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 재심, '청산염 투여량' 등 공방
청산염 탄 막걸리 마시게 해 아내이자 친모 살해 부녀
변호인 측 증인 "강압·회유 조사" "청산염량 많았을 것"
원심선 각기 무기징역·징역 20년 확정…15년만의 재심
![[순천=뉴시스] 2009년 12월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부녀 살인 사건 당시 법원 현장 검증. (사진=뉴시스 DB). photo@newsis.com](https://img1.newsis.com/2009/12/16/NISI20091216_0002091301_web.jpg?rnd=20091216175956)
[순천=뉴시스] 2009년 12월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부녀 살인 사건 당시 법원 현장 검증. (사진=뉴시스 DB).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변재훈 기자 = 2009년 전남 순천의 한 마을에서 발생한 이른바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으로 중형이 확정됐던 부녀(父女)에 대한 재심 재판에서 당시 위법한 수사 과정이 법정 공방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광주고법 형사2부(고법판사 이의영·김정민·남요섭)는 11일 201호 법정에서 살인과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돼 각기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의 형이 확정됐던 백모(75)씨와 백씨의 딸(41)에 대한 재심 속행 재판을 열었다.
백씨는 2009년 7월6일 순천에서 청산가리(청산염)를 넣은 막걸리를 아내 최모(당시 59세)씨와 최씨의 지인에게 마시게 해 2명을 숨지게 하고 함께 마신 주민 2명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로 딸과 함께 기소됐다.
이날 재심 재판에서는 백씨 부녀 측이 신청한 전문가 증인들에 대한 신문이 펼쳐졌다.
백씨 부녀의 법률 대리인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검찰 수사 당시 진술 녹화 영상 등을 전문 감정한 심리학 교수를 상대로 조사 방식의 위법성 입증에 주력했다.
박 변호사는 당시 부녀에 대한 수사관의 진술 녹화 영상을 차례로 재생하며 당시 수사의 적법성을 문제 삼았다.
증인으로 출석한 김모 심리학과 교수는 법정에서 "딸 백씨의 경우에는 지능검사 전체 점수가 평균 80점에 미치지 못하는 74점으로 경계성 지능인 것이 명백하다 볼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재판에서 채택한 감정 의견서는 신뢰도에 따라 65~85점 내에 있을 확률이 95%라고 판단, 최대치인 85점이라고 이례적으로 기술했다"며 딸 백씨의 진술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취지로 밝혔다.
특히 "경계성 지능이 있는 사람은 스트레스와 긴장감이 있는 상황에서 크게 지능 발휘가 제한될 수 있다. 특히 수사관들도 '고자질' 등 간단한 단어의 뜻을 설명하고자 먼저 예시까지 들어가며 설명할 정도로 딸 백씨의 경계성 지능임을 알고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도 보인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딸 백씨가 진술하기 앞서 정보를 먼저 말하거나 동시에 말하기도 했고 리허설 또는 코칭·암시하는 듯한 장면도 있었다. 녹화 영상에서는 수사관이 직접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고 예, 아니오로만 답하는데 조서에는 딸 백씨가 직접 이야기한 것처럼 쓰여 있다. 모욕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로 경계성 지능인을 압박하는 상황으로도 보이고 머뭇거리거나 예상과 다른 질문을 하면 압박하듯 한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아버지 백씨에 대한 진술 녹화영상에 대해서는 "백씨의 부인 진술은 가로막고 교묘히 진술을 바꿔 원하는 식으로 진술을 맞추는 일이 반복되자 백씨가 입을 꾹 닫고 한숨을 쉬는 태도로 변한다. 수사관의 질문에 백씨가 '제가요?'하며 반문하는 모습도 반복된다"고 말했다.
![[광주=뉴시스] 2009년 전남 순천의 한 마을에서 발생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 부녀의 재심 첫 재판이 열린 2024년 12월3일 오후 광주고등법원 앞에서 부녀의 법률 대리인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DB). photo@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4/12/03/NISI20241203_0001719605_web.jpg?rnd=20241203163607)
[광주=뉴시스] 2009년 전남 순천의 한 마을에서 발생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 부녀의 재심 첫 재판이 열린 2024년 12월3일 오후 광주고등법원 앞에서 부녀의 법률 대리인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DB). [email protected]
독살에 쓰인 막걸리에 든 청산염 성분·농도·시간대별 색 변화에 대한 재구성 실험을 진행한 권모 화학과 교수도 증인으로 출석했다.
권 교수는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서 상에는 막걸리에 들어있던 청산염 추정량을 청산 음이온량을 기준으로 추정했는데 경찰 실험 과정에서는 추정량 개념을 잘못 혼용했고 실험 조건을 엄격히 통제 못하는 상황에서의 실험이라 신뢰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또 여러 종류가 있는 청산염이 정확히 청산칼륨인지, 청산나트륨인지 당시 국과수라면 분별할 수 있는데 감정서에는 기재하지 않았다며 의문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막걸리에 담긴 청산염이 시간·온도 등 조건에 따라 화학 반응의 결과로 변하는 색상 비교실험으로 볼 때 당시 기록상 청산염보다 많은 양이 막걸리에 투여됐을 것으로 추론한다. 청산가리를 탄 시점도 당시 여름철 기온, 보관 위치 등에 비춰 범행 당일 새벽 즈음이 돼야 한다"고 진술했다.
이를 토대로 박 변호사는 검찰의 공소사실과는 달리 "플라스틱 숟가락 2개 분량보다 훨씬 많은 청산염이 사건 이틀 전이 아닌 당일 이른 시간에 투여됐을 것이다"는 가설을 토대로 논리를 펼쳤다.
반면 검사 측은 "백씨 부녀의 자백 뿐만 아니라 관련 정황을 비춰봐도 유죄가 인정된다"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검사는 공주치료감호소 감정 결과 최초 지능감정 당시 의견서(검사 받는 태도가 소극적이어서 점수가 낮게 나왔다) 등을 토대로 반대 신문을 진행했다. 딸 백씨가 경계성 지능이라는 장애라는 박 변호사 측의 논리를 깨는 데 집중했다.
청산염 투여량에 대해서는 재구성 실험 당시 조건, 청산염의 색 변화에 영향을 미칠 조건 등에 대해 권 교수에 질문했다.
백씨 부녀에 대한 재판은 4월8일 오후 다시 열린다. 다음 재판에서는 당시 검사와 수사관들을 증인으로 불러 신문을 진행한다.
앞서 당시 검찰은 부적절한 관계를 맺던 백씨 부녀가 갈등을 빚던 아내이자 친모인 최씨를 살해했다고 봤고 1심과 달리 2심은 이들이 최씨를 살해했다고 판단해 중형을 선고했다.
2심은 백씨 부녀와 최씨의 갈등을 살인 동기로 볼 수 있고 청산가리 보관 등 범행 내용·역할 분담에 대한 진술이 일치한다고 판단해 백씨 부녀에게 각기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2012년 3월 대법원은 2심 선고대로 이들에 대한 유죄를 확정했으나 지난해 9월 대법원에서 재심 절차 개시가 최종 확정되면서 이번 재심 재판이 열렸다.
백씨 부녀는 유죄 확정 10여년 만인 2022년 억울함을 호소하며 재심을 청구, 재심 개시 결정에 따라 사건 발생 15년여만에 광주고법에서 다시 재판이 시작됐다. 백씨 부녀는 재심 결정 이후 형 집행정지로 출소한 상태로 재심 재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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