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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 남산봉수대 고려시대 축조 확인

등록 2011.09.19 12:17:59수정 2016.12.27 22:4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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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뉴시스】박희송 기자 =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기관인 울산문화재연구원은 19일 부산 기장군 남산 봉수대 유적의 발굴조사를 통해 남산 봉수대의 주요시설인 연대뿐 아니라 봉수군을 보호하기 위한 토석혼축의 방호벽, 봉수대로 통하는 문지, 봉군들의 숙소나 창고 용도의 건물지 등 부속시설을 확인했다. 사진은 부산 기장 남산 봉수대. (사진=문화재청 제공)  photo@newsis.com

【대전=뉴시스】박희송 기자 =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기관인 울산문화재연구원은 19일 부산 기장군 남산 봉수대 유적의 발굴조사를 통해 남산 봉수대의 주요시설인 연대뿐 아니라 봉수군을 보호하기 위한 토석혼축의 방호벽, 봉수대로 통하는 문지, 봉군들의 숙소나 창고 용도의 건물지 등 부속시설을 확인했다. 사진은 부산 기장 남산 봉수대. (사진=문화재청 제공)  [email protected]

【대전=뉴시스】박희송 기자 =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산52번지 '남산 봉수대'가 봉수대 발굴 유적 중에서 가장 오랜된 것으로 밝혀졌다.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기관인 (재)울산문화재연구원(원장 이겸주)은 부산 기장군 남산 봉수대 유적의 발굴조사를 통해 남산 봉수대의 주요시설인 연대뿐 아니라 봉수군을 보호하기 위한 토석혼축의 방호벽, 봉수대로 통하는 문지, 봉군들의 숙소나 창고 용도의 건물지 등 부속시설을 확인했다고 19일 밝혔다.

 남산 봉수대의 축조시기가 명확하게 기록된 사료는 없으나 최초로 남산봉수대라는 명칭이 나타난 사료는 조선 초기 기록인 '경상도지리지(1425)'다. 

 따라서 그 이전 고려시대부터 남산봉수대가 있어 왔을 것으로 막연히 추측돼 왔었다.

 그런데 이번 발굴조사 중 봉수대 하부 퇴적층에서 고려청자편이 확인됨에 따라 막연한 추측이었던 '남산봉수대의 고려시대 초축'이 사실로 밝혀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초축시기가 고려시대까지 소급된다는 것은 남산 봉수대가 지금까지 발굴·조사된 봉수대 중에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이번조사에 초축흔적 외에 연기를 피우던 시설인 연소실, 연기를 올리시는 시설인 연대(煙臺), 부속건물지 등에서도 2~3회의 개수(改修)·개축 흔적이 드러났다.

 이러한 초축, 개축 흔적들을 통해 남산봉수대의 탄생부터 소멸까지의 역사를 '고려시대 축조(985년)→조선시대 세종 때 정비(1446)→임진왜란 때 소실→재축→조선시대 말 폐기'로 어느 정도 구체화 할 수 있게 됐다.

 당초 지표상에 드러난 봉수대는 연기를 올리는 시설인 연대(煙臺)의 일부(직경7m, 높이 4.5m)만 드러낸 상태였으나 현재까지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봉수대의 규모는 방호벽 직경 14m, 연대 높이 5m, 둘레 220m다.

 이런 규모는 지금까지 경상도지역에서 발굴·조사된 봉수대 중에 가장 큰 것이다.

 현재의 타원형의 평면, 방형의 연소실 구조는 조선 말 폐기되기 직전의 형태로 추정된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봉수대의 주요시설인 연대뿐 아니라 적의 침탈이나 맹수의 습격으로부터 봉수군을 보호하기 위한 토석혼축의 방호벽, 봉수대로 통하는 문지(門址), 봉군들의 숙소나 창고로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건물지, 연대로 올라가는 오름시설 등의 다양한 부속시설 확인됐다.

 이런 다양한 부속시설을 갖춘 남산봉수대 모습은 조선시대 문헌에 보이는 연변 봉수대의 전형적인 형태다.

 특히 부속건물지에는 기단부, 벽체, 초석, 온돌시설 등이 확인됐으며 지금까지의 봉수대 발굴조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잔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또 건물지의 규모가 7.5m×4.1m(정면 3칸, 측면 1칸)인데, 규모에서도 지금까지 조사된 연변봉수대 중에 가장 크다.

 이와 함께 현재의 건물지 아래층에서 이전 시기의 건물지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렬·기단, 유물 등이 확인됐는데 수습된 유물 중에는 고려시대의 대표적 유물인 어골문기와와 고려청자 등도 있어 가장 최하층 건물지는 고려시대의 건물지일 가능성이 높다.

 고려시대 봉수대의 부속건물은 지금까지 남한에서 확인된 예가 없으므로, 이번 발굴조사는 고려시대의 봉수대 부속건물지의 최초 발굴사례로 주목된다.

 이번 조사에서는 비상시에 사용하는 연조 시설을 확인하지 못했는데 연조는 현재 발굴조사지역 외곽에 위치할 가능성이 높다.

 또 봉수대 주변의 능선부에서 기와편들과 건물의 기초로 추정되는 석재 등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에 봉수대와 관련된 시설이 추가로 묻혀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정확한 봉수대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봉수대 주변지역에 대한 추가 발굴조사가 필요하다.

 현재 발굴조사(종료일 9월30일)가 종료된 후에는 발굴결과를 토대로 남산봉수대가 정비·복원될 예정이다.

 남산 봉수대는 조선시대 연변 봉수대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으므로 이번 남산봉수대의 정비·복원이 모범적으로 이뤄진다면 향후 연변 봉수대 정비·복원사업에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기장 남산 봉수대는 연변(해안) 봉수대 중에는 가장 큰 규모의 봉수대였음이 확실하다"며 "지금까지 발굴된 남한의 봉수대 중에 가장 규모가 크고 양호한 형태로 남아있는 봉수대"라고 밝혔다.

 관계자는 이어 "기장 남산봉수대는 조선시대 연변 봉수대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어 향후 조선시대 연변봉수대 연구에 매우 중요한 학술적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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