면 힘든 과정을 돌파해야 한다. 교육이 존재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면서 "AI 시대일수록 무엇을 스스로 해내야 하는지 더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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