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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저리나는 구멍찾기, 그녀의 첫 섹스…부희령 ‘꽃’

등록 2012.05.30 19:55:35수정 2016.12.28 00:4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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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꽃 (부희령 지음·문학동네 펴냄)  “여자가 기대했던 분홍빛 구름 같은 첫 섹스는 없었다. 기억나는 것은 진저리나는 구멍 찾기뿐이었다. 남자에게도 첫 경험인 섹스였으므로,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여자의 거웃과 살덩이들을 헤집었다. 거의 해부학적인 관심에 가까운 탐구였다.” (‘꽃’ 중)  200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어떤 갠 날’로 등단한 소설가 겸 번역가 부희령(48)씨가 첫 소설집 ‘꽃’을 펴냈다.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꽃 (부희령 지음·자음과모음 펴냄)

 “여자가 기대했던 분홍빛 구름 같은 첫 섹스는 없었다. 기억나는 것은 진저리나는 구멍 찾기뿐이었다. 남자에게도 첫 경험인 섹스였으므로,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여자의 거웃과 살덩이들을 헤집었다. 거의 해부학적인 관심에 가까운 탐구였다.” (‘꽃’ 중)

 200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어떤 갠 날’로 등단한 소설가 겸 번역가 부희령(48)씨가 첫 소설집 ‘꽃’을 펴냈다.

 세상에 대한 독특한 시각과 함께 현실의 서정성과 잔혹함을 절묘하게 배합하는 부씨 특유의 화법을 압축한 단편 7편이 실렸다.

 지켜지지 않을 약속의 장소이자 꿈에 불과한 ‘화양’이라는 장소에 대한 동경을 그린 ‘화양’, 감정이 돈과 교환될 수 있으리라는 위악의 어조로 ‘관계’를 이야기하는 ‘머니 익스체인지’, 자기 안에서 개화하는 육체적 여성성에 관한 소녀의 성장 기록 ‘꽃’ 등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밟히거나 누군가를 밟지 않는 날이 고작 일요일 하루뿐임을 비유적으로 풀어낸 ‘팔월의 월요일’, 철거가 예정된 집에서 갑작스럽게 나가야 하는 주인공의 불안했던 청춘을 다룬 ‘어떤 갠 날’, 자기의 치부와 상처에 눈감고 그것을 타인에게 숨겨야만 삶이 가능한 사람들의 이야기 ‘사다리 게임’, 이상과 현실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간극과 불가항력적 운명의 비극을 깨닫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소재로 한 ‘정선, 청령포’ 등도 수록됐다.

 이들 소설 속 세계 주인공의 삶은 하나같이 그악스럽고 비루하다. 욕정의 쓰레기통이라 비난 받는 가족이 있는 남자와 이혼녀와의 만남, 이혼녀라는 꼬리표와 빚보증을 잘못 서 생계를 위해 보험 일을 하는 여자, 자본주의의 생리에 환멸을 느껴 위악적으로 부당한 관계를 지속하는 여자 등 현실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이면의 모습을 가감 없이 까발린다.

 특히, 표제작 ‘꽃’이 이런 단면을 여실히 드러낸다. 섹스에 대한 남녀의 기대와 의미가 다르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는 이 소설은 성관계라는 것이 성(性)에 대한 각기 다른 이해관계의 교환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문학평론가 김미정(37)씨는 “이것들은 모두, 우리네 생과 세계의 맨얼굴에 대한 충분한 르포로 읽히기도 한다”며 “그들의 불행과 고뇌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 그 불가항력적 출구 없음에 대한 탄식을 피하기 어렵다”고 읽었다.

 “삶의 맨얼굴을 이야기하는 소설들, 날것의 현실이 어떤 위장도 판타지도 없이 거울처럼 비춰지는 순간들은 때때로 당혹스럽다”면서도 “물론 이 이야기들은 결코 르포가 아니다. 그럼에도 르포에 가까운 리얼한 현실들이 조금의 타협도 없이 구체적으로 부감되는 것은, 근래 소설들을 떠올려볼 때 퍽 드문 것이기도 하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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