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을 넘자 발동한 본능…탈출 늑대 '늑구'가 열흘간 멀쩡했던 진짜 이유[사이언스 PICK]
'간헐적 포식' 최적화된 위장 구조와 케토시스 대사 전환이 핵심 비결
수만년 축적된 늑대 특유의 야생 본능과 생존 매커니즘 그대로 보존
향후 사육 동물의 관리 및 야생 적응 연구에 중요한 지표 될 듯
![[대전=뉴시스]사육장에 있는 늑구 모습. 2026. 04. 1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4/14/NISI20260414_0002110290_web.jpg?rnd=20260414104417)
[대전=뉴시스]사육장에 있는 늑구 모습. 2026. 04. 1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인간의 보살핌에 길들여져 있던 늑구는 어떻게 야생에서 건강을 유지했을까.
늑구의 생존은 우연이나 기적이 아닌, 수만년간 포식자로 군림해 온 늑대 특유의 '생태적 하드웨어'와 '대사 가소성'이 빚어낸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축제-기근 오가는 위장…2주 단식은 거뜬한 '간헐적 포식자'
세계적인 늑대 생태학의 권위자 L. 데이비드 메크 박사의 저서 '늑대 : 멸종 위기종의 생태와 행동(The Wolf: The Ecology and Behavior of an Endangered Species)'에 따르면 늑대는 매일 사냥에 성공하지 못하는 환경에 최적화되도록 진화했다.
야생의 늑대는 보통 5일에서 10일 주기로 사냥에 성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늑대의 위는 한 번에 자기 체중의 약 15~20%(개체에 따라 그 이상도 가능)에 달하는 고기를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신축성이 뛰어나다. 30~40㎏ 정도의 성체 늑대는 한 번의 식사로 약 9㎏ 이상의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늑구 또한 사육 환경에서 매일 먹이를 공급받아 왔지만, 위장의 신축성과 기아를 견디는 유전적 각인은 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늑구가 체중이 30㎏에 달하는 성체 수컷이라는 점, 탈출 전날 먹이로 생닭 2머리를 섭취한 점 등도 생존 가능성을 키웠을 가능성이 크다.
국제늑대센터(International Wolf Center) 또한 늑대가 물만 있다면 최대 2주 이상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건강한 활동이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히 국제늑대센터는 ‘축제 아니면 기근(feast or famine)’이라는 용어가 늑대와 같은 대형 포식자들의 식단을 지칭한다고 강조했다. 먹잇감이 항상 풍부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늑대는 먹이가 부족할 때 오랫동안 지방과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신진대사를 가지고 있다. 이 덕분에 한번에 대량의 고기를 먹는 ‘축제’를 벌일 수 있고, 이후 거의 2주가량 아무것도 먹지 않는 ‘기근’이 찾아와도 버틸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결국 늑구에게 열흘이라는 시간은 생물학적 한계치에 다다른 극한의 상황이라기보다, 진화적으로 충분히 통제 가능한 범위 내의 공복 기간이었던 셈이다.
![[더럼=AP/뉴시스]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에 있는 생명과학 박물관에서 붉은 늑대 한쌍이 서로 기대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2019.05.13.](https://img1.newsis.com/2019/12/26/NISI20191226_0015930247_web.jpg?rnd=20200609154650)
[더럼=AP/뉴시스]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에 있는 생명과학 박물관에서 붉은 늑대 한쌍이 서로 기대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2019.05.13.
포식자 특유의 '케토시스'…근육은 지키고 지방만 태운다
포유류의 신체는 탄수화물(글리코겐)이 고갈되면 체지방을 분해해 '케톤체(Ketone bodies)'를 생성하는 대사 모드, 즉 '케토시스(Ketosis)' 상태로 진입한다.
일반적인 동물은 이 과정에서 근육 단백질이 먼저 파괴되기도 하지만, 늑대와 같은 상위 포식자는 근육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체지방을 우선적으로 연소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미국 옐로스톤 늑대 프로젝트(Yellowstone Wolf Project)의 분석에 따르면, 단식 중인 늑대는 기초 대사량을 능동적으로 조절하며 사냥이나 도주에 필요한 폭발적인 근력은 그대로 유지한다.
늑구가 열흘 가까이 인간의 수색망을 피해 야산을 누빌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생화학적 방어 기제가 작동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늑구의 생존력을 뒷받침하는 또다른 실증 데이터는 포획 후 실시된 X-레이 검사에서 드러났다. 대전 오월드 동물병원 검진 결과 늑구의 위 안쪽 깊숙한 곳에서 낚싯바늘과 생선 가시, 나뭇잎 등이 발견된 것이다. 이는 늑구가 단순히 굶으며 버틴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먹이 활동을 전개했음을 시사한다.
늑대는 직접 사냥뿐만 아니라 동물의 사체나 인간이 남긴 음식물을 섭취하는 '기회주의적 포식자(Opportunistic Feeder)'의 특성도 지닌다. 늑구가 발견된 안영 나들목(IC) 인근이나 이동 경로에 포함된 하천 주변에서 버려진 생선 혹은 낚시 미끼 등을 섭취하며 최소한의 열량을 보충했을 가능성이 크다.
비록 양질의 먹이는 아니었으나, 이러한 잡식성 포식 습성은 늑구가 급격한 체력 저하 없이 열흘간의 '도심 적응'에 성공하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늑구가 사육장 밖으로 나간 이후 수만년간 축적된 '스캐빈저(사체 청소부)'로서의 유전자가 활성화된 것으로 보인다.
![[대전=뉴시스] 지난 8일 오월드를 탈출했던 늑구가 17일 안영IC 인근 수로에서 마취총을 맞고 포획된 뒤 오월드에서 진료를 받고 있다. (사진=대전시 및 오월드 제공) 2026.04.1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4/17/NISI20260417_0002113261_web.jpg?rnd=20260417045437)
[대전=뉴시스] 지난 8일 오월드를 탈출했던 늑구가 17일 안영IC 인근 수로에서 마취총을 맞고 포획된 뒤 오월드에서 진료를 받고 있다. (사진=대전시 및 오월드 제공) 2026.04.1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기회주의적 생존력'과 '행운의 비'
늑구가 탈출한 기간 대전 지역에 내린 비는 늑구에게 천만다행인 '생명수'가 됐다. 늑구 구조 현장에 있었던 김정호 청주동물원 팀장은 "비가 오면서 웅덩이가 고였고, 늑구가 이동했던 뿌리공원 근처에도 강이 있어 물 공급에 큰 문제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늑대는 수분만 충분하다면 몇 주까지도 견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충분한 수분 섭취는 체내 대사 노폐물을 배출하고 체온을 조절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늑구가 포획 당시 다소 야위긴 했으나 맥박과 체온이 정상 범위였던 것은 외부로부터 수분을 지속적으로 섭취하며 체내 지방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했음을 의미한다.
현재 늑구는 내시경을 통해 위 속의 낚싯바늘을 성공적으로 제거하고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오월드 측은 늑구의 원기 회복을 위해 소 장기 등 고단백 식단을 제공하며 정밀 모니터링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사건은 동물원에서 태어나 자란 개체일지라도 수만 년간 축적된 늑대 특유의 야생 본능과 생존 메커니즘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번 사건을 통해 확보된 데이터는 향후 사육 동물의 관리 및 야생 적응 연구에 중요한 지표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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