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기고]근거도 논리도 없는 간호법 비난…이건 폭력이다

등록 2023.01.06 14:03:58수정 2023.01.06 17:27:45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서울=뉴시스]한양대학교 간호대학 탁영란 교수. (사진= 대한간호협회 제공) 2023.01.06

[서울=뉴시스]한양대학교 간호대학 탁영란 교수. (사진= 대한간호협회 제공) 2023.01.06

[서울=뉴시스]  한양대학교 간호대학 탁영란 교수

근거(根據)란 타당함을 설득하기 위한 도구 내지 방법을 말한다. 논리(論理)란 주장과 근거를 연결시켜주는 이론적 의미를 뜻한다. 하지만 최근 의사단체의 한 임원이 한 보건의료전문지 매체에 '간호법 제정의 불합리성과 문제점'이란 제목으로 기고한 글을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근거와 논리도 없이 간호법을 두고 “근거와 논리가 전혀 없는 외침”이라고 일방적인 주장을 하고 있어서다.

이 글의 요지는 이렇다. “간호법은 간호사만을 위한 법이고, 간호법은 간호조무사를 통제하기 위한 법이며,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보건의료정보관리사, 응급구조사 등 다른 보건의료인력의 업무를 침탈하기 위한 법이자 간호사가 단독으로 진료와 개원을 하기 위한 법이고, 보건의료직역 간 갈등만 일으키는 이기적인 법”이다. 이 글만 보면 간호법은 결코 제정해서는 안되는 ‘악법 중의 악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간호법에는 앞서 언급한 주장에 근거가 될 수 있는 조문이 단 한 구절도 없어서다.

의사는 역사적·사회적으로 엘리트이자 전문가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신학, 법학과 함께 의학의 역사도 오래됐다. 무엇보다 의사의 ‘말’과 ‘행동’은 국민의 건강에 매우 중대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환자는 의사의 ‘말’과 ‘행동’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에 따라 삶과 죽음이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의 ‘말’과 ‘행동’에는 매우 높은 윤리의식과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이유다. 의사들도 이를 잘 알기에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는다.

그런데 간호법에 대한 그들의 주장은 이른바 ‘아무 말 대잔치’다. 근거에 기초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철칙이어야 할 의사가 간호법에 대해서 만큼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막말’을 쏟아낸다. 만약 간호법이 ‘법인(法人)’이나 ‘사람(人)’이었다면 그들은 벌써 명예훼손죄로 고발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간호법’은 현 시점에서 아직 법률(法律)로 확정되지 않은 ‘법안(法案)’이자 ‘정책(政策)’이여서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참 안타깝고 씁쓸하다. 하지만 의사들의 주장이 잘못됐고, 근거가 없다는 주장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의료계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수 없고,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 근거 없는 주장은 사실에 기반을 둔 주장을 이길 수 없다. 그런데 보건의료 분야에서 다른 직역, 특히 간호사에 대한 의사들의 비이성적이고 몰상식한 행태는 합리적인 정책 논의의 장을 파괴하는 비민주적·폭력적 행위다. 국민으로부터는 오직 ‘밥그릇 지키기’에만 혈안인 집단으로 인식될 뿐이다. 의사들은 ‘간호법이 악법’이라고 주장하지만 당장 우리 주변 국가만 보아도 일본, 중국, 대만에 간호법이 있고, 우리보다 훨씬 일찍 현대적 의료제도가 성립된 미국, 영국, 독일, 캐나다, 호주에 모두 간호법이 있다. 그리고 간호법이 존재하는 그 어떤 국가도 보건의료체계에 혼란이 발생하거나 문제가 되는 사례는 전혀 없다. 오히려 그 나라의 보건의료 발전과 국민의 보편적 건강보장에 기여하고 있다.

왜 우리나라의 간호법은 수십여 년 동안 ‘보건의료 질서를 붕괴시키는 악법’으로 폄하 받아야 하는 것인가? 아무리 외쳐도 대답 없는 메아리 같지만, 간호법은 간호사 만을 위한 법이 아니다. 간호조무사를 통제하기 위한 법도 결코 아니다. 국민 건강을 위해 이 시대 필요한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 간호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법이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간호법안 그 어디에도 다른 보건의료 직역의 업무나 권익의 침탈이 가능하다는 조문은 없다. 보건의료체계의 혼란과 직역 간 충돌은 개별 법령을 무시한 병원 운영과 업무지시에서 비롯되는 것일 뿐 아직 제정되지도 않은 간호법 때문은 아니다.

우리나라 의사들이 진정한 ‘의권’과 ‘자율성’을 얻고 싶다면 선진국과 같이 먼저 국민으로부터 믿음과 사랑을, 같이 일하는 보건의료 직역의 신의부터 얻기를 바란다. 과거 의사집단은 보건의료계의 맏형을 자처했지만 지금 대한민국 의사집단은 그저 철밥통을 꼭 끌어안고 뺏기기 싫어하는 어린아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급변하는 의료환경 속에서 지속 가능한 건강하고 안전한 미래를 위해 이 시대의 히포크라테스가 되어주길 기대한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