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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선우예권, 명동성당에서 마음으로 연주···피아노 독주회

등록 2019.08.27 18: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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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선우예권, 명동성당에서 마음으로 연주···피아노 독주회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클래식음악 콘서트장에 들어서기 전에는 심호흡을 한다. 다른 공연 장르보다 경건함이 앞선다. 종교적인 엄숙함이 배어 있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30)이 26일 밤 명동성당 대성전에서 연 독주회에서는 숨을 더 가다듬을 수밖에 없었다.

선우예권은 이날 슈베르트 4개의 즉흥곡, 쇼팽 24개의 전주곡을 연주했다. 사실 기둥이 많고, 울림이 큰 명동성당 대성전은 피아니스트에게 썩 좋은 연주 장소는 아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롯데콘서트홀의 음향에 익숙해진 귀에 명동성당의 울림은 낯설었다. 선우예권의 명연에도 초반에 슈베르트가 와닿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결함이 없이 완벽히 제어된 소리만 예쁘다고 할 수 있나, 여느 콘서트홀에는 존재하지 않은 웅숭깊은 음향이 가만히 얼굴을 내밀었다.

화사하지만 그 농도가 지나치지 않아 단정하게 느껴지는 슈베르트 4개의 즉흥곡은, 깊은 울림과 만나 평소 드러나지 않던 역동성을 내뿜었다.

쇼팽 24개의 전주곡에서 피아노 음향은 명동성당 대성전에 완전히 적응을 했다. 특히 전주곡 제15번 '빗방울'의 영롱함은, 명동성당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입체감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낙차가 큰 전주곡의 음표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이번 연주회는 선우예권이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과 손잡고 후배 피아니스트들을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코리안 영 피아니스트'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자리.

'예술감독' 선우예권이 직접 선정한 27세 이하 7명의 젊은 음악가들의 공연 후원기금 마련을 위한 무대였다. 명동성당은 일반 연주자에게 쉽게 열리지 않는 곳이다. 시야 방해석을 제외한 좌석 650석을 오픈했는데 단숨에 매진됐다.

그럼에도 대성전 안 곳곳에 세워진 기둥은 시야를 방해했다. 하지만 MBC 'TV 예술무대' 팀이 기둥에 달린 스크린을 통해 다양한 선우예권 연주 앵글의 영상을 내보내, 실감났다.

선우예권은 2017년 북아메리카의 세계적인 피아노 경연 대회인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기 전까지 고군부투하며 피아노 전투를 치러왔다. 후배들이 자신과 같은 길을 걷더라도 좀 더 수월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이번 연주회에서 선우예권은 손가락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연주를 했다.

기억으로 저장된 소리들이 채집돼 마음으로 변형해서 나올 때, 얼마나 뭉클한가. 감리교신자인 선우예권은 천주교의 상징인 명동에서 한껏 기원하는 제사장처럼 진심을 다해 연주했다. 악보의 중요한 악절, 인생의 중요한 순간은 기교뿐만 아니라 마음과 만나 이뤄진다.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의 성지였던 명동성당은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는 청년 시기에 예술적 민주화를 위한 단초를 마련해주고 있었다.

9월부터 2020년 3월까지 매달 1명씩 젊은 피아니스트들에게 명동대성당 파밀리아 채플에서 리사이틀 기회가 주어진다. 선우예권이 전달하는 장학금을 연주료로 제공한다.

지휘자 게르기예프, 정명훈의 선택을 받은 피아니스트 임주희(19), 파데레프스키 국제 피아노 콩쿠르 1위 이혁(19), 헤이스팅스 국제 피아노 협주곡 콩쿠르 우승자 이택기(21), 클리블랜드 국제 청소년 피아노 콩쿠르 2위 임윤찬(15), 리스트 콩쿠르 2위 홍민수(26), 영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4위 김송현(16), 센다이 콩쿠르 우승자 최형록(26)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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