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대신 춤을 택한 세자…예악정치 그린 창극 '효명' [객석에서]
'묘묘'와의 진검무, 치열한 권력 투쟁 보여줘
EDM·셔플댄스 넘나들어…엄숙주의 깬 해학
![[서울=뉴시스]국립창극단 '효명'이 23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막했다. 효명세자 역을 맡은 이광복과 묘묘 역 이소연이 검무를 추고 있다. (사진=국립극장 제공)](https://img1.newsis.com/2026/06/26/NISI20260626_0002171500_web.jpg?rnd=20260626174504)
[서울=뉴시스]국립창극단 '효명'이 23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막했다. 효명세자 역을 맡은 이광복과 묘묘 역 이소연이 검무를 추고 있다. (사진=국립극장 제공)
23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막한 국립창극단 '효명'에서 이 대사는 단순한 예술가의 독백으로 머물지 않는다. 세도정치로 왕권이 흔들리던 시대, 춤과 예악으로 질서를 바로 세우려 했던 효명세자의 정치적 고민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사도세자의 증손자인 효명은 병약한 순조를 대신해 대리청정을 맡았다. 당시 조정은 특정 외척과 파벌이 권력을 장악하며 왕권이 크게 약화된 상황이었다.
작품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효명이 선택한 '예악정치'에 주목한다. 어머니 순원왕후의 사순 잔치를 계기로 궁중 연향과 정재(궁중무용)를 정비한 것은 왕실 행사를 치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禮)를 통해 질서를 회복하고 악(樂)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려는 정치적 시도였다는 해석이다.
창극은 이러한 효명의 고민을 '춤'이라는 언어로 풀어낸다. 무력으로 권위를 세우기보다 예술을 통해 왕실의 권위와 질서를 회복하려는 그의 선택이 작품 전반을 관통한다.
![[서울=뉴시스]국립창극단 '효명'이 23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막했다. 효명세자 역을 맡은 이광복이 열연하고 있다. (사진=국립극장 제공)](https://img1.newsis.com/2026/06/26/NISI20260626_0002171503_web.jpg?rnd=20260626174630)
[서울=뉴시스]국립창극단 '효명'이 23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막했다. 효명세자 역을 맡은 이광복이 열연하고 있다. (사진=국립극장 제공)
궁중정재를 지도하는 악공 창하는 "2인무는 정제된 미학에 칼끝의 긴장감이 더해져야 일품"이라며 "무용수에게 검술을 가르치는 것보다 자객에게 춤을 가르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결국 효명이 기획한 연회의 대미를 장식할 진검무는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왕실의 강력한 위엄과 긴장감을 벼랑 끝에서 증명해야 하는 정치적 무대였던 셈이다.
![[서울=뉴시스]국립창극단 '효명'이 23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막했다. 기생들이 대화하는 장면. (사진=국립극장 제공)](https://img1.newsis.com/2026/06/26/NISI20260626_0002171505_web.jpg?rnd=20260626174645)
[서울=뉴시스]국립창극단 '효명'이 23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막했다. 기생들이 대화하는 장면. (사진=국립극장 제공)
"칼자국 같은 침묵이 궁궐 마루에 떨어진다"는 기생들의 시적인 창(唱)은 권력 암투의 서늘함을 묘사하지만, 이내 묘묘를 향해 "새로운 세계관 등장이요" "한 나라의 왕자에게 대답 생략해버리는 신박한 세계관"이라고 비꼬는 티키타카는 엄숙주의를 비웃으며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무대 위로 노란색 도포를 입은 이는 마치 술에 취한 듯 거들먹거리는 몸짓을 하고, 초록색 도포를 입은 사람은 나사가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린다.
조정의 권력을 양분한 파벌을 노란색과 초록색 의상으로 대비시키고, 이들의 부패하고 지리멸렬한 행태를 우스꽝스럽고 파격적인 춤사위로 희화화한 연출은 시선을 잡아끈다.
![[서울=뉴시스]국립창극단 '효명'이 23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막했다. 효명세자 역을 맡은 이광복과 묘묘 역을 맡은 김소연이 열연하고 있다. (사진=국립극장 제공)](https://img1.newsis.com/2026/06/26/NISI20260626_0002171507_web.jpg?rnd=20260626174657)
[서울=뉴시스]국립창극단 '효명'이 23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막했다. 효명세자 역을 맡은 이광복과 묘묘 역을 맡은 김소연이 열연하고 있다. (사진=국립극장 제공)
무대 미술과 음악 역시 전통과 현대를 넘나든다. "노새 노새 젊어서 놀아"라는 노랫가락이 흘러나오자, 무대 위에 떠 있던 달이 음반 CD로 변하며 클럽 분위기를 낸다. 국악에는 전자음악(EDM)이 어우러지며 무용수들의 빠른 군무에 속도를 입힌다.
기생들이 셔플댄스와 스윙을 추며 전통 창극의 문법을 해체하는 연출은 당시 굳건한 기득권의 장벽을 '예악'으로 부수고자 했던 세자의 파격적인 승부수와 맥을 같이 한다.
국립창극단의 '효명' 안무는 현대무용을 기반으로 다양한 장르에서 작업해온 김재덕이, 작창은 국립창극단 퇴단 이후 본격적인 창작자로 활동 중인 유태평양이, 연출은 극단 라마플레이 대표 임지민이 맡았다. 공연은 오는 28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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