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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계좌번호 불러줬어도 위독 상태…'구두에 의한 유언' 유효"

등록 2026.05.04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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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증서' 유언 효력 다툼…녹음 등 불가시 인정

1·2심, "유언자, 계좌번호 말해"…유언 효력 '부정'

대법 "건강상태 비춰 녹음 등 어려워"…파기환송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숨지기 사흘 전 물려주려는 예금 계좌번호 정보 등을 스스로 불러 줬다는 이유로 말을 받아 적은 '구수증서' 유언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은 하급심 판결을 대법원이 파기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 자유·평등·정의가 적혀 있다. 2026.05.04. myjs@newsis.com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숨지기 사흘 전 물려주려는 예금 계좌번호 정보 등을 스스로 불러 줬다는 이유로 말을 받아 적은 '구수증서' 유언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은 하급심 판결을 대법원이 파기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 자유·평등·정의가 적혀 있다. 2026.05.0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정현 기자 = 숨지기 사흘 전 물려주려는 예금 계좌번호 정보 등을 스스로 불러 줬다는 이유로 말을 받아 적은 유언 증서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은 하급심 판결을 대법원이 파기했다.

유언자가 폐암 말기로 진정제가 투여된 채 산소호흡기를 낀 급박한 상태였던 만큼, 녹음 등 주도적으로 유언을 남길 수 있다고 본 것은 잘못이라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최근 유족 A씨가 우리은행을 상대로 낸 예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이같이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4일 밝혔다.

A씨는 자신의 이부형제인 B씨가 2021년 4월 숨지며 남긴 유언에 따라 B씨의 예금 9600여만원 지급을 구했으나, 거부당하자 이듬해 8월 소송을 냈다.

B씨는 사망 사흘 전 병원에서 A씨와 증인 2명이 입회한 채 "모든 재산을 A씨에게 증여한다"는 유언을 남겼으나, 은행 측이 효력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B씨는 숨지기 전 지병인 폐암이 급격히 악화해 입원했다. 그는 폐암 말기로, 코로나19에 걸린 채 만성 호흡부전 상태에서 호흡곤란, 폐렴 등을 앓았다.

의료진은 B씨가 유언을 남기기 하루 전 B씨의 요청으로 통증을 줄이기 위한 진정제를 투약했다. B씨는 산소호흡기 등을 찬 채로 유언을 남겼다.

이런 가운데 B씨가 남긴 '구수(口授)증서' 유언의 효력이 쟁점이 됐다.

민법상 유언은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의 형태를 원칙으로 하되, 질병 기타 급박한 사유로 4가지 방식을 취할 수 없을 때 구수증서 방식으로 이뤄진 유언의 효력을 예외적으로 인정한다.

1·2심은 구수증서 유언의 효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B씨가 유언을 남길 때 전세보증금과 예금계좌 번호를 말하는 내용이 녹화된 사실이 문제가 됐다.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서울 서초구 대법원 본관에 정의의 여신 디케상이 보이고 있다. 2026.05.04. myjs@newsis.com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서울 서초구 대법원 본관에 정의의 여신 디케상이 보이고 있다. 2026.05.04. [email protected]

2심은 "유언장이 작성될 당시 A씨는 자신의 재산 상태와 유증의 의미, 상대방 등을 충분히 인지하고 말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녹음에 의한 방식으로 유언을 할 수 없었다고 보기 어려워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이 인정되는 요건인 '질병 기타 급박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봤다.

B씨의 유언을 녹화한 영상은 B씨가 의사능력을 갖추고 유효한 구수를 할 수 있는 상태였다는 것을 뒷받침할 뿐, 주도적으로 유언 내용을 불러 주고 녹음을 할 수 있었다는 정황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대법원은 "유언 당시 망인(B씨)은 신체 상태가 전반적으로 저하돼 있었을 뿐만 아니라 호흡곤란 증상으로 산소호흡기를 낀 상태에서 자유롭게 계속 말을 하는 것이 곤란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또 "코로나19에 걸려 격리돼 있고 유언일로부터 3일 뒤 사망한 사정을 고려하면 다른 방식에 의한 유언 또한 가능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망인은 유언의 목적인 3건의 예금채권 중 2건의 계좌번호만을 기억에 의존해 어눌하게나마 말할 수 있었다"며 "(B씨가) 스스로 유언의 전체 취지를 육성으로 녹음해 녹음에 의한 유언을 할 수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유언의 요식성을 엄격하게 판단하는 이유는 유언자의 진의를 명확하게 하고 법적 분쟁과 혼란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며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을 하는 과정에서 문제제기에 대비해 녹음이나 녹화 등의 보조수단을 사용할 수 있고, 망인의 구수 과정을 녹화한 것은 이런 취지였다"라고 부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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