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안동 출신 권오을 국회 사무총장

다음은 권오을 사무총장과 일문 일답
-국회 본회의에서 95%에 육박하는 역대 최고 동의를 받고 제25대 국회사무총장으로 취임했다. 취임한지 1년이 지난 지금, 그간의 활동을 소개해 달라.
"제25대 국회사무총장으로 취임한지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열린국회, 현장국회, 소통국회'를 목표로 노력하고 있다. '열린국회'를 위해 주차장 시스템을 개선하고 방문자센터 운영을 확충했다.
국회의 주인은 국민이다. 국민이 좀 더 편하고 가깝게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현장국회'를 위해 지역현안해결을 위한 입법지원 간담회를 여러 차례 개최하고 있다.
각 지역 국회의원이 주최하고 국회 법제실 직원들이 현장에 계신 국민의 목소리와 전문가들의 입법제안을 듣고 현장에서 법률적 검토보고를 해주고 있다. 쉽게 말해 찾아가는 서비스인 셈이다.
작년 8월부터 10개월간 대구 북구, 군위·의성·청송, 김천, 영양·영덕·봉화·울진 등 경북지역을 포함해 서울, 경기, 강원, 호남, 영남 등 13개 지역을 찾아 지역민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소통국회' 실현을 위해서는 국회 홈페이지 개선과 모바일 국회 등 다양한 준비를 하고 있다. 또 대한민국 국회에서 서울 G20 국회의장회의가 개최돼 세계의회 지도자간 소통의 장으로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또 조용하지만 내실있는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시설확충 등 하드웨어에 신경을 많이 썼지만 소프트웨어 개선으로도 더 많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예를 들면 보다 높은 수준의 입법지원 활동을 펼치기 위해 입법 심의관 및 조사관등의 검토보고서에 실명을 기입하도록 하고 전결 권한을 대폭 하양 조정해 직원들의 책임과 권한을 강화했다.
이러한 활동으로 국회가 편하고 좋은 직장이기 보다는 자랑스럽고 보람있는 직장이 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아울러 지역간 불균형 해소를 위해 지방우대발전정책의 일환으로 채용인원의 30%까지 '지방인재 채용목표제'를 도입했다. 앞으로도 보다 치밀하고 과감한 소프트웨어 개선을 통해 더 나은 국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경북도당 도의원이자 3선 국회의원이며 국회사무총장으로 그간의 정치경력이 화려하다. 정치에 임하는 개인적인 철학은 어떤 것인가.
"학창시절 황석영의 장길산을 재미있게 읽었다. 책의 말미에 '미륵이 일어나 춤추는 세상'이라는 말이 나온다. 모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에 입문하며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서민이 따뜻한 세상, 부자가 자유로운 세상, 국민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정치철학이라 할 수 있다.
또 정치는 기본적으로 '봉사의 길'이다. 국민 속에서 국민과 함께 국민을 편안하게 모시는 것이다. 내 정치의 시작이 서민이었다. 나도 서민이었고 내 주변 대다수가 서민이었다.
정치를 하며 그래도 편하게 전화 한통 할 수 있는 정치인, 소탈하게 소주 한잔 나눌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정치인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실제, 2년간 쉬면서 서민들과 함께 했다. 밖에서 보니 서민 경제가 너무나 어려웠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무상급식, 반값등록금'에 대한 국민의 요구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 실제 너무 어렵고 힘들기 때문이지 이것을 포퓰리즘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 서민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실현 가능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 앞으로도 그런 마음으로 일할 생각이다."
-국가와 고향 안동시민을 위해 때가 되면 쌓아온 정치 경험을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하셨다. 내년 총선출마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 말씀해 달라.
"부모가 자식을 키우면 자식이 성장해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도리라 생각한다. 나는 안동시민이 키운 사람이다. 34살 도의원부터 39살 국회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할 수 있게 한 것은 잘 성장해 지역과 국가를 위해 봉사하라는 뜻으로 새기고 정치를 해왔다.
12년간 여러 상임위와 위원장으로 원내 활동을 해왔고 경북도당 위원장 등 당내에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경험도 쌓아왔다. 시민들이 허락해야 할 일이지만 지역과 나라를 위해 내 역할을 다할 생각이다.
최근에 지역을 찾아 시민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내 불찰이기도 하지만 풀지 못한 오해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지역 발전을 위한 의견도 많이 듣고 있다. 앞으로 안동의 발전을 위해 '물 산업, 문화산업, 농축산업'에 대한 비전을 마련할 생각이다.
덧붙여 경북도청이전은 도의원시절부터 현재까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추진해왔던 일이다. 안동으로의 경북도청 이전을 맞아 경북지역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다.
개인적으로도 정치를 시작하며 꿈꾸던 것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내 꿈, 안동 그리고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자 한다."
-안동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동안 지역을 위해 했던 일을 소개해 달라.
"안동을 대표해 도의원, 국회의원으로 17년을 일했다.
일하면서는 업적에 대해 잘 알리지 못했다. 하지만 쉬는 동안 권오을이 한 일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셨다. 그래서 최근에는 내 자랑도 하고 다닌다. 가장 큰 업적은 경북도청이전이 아니겠는가.
도의원시절 경북도청이전 특별위원회 위원이었다. 또 국회의원 12년 동안 경북도청이전을 주도했었다.
당시에는 각 지역 국회의원이 불개입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적극 홍보하지 못했다. 하지만 실제로 도청이전 초창기부터 예천과의 컨소시엄으로 확정 발표되기까지 내 손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가장 큰 성과로 생각한다.
또 2000년 1월 신년 인사회에서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을 주창했다. 이후 안동시장과 함께 브랜드완성을 위해 노력했고 현재의 안동 브랜드가 만들어 진 것이다. 우리 안동을 대외적으로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명칭이라 생각한다. 그만큼 안동의 이미지가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국가사업은 어떤 사업이든 짧게는 4~5년 길게는 10년 이상이 걸린다. 최근에 안동에서 펼쳐지는 사업의 대부분이 내 현역시절 시작됐거나 준비되었던 일들이다. 요즘 안동에 가보면 알려지지 않은 것도 많고 일부 왜곡된 부분도 좀 있다. 이제는 허심탄회하게 안동시민들께 알리고 싶다."
-현재는 기관장 신분이다. 잠시 떠나있는 동안 안동에 기여한 부분이 있는가.
"지난 해 안동은 구제역으로 너무나 힘들었다. 축산업뿐 아니라 지역경제 전반에 어려움을 가져왔다.
대표적인 청정지역인 안동에 외지인의 발길이 끊기면서 시장, 관광지, 숙박업, 식당 등 안동시민 모두가 힘들었다.
구제역의 피해를 극복하기위해 외지인의 왕래가 절실한 시점이었다. 이 때문에 직능경제인단체총연합회, 시민단체네트워크, 재경안동향우회를 설득해 안동희망 프로젝트로 4000여 명의 '희망구매 사절단'을 결성해 안동을 찾았다.
1회성 행사이긴 했지만 100여 대의 버스와 4000여 명의 안동방문은 구제역통행금지 해제의 메시지를 전국에 전파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 구제역 보상이 지연돼 관련 위원회와 행정부처에 의견을 제시했다. 예산이 부족해 보상이 지연되는 것은 말이 되질 않는다. 먼저 발생한 축산농가부터 지급을 해줘야 한다고 몇 번을 찾아가고 전화를 했다.
게다가 현장에서 상부의 지시로 살처분 작업을 하던 공무원들이 목측한 부분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합당한 보상을 위해 그간 쌓아둔 인적네트워크로 지역에 일이 생기면 언제고 찾아가 따지고 있다.
안동은 도청이전 사업이 큰 이슈이다. 하지만 관련 법안이 상임위에 계류되면서 보상절차를 마무리 짓지 못해 사업 전체가 지연될 위기에 놓인 적이 있었다. 우윤근 법사위 위원장, 여야 간사와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 등을 서너 차례 직접 찾아가 진심어린 마음으로 설득하고 설명했다.
결국 '경북도청이전을 위한 도시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은 2011년 4월4일 상임위를 전격적으로 통과하고 4월5일 대표연설 후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기관장 신분이라 안동과 떨어져 있지만 늘 안동시민과 소통하고 안동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다. 또 크고 작은 문화행사를 국회방송에 소개하는 등 안동을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앞으로도 안동을 위한 일에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끝으로 안동시민들께 하고 싶은말은.
"안동에서 오랜 기간 정치를 해왔다. 그러다보니 17대를 마감하던 시점에 실제 사실과 다른 오해들이 난무하고 나 역시도 많이 지친 상태였다.
처음에는 설명하지 않아도 다 밝혀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근거 없는 비방이 재생산되는 모습에 참 많이 힘들었다. 또 조금 지쳐있는 내 모습을 바라보는 민심은 정확했다.
낙천하고 미국 스탠포드에서 생각을 많이 정리할 수 있었다. 이후 백수로 지내며 안동시민, 주변 지인들과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마음을 터놓고 잘한 일도 못한 일도 가리지 않고 솔직하게 대화했다.
혼나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면서 진심으로 듣고 말하며 소통했다. 국회사무총장이 되어서도 주말에 안동을 찾아 안동시민으로 돌아가 많은 이야기들을 허심탄회하게 나누고 있다.
최근 들어 이런 소탈한 모습을 공감하고 내 정치의 진정성을 재평가 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다. 그리고 그동안 정치인으로 열심히 한 모습, 안동을 대표하며 단 한번도 부정비리로 거론되지 않았던 모습, 서민의 모습으로 서민과 소통하던 모습을 평가해주시는 것이라 생각하고 더욱 정진해나갈 것이다.
신도청시대에 더 큰 안동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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