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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이 부른 中재벌…美, 헝리 정유사 '이란산 수십억달러 매입' 지목

등록 2026.08.17 05:00:00수정 2026.08.17 06:10:24

美, 정유 자회사만 SDN 지정…섬유·조선 등은 제재 제외

달러 의존도 낮은 中민간 정유사, 할인된 제재 원유 흡수

중국 화학그룹 헝리집단

중국 화학그룹 헝리집단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중국 최대 민간기업 가운데 하나인 헝리그룹의 정유 자회사가 제재 대상인 이란산 원유를 수십억달러어치 사들인 주요 고객으로 지목돼 미국의 제재 명단에 올랐다. 헝리 측은 이란과 거래한 적이 없다며 부인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5일(현지시간) 미 재무부 자료와 원유 운송·선박 추적 정보, 업계 관계자 취재를 종합해 이같이 보도했다. 미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지난 4월24일 헝리석유화학(다롄) 정유사를 특별지정 제재대상(SDN) 명단에 올렸다.

SDN 지정에 따라 미국 안에 있거나 미국인·미국 기업·금융기관이 보관·관리하는 헝리 정유사 소유의 자금과 재산은 동결된다. 미국인과 미국 기업은 이 회사와 원칙적으로 거래할 수 없다. 다만 제재 대상은 해당 정유사이며 헝리그룹의 섬유·조선 등 다른 사업부문은 제재 명단에 오르지 않았다. 중국 상무부는 5월2일 헝리 등 5개 중국 정유사에 대한 미국의 제재를 인정하거나 집행·준수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을 내렸다.

이 정유사를 계열사로 둔 헝리그룹은 중국 재계에서도 상당한 위상을 지닌 기업이다. WSJ에 따르면 헝리그룹 창업자 겸 회장인 천젠화(55)는 2025년 2월 시진핑 국가주석이 소집한 민영기업 좌담회에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 등과 함께 참석했다. 헝리는 석유화학·섬유·조선 등의 사업을 거느리며 직원을 30만명 넘게 고용하고 연간 1000억달러(약 142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다.

이처럼 대기업으로 성장한 헝리의 출발점은 작은 직물공장이었다. 중국 국영언론에 따르면 천 회장은 13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견직물 거래에 뛰어들었다. 그는 1994년 회계사였던 아내 판훙웨이와 함께 파산한 견직공장을 인수한 뒤 폴리에스터 사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폴리에스터 원료인 고순도 테레프탈산(PTA)을 자체 생산하기로 하면서 정유사업에도 진출했다.

헝리는 중국 랴오닝성 다롄의 창싱다오에 약 6㎢ 규모의 석유화학·정유단지를 건설했다. 중국 정부는 지방정부에 사업 지원을 주문했고 리커창 당시 총리는 2019년 현장을 찾아 사업계획을 보고받았다. 중국 정부가 2015년부터 민간 정유사의 원유 수입 규제를 완화하면서 이들 업체도 해외 원유를 직접 조달할 길이 열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첫 임기 중이던 2018년 대이란 제재를 강화한 뒤에는 값싼 이란산 원유로 눈을 돌리는 민간 정유사가 늘었다.

중국 석유화학단지

중국 석유화학단지

WSJ은 헝리의 원유 조달을 잘 아는 관계자들의 말을 토대로 회사가 늦어도 2020년 말부터 제재 대상 원유를 사들였으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매입을 늘렸다고 전했다. 이들은 부채 부담이 큰 석유화학 사업의 원료비를 줄이려고 헝리가 러시아·이란산 원유를 시장가격보다 최대 25% 싸게 사들였다고 말했다.

미 재무부는 제재 선박 3척만으로도 2023년 이후 헝리에 500만배럴이 넘는 이란산 원유가 운송됐다고 밝혔다. 이란군 총참모부 산하 원유 판매조직이 주관한 수출 물량도 헝리에 공급됐으며, 이를 통해 이란 군부가 수억달러의 원유 판매대금을 확보했다는 것이 미 재무부의 판단이다.

헝리는 앞서 사업을 하는 지역의 관련 규정을 준수해 왔으며 이란과 거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채권 투자설명서에는 사우디 아람코 등 중동 업체가 주요 원유 공급처라고 적었지만 일부 공급업체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다.

헝리의 개별 거래 여부와 별개로 중국은 이란산 원유의 최대 구매국이다. 미 의회 산하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USCC)는 중국이 2025년 사들인 이란산 원유가 약 312억달러(약 44조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했다. 중국은 이란이 수출한 원유의 90% 이상을 사들였고, 하루 평균 수입량은 약 140만배럴로 중국 전체 원유 수입의 약 12%였다. 다만 이는 미국의 해상 봉쇄가 시작되기 전인 2025년 수치다. 미국이 올해 이란 항구를 해상 봉쇄한 뒤 이란의 원유 수출은 크게 줄었으며, 감소세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불확실하다.

이 거래의 중심에는 중국의 민간 독립 정유사들이 있다. 소규모 설비로 출발해 ‘찻주전자’에 빗댄 ‘티포트 정유사’로 불리는 업체들이다. 중국 국유 정유사들은 미국 주도의 국제금융망에 계속 접근하기 위해 제재 원유 거래를 피하지만, 100곳이 넘는 티포트 정유사는 달러 거래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미국의 제재를 받아도 타격이 상대적으로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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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정유사들이 미국의 제재망을 우회해 이란산 원유를 중국으로 들여오는 핵심 수단은 이른바 ‘그림자 선단’이다.. 그림자 선단은 선박의 소유주나 선적국을 자주 바꾸고 위치신호를 끄거나, 해상에서 원유를 다른 배로 옮겨 제재 당국의 추적을 어렵게 하는 유조선망을 말한다. 중국 국유 경제매체 내셔널비즈니스데일리도 지난 3월 티포트 정유사들이 ‘특수 경로’를 통해 싼 원유를 확보하고 그림자 선단으로 중국에 들여온다고 보도했다.

대형 유조선 시커8의 항적은 이런 운송망의 작동 방식을 보여주는 사례다. 원자재 분석업체 Kpler에 따르면 작년 12월 이란 하르그섬에서 선적된 원유 200만배럴이 올해 1월 말라카해협에서 시커8로 옮겨졌다. 시커8은 1월27일 헝리 정유단지가 있는 창싱다오 항구로 접근한 뒤 30일 오후까지 사흘 넘게 자동선박식별장치(AIS) 위치정보를 송출하지 않았다. WSJ은 이처럼 위치신호를 끄는 것이 그림자 선단이 항적을 가릴 때 흔히 쓰는 수법이라고 설명했다.

위치정보 송출을 재개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시커8의 흘수는 약 9m 변한 것으로 표시됐다. 흘수는 수면에서 선박 바닥까지의 깊이로, 화물을 내리면 얕아진다. 스타보드의 마크 더글러스 분석가와 해운정보업체 인제니스페이스의 제이슨 왕 최고운영책임자는 이 정도 흘수 변화는 원유를 많이 실은 유조선이 대량의 화물을 하역했을 때 나타나는 변화와 부합한다고 분석했다.

미 재무부는 석 달 뒤인 4월 시커8을 제재 선박 19척 가운데 하나로 지정했다. 시커8이 1~2월 이란산 원유 400만배럴 이상을 운송해 중국에서 하역했다는 이유에서다. 더글러스에 따르면 시커8은 올여름부터 2018년 해체된 다른 선박이 쓰던 ‘루비’라는 이름을 선박 위치정보에 표시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를 다른 배의 신원을 이용해 운항을 계속하려 한 정황으로 봤다.

시커8과 헝리 정유사가 제재 명단에 올랐지만, 헝리그룹은 제재 대상이 아닌 사업부문에서 확장을 이어가고 있다. 헝리는 2022년 옛 STX다롄 조선소 자산을 인수해 수주잔량 기준 중국 2위 조선소로 키웠다. 정유사가 제재 명단에 오른 지 몇 주 뒤 별도 제재를 받지 않은 조선 자회사는 유럽 고객들과 20억달러(약 2조8000억원)가 넘는 선박 건조 계약을 맺었다. 2030년까지 작업할 수주 물량을 확보했으며 총계약액은 250억달러(약 35조원)를 넘어섰다고 WSJ은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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