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살인을 업으로 하는 60대 노부인, 구병모 장편소설 ‘파과’

“방역업을 시작한 뒤로 삶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 아닌 현재멈춤형이었다. 그녀는 앞날에 대해 어떤 기대도 소망도 없었으며 그저 살아 있기 때문에, 오늘도 눈을 떴기 때문에 연장을 잡았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작가 구병모(37)씨가 새 장편소설 ‘파과’를 펴냈다. 첫 장편 ‘아가미’, 소설집 ‘고의는 아니지만’을 통해 상상력을 뽐낸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도 범상치 않은 여주인공을 탄생시킨다. ‘청부살인을 업으로 하는 60대 노부인’이다.
열다섯 살에 더부살이하던 당숙의 집에서 쫓기듯 나온 주인공 ‘조각’은 ‘류’를 만나며 그들의 언어로 ‘방역’이라 부르는 청부살인업에 뛰어 든다. 그리고 지난 40년 동안 수많은 표적을 실패 없이 처리하며 업계의 대모의 자리에 올랐다.
“이제 와서 타인의 눈 속에 둥지를 튼 공허를 발견하고 생겨나는 이 연민이라니, 살과 뼈에 대한 새삼스러운 이해라니. 노화와 쇠잔의 표지가 아니고서야 이런 일관성 없음이라니.”(176쪽)
하지만 작가는 프로페셔널 킬러 ‘조각’이 아닌 애완동물 밥을 주는 것도 잃어버릴 정도로 세월을 쌓은 노부인 ‘조각’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작품은 무정하고 냉혹하게 자신을 단련해온, 희로애락에 무감했던, 철저한 단절과 고독 속에 살아온 ‘조각’의 노년을 다룬다.
“사라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 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332~333쪽)
환갑을 넘긴 ‘조각’은 버려진 늙은 개를 데려다 키우고, 폐지 수집하는 노인의 손수레를 정리해주며, 의뢰인의 눈에서 슬픔과 공허를 읽는다. 청부살인 과정에서 입은 상처를 치료해주고 정체를 눈감아준 ‘강 박사’에게 남다른 감정도 품는다. 작가는 새삼스레 마주하는 감정 앞에 당혹스러워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이 순간 그녀는 깨지고 상하고 뒤틀린 자신의 손톱 위에 얹어놓은 이 작품이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그것은 진짜가 아니며 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332쪽)
‘으깨진 과일’을 뜻하는 제목 ‘파과(破果)’는 소설의 후반부 으깨진 인생이라도 살아내겠다는 주인공 ‘조각’의 모습을 통해 ‘빛나는 시절’, ‘파과(破瓜)’로 변주된다. 그리고 작가는 묻는다. “마지막까지 대출혈 자폭 서비스. 그래서 당신의 결론은 破果입니까 破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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