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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혜의 인사이트] 20년 쓴 이통사 바꾸면 통신비 부담 줄어들까요

등록 2024.03.24 08:10:00수정 2024.03.24 08:4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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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 '번호이동' 가입자 위한 '전환지원금' 시행

'이통사간 가입자 뺏기 경쟁' 활성화 노림수

고가 요금제 써야 최대치…단골 가입자에게도 차별

[서울=뉴시스] 심지혜 기자= 한 이동통신 매장에서 통신사 이동 지원금이 지급되고 있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서울=뉴시스] 심지혜 기자= 한 이동통신 매장에서 통신사 이동 지원금이 지급되고 있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서울=뉴시스]심지혜 기자 = 정부가 가계 부담을 덜어줄 방법 중 하나로 단통법(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폐지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다만 법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국회 논의를 거쳐야 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전에라도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시행령을 고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생긴 것이 ‘전환지원금’이라는 제도입니다. 가입 이통사를 바꾸면서 휴대폰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공시지원금을 받으면 추가로 최대 50만원까지 주는 지원금입니다.

쉽게 말해 이통사를 갈아타면 이통사를 안 바꾸는 사람보다 최대 50만원을 더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금액 제한은 있지만 단통법 시행 이전처럼 이통사간 가입자 뺏기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여유를 준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공시지원금 변경 주기를 주 2회에서 매일 한 번으로 줄였습니다. 과거처럼 각 사별 정책에 따라 자유롭게 지원금 경쟁을 하라는 것입니다.

정부는 공시지원금에 전환지원금, 이에 대한 유통망 추가지원금까지 받으면 갤럭시S24를 구매하는 데 드는 부담이 사실상 없어지는 수준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없던 혜택 만들었는데…소비자 반응도 시큰둥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시장 반응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당장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는 전환지원금을 10만~13만원 수준으로 발표했습니다. 전환지원금이 모든 휴대폰에 제공되는 게 아닌 각 사별로 주는 단말기가 다르고, 고가 요금제를 써야만 최대로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가장 인기가 있는 모델은 갤럭시S24인데 여기에 전환지원금을 주는 곳은 KT 뿐이었습니다. 아이폰15 프로 모델도 있었지만 이는 출고가 자체가 높아 지원금을 받아도 할인 효과를 보기엔 역부족입니다.

소비자들의 반응도 냉랭했습니다. 기존엔 없던, 추가된 혜택인데도 소비자들은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실제 번호이동 수치를 살펴보면 전환지원금 지급 이전과 이후 주말에는 변화가 없다시피 했습니다. 일부 휴대폰 집단상가나 성지점에 가입자들이 쏠렸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통사를 옮기는 가입자가 많지 않았던 것입니다.

가입 이통사를 유지하면서 휴대폰만 바꾸는 기기변경을 하는 게 더 낫다고 본 것 같습니다. 돈을 조금 더 받을 수는 있지만 이통사를 바꿀 정도의 기회비용을 충족한다고 보지 않은 것이죠.

실제 제 주변에는 월 8만원짜리 요금제를 월 4만3000원만 내고 쓰는 지인이 있습니다. 선택약정에 가족결합할인을 받아 실제로 내는 요금이 절반 수준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이렇게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굳이 10만원을 더 받자고 이걸 포기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만약 약정 기간인 2년으로 친다면 그는 대략 96만원의 할인 혜택을 포기하고 옮겨야 합니다. 게다가 2년 후에도 혜택이 주어진다는 보장이 없고, 또 그 때 원하는 휴대폰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굳이 몇 만원에 이런 모험을 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기자만 해도 2001년도부터 한 이통사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단통법 시행 이전에는 불법 보조금을 주는 소위 '성지점'을 찾지 못해 기기변경을 했고, 이후에는 자급제 단말기와 선택약정을 이용했습니다. 현재는 가족결합으로 묶어 별도의 할인을 받고 있습니다. 전환지원금이라는 추가 혜택이 생겼지만, 기자 입장에선 20년 단골 이통사를 버릴 만큼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동통신 3사를 비롯한 7개 방송통신사업자에 대해 105억6470만원의 과징금과 시정명령 처분을 결정했다. 방통위는 사업자가 초고속인터넷과 유료방송서비스를 결합 판매하면서 이용자들에게 차별적으로 경품을 제공해 전기통신사업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해 이와 같이 결정했다. 이동통신 3사는 지난 2020년 단말기유통구조법(단통법) 위반 이후 2년 만에 과징금 제재를 받았다. 사진은 16일 서울시내 한 휴대폰 할인매장 앞의 모습. 2022.06.16. jhope@newsis.com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동통신 3사를 비롯한 7개 방송통신사업자에 대해 105억6470만원의 과징금과 시정명령 처분을 결정했다. 방통위는 사업자가 초고속인터넷과 유료방송서비스를 결합 판매하면서 이용자들에게 차별적으로 경품을 제공해 전기통신사업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해 이와 같이 결정했다. 이동통신 3사는 지난 2020년 단말기유통구조법(단통법) 위반 이후 2년 만에 과징금 제재를 받았다. 사진은 16일 서울시내 한 휴대폰 할인매장 앞의 모습. 2022.06.16. [email protected]


이통사도 계산기 두드려 보니 '마이너스'…동참 꺼려

이통사는 왜 이렇게 밖에 전환지원금을 안줬을까요. 일단 아직 단통법이 유지되고 있다 보니 가입 유형을 차별하지 않고 기기변경이나 번호이동, 신규가입 모두에 동일한 지원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정부가 예시로 든 갤럭시24를 기준으로 따져본다면, 공시지원금 50만원에 전환지원금 50만원을 추가로 주게 되면 이통사는 총 100만원을 써야 합니다. 이 경우 대개 10만원짜리 요금제 6개월 유지하는 것을 조건으로 겁니다.

단통법이 없다면 기기변경 가입자에게 안주고 100만원을 다 번호이동에 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지금은 기기변경 가입자도 줘야 합니다. 기기변경 가입자는 그냥 50만원만 줘도 계속 유지되니, 이통사 입장에선 그냥 기존 가입자가 나가지 않게 막는 게 효율적인 상황인 겁니다.

또 지원금을 받지 않는 소비자에게는 요금의 25%도 할인(선택약정)해 줘야 합니다. 단통법이 없던 시절에는 없던 혜택입니다.

게다가 이동통신 시장은 포화 상황입니다. 뺏기 경쟁을 해서 늘어나는 구조가 아닌, 뺏고 뺏기는 구조인 것입니다. 돈을 쓴다고 해서 이익이 늘어난다고 볼 수 없으니 돈을 쓰지 않는거죠.

무엇보다 전환지원금은 이통사가 떠맡아야 하는 재원입니다. 공시지원금은 이통사와 제조사가 함께 부담합니다. 플러스가 아닌 제로썸 싸움에 홀로 참전해야 하니 나가고 싶지 않은 거죠. 결과적으로 휴대폰 제조사의 배만 불리는 정책이라고 본 것은 아닐까요.

한 이통사 대표는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은 상당한 재무적 부담을 안게 되는 상황입니다. 좋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고 부정적인 측면도 있는데, 그런 부분을 좀 논의를 해서 이렇게 검토하는 과정이 있었으면 하는 그런 아쉬움을 갖고 있습니다."

이동통신 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의 전환지원금 수준으로는 가입자들의 이동을 유인하는 효과가 현저히 떨어집니다. 지난 10년 동안 가입자를 뺏어오는 전략보다 수익 극대화 전략으로 방향을 전환한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다한 비용 지출이 도움이 된다고 보지 않고 있다. 이런 행태는 계속 유지될 겁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도 “3사 모두 양질의 가입자를 모으는 게 낫지, 과거처럼 단순하게 가입자 몇 늘리는 게 회사 가치에 도움이 안 된다고 인식하고 있을 겁니다. 또 어느 한 회사가 지원금을 좀 올린다고 해도 쉽게 따라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기 비용만 더 늘어나고 수익은 떨어진다고 생각하니까요”라고 했습니다.
[서울=뉴시스] 정부가 2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생활규제 개혁) 사후 브리핑에서 단말기 유통법 폐지를 발표했다. (사진=심지혜 기자)

[서울=뉴시스] 정부가 2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생활규제 개혁) 사후 브리핑에서 단말기 유통법 폐지를 발표했다. (사진=심지혜 기자)


가입자 차별로 누구만 휴대폰 싸게 샀던 과거

과거에는 스마트폰 성능이 눈에 띄게 발전했고, 이동통신 데이터 속도가 빨라지면서 텍스트 위주에서 이미지, 영상 중심으로 이용 행태가 달라졌습니다.

이뿐 아니라 제조사도 지금보다 다양했습니다. 이통사도 가입자 유치가 필요했고, 제조사도 판매량을 늘려야 해 각각 마케팅 경쟁을 벌여야 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통사가 엄청난 과징금을 각오하면서까지 ‘0원 폰 대란’을 일으킬 정도였으니까요.

0원 폰은 그냥 나온 게 아닙니다. 모두에게 0원이 아니었으니까요. 가입 유형에 따른 차별이 심각했습니다. 기기변경 가입자는 혜택이 없다시피 했고 번호이동이나 신규가입에만 지원금이 쏠렸습니다.

이통사가 아무런 계산 없이 지원금을 대거 실은 게 아닙니다. 정보가 없는 이용자에게는 제 값을 다 받았습니다. ‘호갱’이란 말이 이 때 나왔습니다.

그리고 휴대폰 가격도 지금만큼 비싸지 않았습니다. 지원금을 많이 줬지만, 당시 기준으로 고가 요금제 가입 조건도 붙였습니다. 잘 따져보면 이통사는 손해보는 장사를 한 게 아니었습니다.

제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만 해도 휴대폰 교체 주기가 2년이 채 안됐습니다. 덕분에 판매량도 늘었죠.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자 정부가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게 단통법입니다. 소비자를 속여 가입자를 차별하지 말고, 불필요한 스마트폰 교체를 하지 말자는 취지였습니다. 이에 더해 단말기 지원금을 받지 않으면 요금을 할인해 주는 혜택도 만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엄청난 욕을 먹었습니다. ‘단지 통신사를 위한 법’, ‘모두가 휴대폰을 비싸게 사게 하는 법’이라는 비난을 받았죠. 2014년 10월부터 시행된 이 법은 10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단통법은 10년동안 이동통신 시장에 많은 변화를 가지고 왔습니다. 단통법 이전 월 100만건을 심심찮게 넘던 번호이동 수치는 절반 이하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50만건이 넘는 것도 많다고 할 정도니까요. 대신 기기변경 비중이 확 늘었습니다.

이 틈을 타고 알뜰폰이 성장했습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대비 요금이 확실하게 저렴하니 단말기 값을 할인 받지 않아도 가계통신비를 아낄 수 있다고 본 것이죠.

단통법 10년의 세월 동안 세상이 이렇게 변했는데, 전환지원금 50만원 제도가 생겼다 해서 갑자기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요.
[서울=뉴시스]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주재로 통신3사, 제조사 간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삼성전자 노태문 사장, LGU+ 황현식 대표, 방통위 김홍일 위원장, SKT 유영상 대표, KT 김영섭 대표, 애플코리아 안철현 부사장. (사진=방통위 제공)

[서울=뉴시스]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주재로 통신3사, 제조사 간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삼성전자 노태문 사장, LGU+ 황현식 대표, 방통위 김홍일 위원장, SKT 유영상 대표, KT 김영섭 대표, 애플코리아 안철현 부사장. (사진=방통위 제공)


"가입자 차별, 고가 요금제 가입 유도"…진짜 혜택일까

전환지원금이 최대 50만원으로 오르면 소비자들의 가계통신비 부담이 정말 내려갈까요. 최대로 혜택을 받는 만큼 고가의 요금제를 써야 합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인 만큼 이통사도 고가 요금제 가입을 요구하겠죠. 아무리 6개월만 유지하면 된다고 하지만, 일례로 5만원대 요금제 가입자가 휴대폰 공짜로 받겠다고 10만원 요금제를 쓰면 그 기간 동안 요금은 30만원이 올라갑니다.

전환지원금이 기존에 없던 혜택일 수는 있는데, 고가 요금제 가입을 유도하고 또 과거와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휴대폰 구매를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요.

또 이통사간 경쟁을 활성화 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반대로 정부가 번호이동을 조장하는 것으로 보여질 수도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정부가 나서 가입자 차별을 유도하고 있다는 비판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오랜 기간 한 통신사를 애용해온 가입자, 충성고객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구조가 되니까요.

최근 한 휴대폰 매장 점주는 매장을 방문한 이상인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에게 "번호이동 가입자에게만 지원금이 나오는데, 가입 이통사를 오래 유지하는 소비자에게는 많이 손해인 것 같습니다. 번호이동뿐 아니라 기기변경에도 지원금을 많이 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장사하는 우리에게도 좋고 소비자들도 많이 좋을 것 같습니다"고 말했습니다.

매장에 있던 손님도 거들었습니다. "어느 가게는 더 싸고, 어느 가게는 비싼 게 아니라 전국적으로 어딜 가든지 소비자들이 공통적으로 혜택을 누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건의는 정부가 추진하는 방향과는 어긋납니다. 이들이 전체 유통망이나 소비자 모두를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현장에서는 이같은 의견이 존재한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죠.

방통위는 이에 대해 '공시지원금'으로 해명했습니다. 이통사가 기존 가입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공시지원금을 높이는 방법을 쓰고 있다는 겁니다. 최근 전환지원금 지급에 앞서 갤럭시S24 공시지원금을 높인 것도 이러한 의도였다는 겁니다.

한편, 김홍일 방통위원장은 전환지원금 시행 8일차에 SK텔레콤·KT·LG유플러스를 비롯해 삼성전자, 애플 등 제조사 사장들과 간담회를 갖고 정부의 가계통신지 절감 정책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이통사는 물론 삼성전자까지도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물론 전환지원금은 이통사가 부담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제조사가 판매장려금이나 공시지원금에 동참하고 있는 만큼 이 재원을 확대함으로써 이통사 부담을 줄여 전환지원금이 늘어날 수 있게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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