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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정신?…구호보다 작은 배려와 실천이 진정한 애국"

등록 2025.06.24 07:51:49수정 2025.06.24 11:4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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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이택열 수원지회장 인터뷰

친척집 전전하다 원호원 입소…후손 명예회복 앞장

[수원=뉴시스] 박종대 기자 =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수원시지회 이택열(74) 지회장이 6·25전쟁 발발 75주년을 앞둔 23일 오후 수원시보훈회관에서 보훈의 의미와 사회적 인식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전쟁이 가정을 무너뜨린 것도 아팠지만 더 아팠던 건 사회의 편견이었다"고 말했다. 2025.06.23. pjd@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수원=뉴시스] 박종대 기자 =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수원시지회 이택열(74) 지회장이 6·25전쟁 발발 75주년을 앞둔 23일 오후 수원시보훈회관에서 보훈의 의미와 사회적 인식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전쟁이 가정을 무너뜨린 것도 아팠지만 더 아팠던 건 사회의 편견이었다"고 말했다. 2025.06.2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수원=뉴시스] 박종대 기자 = "아버지는 6·25 전쟁 후 1954년 지리산 공비 토벌 작전에 참전하다 전사했다. 그때 제가 겨우 2살이었다."

6.25전쟁 발발 제75주년을 이틀 앞둔 지난 23일 오후 수원시보훈회관에서 만난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수원시지회 이택열(74) 지회장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며 이같이 담담히 말했다.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8살에 헤어지게 됐고, 친척집을 전전하다 결국 도망쳐 나왔다." 이처럼 전쟁은 한 가정을 완전히 해체시켰다. 8살 아이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됐다. 친척집에서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든 나날들이었다. 뛰어놀고 마음껏 꿈을 꿔야 할 나이에 일만 해야 했다.

갈 곳을 잃은 그가 마지막 희망처럼 찾아간 곳은 당시 수원에 위치해 있던 국립원호원이었다. 정부가 전쟁 유공자와 유족을 위해 설립한 원호원은 양로소, 아동보호소, 직업보도소를 갖춘 종합보훈시설이었다.

이곳에서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과 함께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한 방에 8명씩 살았는데 책상을 비롯해 옷과 학비, 학용품도 나왔다. 무엇보다 규칙적인 일과 속에서도 따뜻한 보살핌이 존재했다. 급식도 잘 나왔고 때로는 소고기국까지 먹었다.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아이에게 이곳은 새로운 희망이었다.

하지만 사회로 나온 후 그를 기다린 것은 차가운 편견이었다. 국가에서는 예우를 해주려고 했지만 정작 사회에서는 벽이 느껴졌다.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사람들 인식이 그랬다. 국가를 위해 아버지가 전사했는데도 '저 놈은 원호대상자야, 별 볼일 없는 놈이야'라고 했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모순되게도 나라를 위해 희생한 가족들이 오히려 사회에서 무시당하는 현실이었다. 존경받아야 할 사람들이 '별 볼일 없는 존재'로 취급받는 기형적인 사회 풍조였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살았다. 보훈지청의 도움을 받아 1973년 농협중앙회에 취업한 후 38년간 평생직장을 다니며 지점장까지 올랐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비슷한 처지의 유가족들을 챙기는 일을 잊지 않았다. 그는 "1992년에 보훈대상자들의 명예회복 권리를 찾자고 해서 전국적으로 나섰다"라며 "그런 운동 덕분에 1996년부터 수당 같은 것들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회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농협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나섰다. 1999년에는 지역언론사와 함께 결식아동 지원을 위한 만화영화잔치를 추진했고 전국적인 호응을 얻으며 각지로 확산됐다.

뒤늦게나마 아버지의 흔적도 찾았다. 그의 부친은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었다. "묘소가 어디 있는지 몰랐는데 87년도에 알게 됐다. 그러면 혹시 훈장도 있지 않을까 해서 육군본부에 조회해봤더니 정말로 화랑무공훈장이 보관돼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30여 년 만에 화랑무공훈장을 되찾게 된 것이다.

그는 2018년부터 지회장을 맡고 있다. 회원 수는 1732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다. "우리 수원시에만 해도 14만 명이라는 국가보훈 대상자가 있다"며 수원이 명실상부한 호국의 도시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은 보훈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이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존중하는 문화가 바로 설 때 우리 사회도 더 단단해지고, 미래 세대도 바르게 자랄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보훈이라는 게 꼭 아픔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아니라 우리 국가의 품격이 걸려 있는 게 바로 보훈"이라며 "자라나는 세대들이 학교 교육에서부터 보훈이 무엇인지, 나라 사랑이 뭔지 배워야 하는데 지금은 현실적으로 그런 게 없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국가 보훈이라는 게 교육에서부터 우러나와야 한다"며 "독립운동부터 6·25를 거쳐서 이렇게 우리나라가 해왔다는 뿌리를 알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끝으로 그가 제시한 호국정신론은 단순했다. "호국정신은 서로 돕고 의지하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며 "거창한 구호보다는 일상 속 작은 배려와 실천이 진정한 애국"이라고 후세들에게 당부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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