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리뷰] 10년이 흘렀는데도 뭉클…헌정공연 '작곡가 이영훈'

등록 2018.02.28 09:05:26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서울=뉴시스】 이영훈, 작곡가. 2018.02.20. (사진 = 영훈뮤직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영훈, 작곡가. 2018.02.20. (사진 = 영훈뮤직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작곡가 이영훈(1960~2008)의 노래는 경험이다. 청중은 그의 노래를 듣는 걸 넘어 공유하게 된다. 이영훈의 삶 나아가 그와 동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은 고인의 동반자(同伴者)가 된다.

27일 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펼쳐진 이영훈 10주기 헌정공연 '작곡가 이영훈'은 고인의 수많은 동반자들이 한데 모여 희망을 나눈 자리였다.

추모라는 타이틀은 붙지 않았다. 분명 고인을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자리였지만, 그가 남긴 음악적 유산을 애틋함이 뒤섞인 기쁨으로 나누는 자리였다. 각계각층 남녀노소 3000명이 객석을 가득 채웠고, 무대 위에도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은 물론 배우·현대무용 안무가 올랐다.

2011년 초연한 버전의 뮤지컬 '광화문연가'에서 이영훈을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인 '상훈' 역을 맡았던 윤도현이 이날 공연의 포문을 열었다. '광화문연가'는 이영훈의 곡들을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윤도현은 이영훈이 대중음악 작곡가로서 본격적인 시작인 이문세 3집 '난 아직 모르잖아요'(1985)와 '휘파람'을 들려줬다.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이 연주한 '옛사랑'은 팝 발라드의 개척자로 통하는 이영훈의 멜로디 작곡 능력이 얼마나 출중했는지를 새삼 느끼게 했다. 한영애는 '광화문연가'에 이어 '빗속에서'를 들려줬는데, 블루스 풍의 이 곡은 한영애의 솔풀한 음성에 적확했다.지난 초연과 달리 최근 새롭게 개작된 뮤지컬 '광화문연가'에 출연한 배우 차지연은 걸출한 가창력으로 '애수'를 들려줬다.

가수가 아닌 이들은 몸과 목소리로 또 다른 이영훈을 떠올리게 했다. 현대무용가 김설진은 '시를 위한 시'의 멜로디에 몸을 실었다. 멜로디 못지않게 작사 능력도 인정받는 이영훈의 작품 중에서도 노랫말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곡이다.

음성 대신 자막으로 가사가 흐르고 마치 몸으로 그 가사를 다시 쓰는 듯한 김설진의 유려한 몸짓이 인상적이었다. 이병헌은 역시 애틋한 가사로 유명한 '기억이란 사랑보다'를 중후한 보컬로 들려줬다.

【서울=뉴시스】 뮤지컬 '광화문연가' 2011년 초연 버전. 2018.02.27. (사진 = 뉴시스 DB)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뮤지컬 '광화문연가' 2011년 초연 버전. 2018.02.27. (사진 = 뉴시스 DB) [email protected]

이와 함께 박정현과 김범수 등 가창력으로 손꼽히는 이들이 이영훈의 노래를 멋스럽게 재해석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영훈의 페르소나로 통한 이문세의 무대는 그 자체로 감격을 선사했다. 이영훈의 감성이 육화(肉化)된 것이 이문세의 보컬이다.

이날 본 공연 마지막곡이었던 '그녀의 웃음소리뿐'은 그 절정에 있다. 짐짓 비장한 멜로디로 시작해 점층적으로 전개되는 스케일이 일품인 이 곡에서 이문세가 후반부에 절규할 때 객석은 먹먹해졌다. 

노래 자체에 내포된 웅장함 때문에 이 곡은 뮤지컬 '광화문연가' 초기 버전 그리고 개작 버전에서 모두 1막 마지막에 자리했다. 두 버전의 뮤지컬에서 모두 민주화 열기가 불붙던 1980년대 학생운동 도중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는 여대생의 비명이 겹쳐지는 넘버이자 주인공들의 인연이 엇갈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노래로 사용되는데, 동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아련한 정서를 공유했다. 

"걷다가 바라본 하늘엔 / 흰구름 말이 없이 흐르고 / 푸르름 변함이 없건만 / 이대로 떠나야만 하는가 / 너는 무슨 말을 했던가"라고 이문세와 청중이 합창하는 부분은 마치 이영훈을 향해 말을 거는 듯했다.

이영훈의 노래는 회화적이다. 클래시컬한 정서를 보편적으로 해석한 그의 노래들은 과거에 느꼈던 정서의 표정들을 다시 스르륵 스쳐지나가게 만든다. 이날 관객들은 이영훈 노래 덕분에 과거 자신의 얼굴과 새롭게 마주했고, 그 추억의 땔감으로 살아갈 힘을 다시 지폈다. 

공연의 맨 처음에는 이영훈의 육성이 나왔다. 그가 유일하게 노래한 '깊은 밤을 날아서Ⅱ'였다. "나 어제 밤 꿈속에나마 그대와 환상을 꿈꾸었네"라는 노랫말은 관객의 마음이었다.

【서울=뉴시스】 뮤지컬 '광화문연가'. 2017.12.22. (사진= CJ E&M·서울시뮤지컬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뮤지컬 '광화문연가'. 2017.12.22. (사진= CJ E&M·서울시뮤지컬단 제공) [email protected]

"내가 갑자기 가슴이 아픈 건 그대 내 생각하고 계신 거죠 … 기억이란 사랑보다 더 슬퍼 기억이란 사랑보다 더 슬퍼"('기억이란 사랑보다' 중)라는 흥얼거림이 공연장을 벗어나는 무리 곳곳에서 들렸다. 고인의 아내인 영훈뮤직 김은옥 대표도 요즘 많이 듣는 곡이라고 했다.

김 대표와 고인과 그녀의 아들인 영훈뮤직 이정환 본부장은 고인의 10주기를 맞아 다양한 일을 계획 중이다. 덕수궁 돌담길 인근에 소박하게 세워진 이영훈의 노래비를 리뉴얼할 예정이며, 고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다. 아울러 이영훈의 시집과 악보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이영훈 작곡상을 제정하는 동시에 대중음악 형식의 기독교 음악인 CCM를 공부하는 학생에게 장학금도 준다.

이정환 본부장은 "아버지가 작업 방에서 새벽까지 작업하시면 내는 피아노 건반의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좋았지만 너무 엄숙해서 함부로 그 방에 들어가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김은옥 대표는 "가정적이었다. 집에서 아들과 저를 앉혀놓고 자주 피아노를 연주했다"면서 "(이날 공연을 주도한) 이문세 씨, 이재인 (케이문에프엔디) 대표와 팬들을 비롯해 수많은 분들에게 사랑의 빚을 졌다. 앞으로 사랑의 빚을 갚아가겠다"고 말했다.

자신이 스물다섯살, 이영훈이 스물네살일 때 고인과 첫 작업을 했다는 이문세는 "클래식한 이영훈 작곡가의 음악은 오랫동안 남아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