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엔 역시 면麵이지…냉면부터 스님 웃게 한 국수 이야기까지
등록 2026.08.23 09:00:00수정 2026.08.23 09:03:54
비벼 먹던 냉면, 조선 후기 동치미 만나 물냉면으로
귀했던 국수, 장수 기원한 잔칫날 음식으로 자리
스님 웃게 해 '승소'…소 대신 제물 올린 '면생'도
![[서울=뉴시스] 홍효식 기자 = 냉면 한 그릇이 1년 전보다 약 4% 올라 외식 부담이 계속되는 가운데 20일 서울 중구 명동 한 식당에 냉면 메뉴가 게시돼 있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따르면 여름철 인기 메뉴인 냉면 가격은 지난달 1만2538원에서 1만2615원으로 올랐으며, 1년 전(1만2115원)과 비교하면 약 4% 상승했다. 2026.05.20. yesphoto@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5/20/NISI20260520_0021289924_web.jpg?rnd=20260520132005)
[서울=뉴시스] 홍효식 기자 = 냉면 한 그릇이 1년 전보다 약 4% 올라 외식 부담이 계속되는 가운데 20일 서울 중구 명동 한 식당에 냉면 메뉴가 게시돼 있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따르면 여름철 인기 메뉴인 냉면 가격은 지난달 1만2538원에서 1만2615원으로 올랐으며, 1년 전(1만2115원)과 비교하면 약 4% 상승했다. 2026.05.20.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수지 기자 = 살얼음 띄운 육수에 면을 말아 후루룩 먹는 냉면, 고소한 콩국물에 말아낸 콩국수, 열무김치에 양념을 더해 비벼 먹는 열무비빔국수. 무더운 여름이면 유독 생각나는 음식이 '면(麵)'이다.
지금은 누구나 쉽게 한 그릇 사 먹을 수 있지만 국수는 오랫동안 귀한 음식이었다. 긴 면발에는 오래 살라는 뜻을 담았고, 생일과 혼례 같은 경사스러운 날 상에 올렸다. 불가에서는 국수를 보면 스님들이 웃는다고 해 '승소(僧笑)'라 불렀고, 고려시대에는 살생을 피하기 위해 소 대신 국수를 제물로 올리는 '면생(麵牲)'도 있었다.
여름철 대표 음식이 된 냉면부터 잔칫날 국수, 사찰의 국수까지. 무심코 후루룩 넘기는 면 한 가닥에는 오랜 시간 우리 입맛과 함께 변해온 이야기가 담겨 있다.
비벼 먹던 냉면, 동치미 국물을 만나다
지난 12일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이 개최한 '2026 제2차 한식 세미나-냉면의 과거와 미래'에서 신동훈 동국대 교수는 조선 후기 물냉면의 탄생과 변화 과정을 짚었다.
신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말~조선 초부터 메밀로 만든 면을 양념에 비벼 먹는 형태의 냉면이 존재했다. 이후 조선 후기에 들어 국물을 부어 먹는 물냉면이 등장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동치미였다. 겨울철 무를 소금물에 담가 발효시킨 동치미 국물에 면을 말아 먹으면서 물냉면이 등장했다는 설명이다. 신 교수는 동치미 국물이 겨울철 부족해지기 쉬운 소금 섭취를 보충하는 역할도 했다고 봤다.
지금은 한여름 무더위를 식히는 대표 음식이지만 냉면은 본래 겨울에 즐기던 음식이었다. 겨울철 저장음식인 동치미 국물을 활용했고, 당시 문헌에도 추운 계절 냉면을 즐긴 기록이 전한다.
평양냉면에 메밀이 쓰인 데도 이유가 있다. 신 교수는 평양 지역에서는 쌀농사가 어려워 메밀이 주요 작물로 재배됐고, 이것이 평양냉면의 면 재료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메밀은 밀보다 찰기가 적어 면발이 쉽게 끊어지는 특성이 있다. 오늘날 평양냉면 특유의 면발에도 재료와 지역의 환경이 함께 담긴 셈이다.
냉면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계속 달라졌다. 동치미 국물을 중심으로 하던 육수에 고기에서 우러난 맛이 더해지고 고명과 식기도 변했다. 지금은 삶은 계란이 익숙하지만 과거에는 지단을 올리기도 했다.
냉장·제빙 기술의 발달은 냉면을 즐기는 계절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겨울에 주로 먹던 냉면을 계절과 관계없이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오늘날에는 대표적인 여름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서울=뉴시스] 잣콩국수 (사진=한국불교문화사업단 제공) 2026.08.2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8/21/NISI20260821_0002218298_web.jpg?rnd=20260821170558)
[서울=뉴시스] 잣콩국수 (사진=한국불교문화사업단 제공) 2026.08.2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귀했던 국수…긴 면발에 '장수'를 담았다
지금은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하는 음식이지만 과거 국수는 쉽게 먹기 어려운 귀한 음식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밀 재배가 쉽지 않아 생산량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중국에서 밀가루를 수입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밀가루가 귀하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밀보다 메밀을 이용한 국수도 널리 만들어 먹었다.
국수가 귀했던 만큼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길게 이어지는 면발에는 오래 살라는 뜻이 담겼고, 생일과 혼례 같은 경사스러운 날이면 국수가 빠지지 않았다.
고려시대 문장가 이규보(1169~1241)의 글에도 국수를 뜻하는 '탕병(湯餠)'이 등장한다. 아이가 태어난 지 사흘째 되는 날 친척과 친지들이 모여 국수를 먹으며 축하하는 '세삼(洗三)' 풍속도 있었고 혼례와 제례에도 국수를 올렸다.
스님도 국수 앞에서는 웃었다…'승소'와 '면생'
김유신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종무관은 "사찰음식을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 국수"라고 설명했다.
사찰에서 국수는 단순한 먹거리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맛에 대한 탐착을 경계하고 소식하는 수행자들도 국수만큼은 즐겼다고 한다. 국수를 먹을 때면 스님들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번진다는 뜻에서 '승소(僧笑)'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국수는 떡, 두부 등과 함께 스님들이 좋아하는 음식인 '삼소(三笑)'로도 불렸다. 경우에 따라 떡 대신 만두를 포함하기도 한다.
국수에는 살생을 피하려는 불교의 가르침도 담겼다.
고려시대에는 왕실이 종묘에 제사를 지낼 때 소 대신 국수를 제물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를 '면생(麵牲)'이라고 했다. 제물로 바치는 소를 뜻하는 '희생(犧牲)'을 국수로 대신했다는 의미다.
불교가 국가의 중심 사상이었던 고려에서 살생을 피하려는 불살생의 정신이 음식에도 반영된 것이다.
조선시대 진묵대사가 대중을 깨우치기 위해 바늘을 국수로 변화시켜 먹었다는 일화도 전한다. 국수가 불가에서 먹거리뿐 아니라 가르침을 전하는 매개로도 받아들여졌음을 보여준다.
김 종무관은 "여염집에서는 혼례와 생일을 기념하는 잔치음식이지만, 불가에서는 불살생의 의미를 전하는 음식이자 우매함을 일깨우는 지혜의 음식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비빔국수 (사진=한국불교문화사업단 제공) 2026.08.2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8/21/NISI20260821_0002218295_web.jpg?rnd=20260821170525)
[서울=뉴시스] 비빔국수 (사진=한국불교문화사업단 제공) 2026.08.2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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