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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수사로 진실 묻힌 '軍의문사'…법원 "국가가 배상"

등록 2021.04.25 05: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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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목매어 사망한 채로 발견돼

조사끝에 '극단적 선택'으로 결론지어

유족 '부실수사로 손해입어' 소송제기

法 "군대 내 사고는 조사 더 철저해야"

"타살은 아니지만 부실수사 책임배상"

부실수사로 진실 묻힌 '軍의문사'…법원 "국가가 배상"

[서울=뉴시스] 옥성구 기자 = 군대에서 고된 작업과 선임병의 괴롭힘 등을 받아온 군인이 사망한 채로 발견된 사건에서 법원이 타살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군대의 부실한 수사로 실체적 규명을 하지 못한 책임을 국가가 유족에게 배상한다고 판결했다.

25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부장판사 이관용)는 숨진 A씨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A씨는 2003년 4월 군에 입대해 다음달부터 야전공병으로 복무를 시작했다. 같은해 8월9일 A씨는 내무실에서 잠을 잤는데 다음날 오전 6시50분께 화장실 벽면 못에 걸린 전투화 끝에 목이 매어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당시 A씨는 선임병들로부터 상습적으로 모욕과 강요를 당해왔고 전입 신병인데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위험부담이 큰 지뢰 제거 작업에 투입됐던 것으로 조사됐다.

수도군단 헌병대는 이를 조사해 A씨가 원한을 살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고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했을 경우 다른 병사들이 인지할 수 있었는데 인지한 병사가 없어 타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육군본부는 극단적 선택으로 결론지었다.

A씨의 아버지는 2006년 부대원들이 아들을 스스로 목매어 사망한 것으로 위장한 것이지 극단적 선택이 아니라고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지만 기각됐다.

이후 군의문사 조사·제도개선추진단 법무심사팀은 2018년 초동수사 당시 현장의 수치기록 및 현장재연 등을 조사하지 않아 이 사건 사고 실체가 불명확해졌다며 부실수사로 인한 정신적 고통 위자료 총 1500만원 배상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A씨의 어머니와 누나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이들은 A씨가 사망으로 발견된 장소는 스스로 목을 매는 것이 불가능하고 다른 사람에게 교살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데 부실수사로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타살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부실수사로 인한 손해는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군에 입대한 장병이 직무수행 중 생명·신체에 대한 사고를 당한 경우 그로 인한 희생은 국가공동체의 존속과 유지를 위한 특별한 희생에 해당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국가로서는 장병에게 이 같은 사고가 발생하면 철저한 조사를 통해 그 사고 경위 등을 정확하게 밝혀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장병 가족에게 사고 경위와 그에 대한 조치 내용을 숨김없이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히 군대 내 범죄·사고는 엄격히 통제돼 수사과정에 피해자 이해관계인들의 참여·감시가 보장되기 힘들다"며 "군 수사기관으로서는 엄정 조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야 할 직무상 의무가 일반 수사기관보다 높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수도군단 헌병대는 이 사건 사고 당시 현장조사에서 못의 높이, 발꿈치 높이, 전투화 끈의 길이만 측정하고 사망사고 초동수사에 가장 중요한 현장의 정확한 수치기록, 현장 재연 등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직무상 의무 위반으로 망인이 타살된 것인지, 자살한 것인지 명확히 규명할 수 없게 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며 "현저하게 불합리하게 수사상 필요한 조치를 다 하지 않은 불법행위를 했으므로 국가가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다만 ▲이 사건 사고 당시는 하절기로 모든 내무실 문을 열어두고 취침해 타살이라면 싸움 소리 등을 들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망인 몸에 싸움에 의한 상처 등이 보이지 않는 점 등을 토대로 타살 가능성을 인정하기는 부족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군 수사기관이 초동수사 당시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자살인지, 타살인지 밝힐 수 없게 됐다"며 "유족들이 사망원인도 알지 못해 정당한 위로와 국가보훈 처우를 받지 못해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이를 종합해 재판부는 유족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에 따른 위자료 금액으로 국가가 총 35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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