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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자, 고객이 무섭다①]갑질 고객…서러운 감정 노동자

등록 2015.11.01 05:00:00수정 2016.12.28 15:5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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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고범준 기자 =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로 인한 격리 관찰자가 하루 사이에 150여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박원순 서울시장이 5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120 콜센터를 찾아 메르스대책 점검 상황을 받았다. 사진은 120콜센터 직원들이 업무하는 모습. 2015.06.05.  bjko@newsis.com

【서울=뉴시스】배현진 기자 = "이딴 거 너나 먹어" "표정이 왜 그모양이야" "니까짓게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짜증은 예사고 폭언은 덤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음료도 집어던진다. 이유도 모르는 채 '죄송하다'는 말을 자동 반복한다.

 '표정이 우울'해서 누군가에게 사과해야만 시대. 서비스 과잉에 감염된 한국 사회의 민낯이다.

 주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른바 '감정 노동자'. 이들에 대한 고객의 '갑질'이 좀처럼 사라지지않고 있다. 오히려 국민들을 공분케하는 '고객갑질' 사례는 더욱 빈발한다.

 백화점 의류매장 점원의 뺨을 때린 40대 여성 고객. 최근에는 30대 여성이 백화점 귀금속 매장 여직원 두명을 무릎 꿇리고 폭언을 퍼붓는 장면 등. 이를 보고 국민들은 들끓었다.

 하지만 주변의 '고객갑질'은 오늘도 여전히 존재한다. 독버섯 처럼 우리사회 곳곳에서 혐오스런 머리를 내밀고 있는 것이다.  

  ◇손만 '까딱까딱'…기분 상한다고 음료수 내던지기도

 광화문의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근무하는 이모(22·여)씨는 "손님들 중에는 서빙하는 사람을 아랫사람 취급하고 막대해도 된다고 여기는 이들이 종종 있다"며 "반말은 물론 은연중에 무시하는 말투로 얘기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말문을 뗐다.

 그는 "30~40대 여성 손님들은 매장 온도부터 종업원의 표정, 행동, 음식 맛과 플레이팅까지 예민하고 꼼꼼하게 반응한다"면서 "가장 응대하기 힘든 층"이라고 하소연했다.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에 자칫 소홀하게 대답했다가는 갈등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에 직원 입장에서는 조심할 수 밖에 없다.

 유명 카페 체인점에서 바리스타로 근무중인 김모(32·여)씨도 갑질 고객 사례를 묻는 질문에 잠시 생각할 틈도 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는 "다짜고짜 동료에게 '표정이 왜 이렇게 우울하냐'고 화내는 40대 여자가 있었다"며 "고객이 불만을 제기하면 무조건 사과하라고 점장님으로부터 얘기를 들은 터라 모든 직원들이 그 손님한테 죄송하다고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40대 여성 손님은 결국 점장 사과를 받고서야 잠잠해졌다.

 김씨는 "심지어 어떤 아주머니는 음료가 맛없었던지 '이딴거 너나 먹으라'고 동료에게 음료잔을 내던지기도 했다"며 "얼마 뒤 동료는 일을 그만뒀다"고 전했다.

 김씨는 "이렇게 인간적으로 무시당하면서까지 일해야 하나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면서 심적 부담감을 토로했다.

 3개월간 편의점에서 일했던 김모(23·여)씨도 할 말이 많다.

 그는 "스스로 자주 가게에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들어오자마자 담배 상표만 말하거나 담배 진열대를 향해 손짓만 한다"며 "그럴 땐 그냥 알아서 꺼내줘야 한다. 종이 따로 없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XX년' 남발…돈으로 타인 인격 사려 해   

 판매 등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탓에 자기 감정과는 무관하게 고객들을 '대접'해야 하는 사람은 전국 추산 총 800만명. 

 그 중 전화를 이용해 고객들을 접해야 하는 콜센터 직원 등은 언어폭력에 항시 노출돼 있다. 면대면 접촉이 아니다 보니 조금만 감정이 상한다 싶으면 'XX년' 등 욕설을 퍼붓기 일쑤다.

 여행사에서 예약 업무를 담당하는 김모(33·여)씨도 "'못 알아 처먹냐'는 말부터 씨X년, 미X년 등의 욕설을 듣다 동료들 앞에서 펑펑 울어버렸다"고 고백했다.

 김씨는 "취소 규정을 벗어나 막무가내로 환불해달라는가 하면 소비자보호원에 신고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갑질 고객들이 문제"라며 "그들은 서비스를 이용하는게 아니라 받으려는 생각이 강하다. 대다수가 사회적 지위가 있거나 돈 좀 있다 싶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나마 김씨 회사에서는 성희롱 발언 혹은 두 번 이상 욕설을 들으면 고객만족팀으로 즉각 전화를 돌리도록 하고 있다. 폭언에 노출된 일선 상담사들을 위해 회사가 나서곤 있지만 최소한의 조치에 그친 탓에 딱히 만족스럽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울면 좀 풀릴때도 있지만 정 속상하면 퇴근하고 술로 달래요. 어떨 땐 낮에 겪었던 일이 꿈에 나와서 잠을 설치기도 하고요. 가끔 고객을 법적으로 고소하는 상상을 하죠. 물론 그럴 수 없지만..."

 김씨는 "업무 스트레스에 진상 고객까지 당장이라도 회사를 박차고 나가고 싶지만 앞으로가 막막해 매번 그냥 접었다"고 착잡한 심정을 드러냈다.

 취재현장에서 만난 감정노동자들은 "고객이 무서워 제대로 대꾸 한 번 못했다"고 했다. 울컥 치솟는 서러움을 눌러담으며 그들이 말했다.

 "어쨌든 친절해야하잖아요."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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