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함께 견디면 살 수 있어요"…자살 유족서 '도움 활동가'로

등록 2023.09.11 07:00:00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자살 유족 지원활동가' 장준하씨 인터뷰

"남 살리겠다며 동생은 못 살려" 자책

"내 '고통 말하기'가 타인을 구합니다"

"살기 위해 찾은 곳이 '자조(自助)모임'"

자살 1건 발생 때 유족 5~10명이 영향

[뉴시스=서울] 임철휘 기자 = '세계 자살예방의 날'(9월10일)을 맞아, 5년 전 동생을 자살로 떠나보낸 사별 유가족 장준하(46)씨를 뉴시스 취재진이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공유오피스에서 만났다. 2023.09.08. fe@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뉴시스=서울] 임철휘 기자 = '세계 자살예방의 날'(9월10일)을 맞아, 5년 전 동생을 자살로 떠나보낸 사별 유가족 장준하(46)씨를 뉴시스 취재진이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공유오피스에서 만났다. 2023.09.0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한여름이었지만 몹시 추웠다. 실내에만 들어가면 오한이 들어 몸이 떨렸다. 해가 떠 있을 때는 나가서 걸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그날 만졌던 동생의 차가운 발을 잊을 수 있었다. 동생이 자살했다.

뉴시스 취재진은 '세계 자살예방의 날'(9월10일)을 이틀 앞둔 지난 8일 5년 전 동생을 떠나보낸 유가족 장준하(46)씨를 서울 종로구의 한 공유오피스에서 만났다.

장씨는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임상심리사로 일하고 있다. '자살 유족 동료지원 활동가'로 자살 유가족들이 모인 자조모임을 이끌고 있기도 하다.

2018년 5월 단칸방에서 숨진 동생을 처음 발견한 건 장씨였다. 별거하는 동생과 연락이 끊긴 지 이틀밖에 안 지났지만, 그날따라 아버지는 동생이 걱정된다고 했다.

"여행 갔겠죠"라며 부모님을 안심시켰지만 장씨의 마음 한편에도 불안이 싹텄다.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했더니 고급 호텔 식당에서 마지막 신호가 잡혔다. 동생이 "죽기 전 꼭 가고 싶다"고 했던 곳이었다.

소방의 도움으로 동생 집 문을 따고 들어갔다. 그러나 동생은 이미 차갑게 굳어 있었다. 숨진 동생을 붙들고 장씨는 한참을 울었다. "사람이 이렇게 차가울 수 있구나."

사별의 아픔은 머리보다 몸이 먼저 알아챘다. 햇볕이 없는 곳만 가면 오한이 들었다. 그 추위가 6개월간 이어졌다.

동생이 숨진 5월은 그가 기독교재단 자살예방센터에서 강사 양성 교육을 받고 있던 때였다.

사실 장씨 그 자신도 과거 자살 고위험군에 속했었다.

2008년 무렵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기 시작했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장씨가 빚더미에 앉자, 아내도 곁을 떠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반신 마비가 왔다. 더는 버틸 힘이 없다고 생각한 장씨는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장씨에게는 그를 지지해 주는 이들이 있었다. 그는 "누군가 내 옆에 있어 줬고 그게 감사했다. 대단한 도움이 아니다. 같이 얘기 나누고 떡볶이를 먹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며 자살 충동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그때부터 장씨는 자살을 하려는 사람들, 자살로 가족을 잃은 이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됐다. 그는 "곁에 남아준 사람들 덕에 저는 자살 위험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다. 비슷한 위기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저도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2017년 말 자살 예방 관련 대학원에 진학해 이듬해 3월 본격적인 강사 활동을 시작했다. 자살 예방 강사로 학교에 파견돼 '혼자가 아니다'를 설파했다.

그러다 5월이 됐고, 장씨의 동생이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형은 남들을 살리겠다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정작 동생을 못 살렸다"며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딱 맞았다"고 말했다. 그는 동생을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휩싸였다.
[서울=뉴시스] 22일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2021년 기준 연간 자살사망자는 1만3352명으로 자살율은 인구 10만명당 26.0명이었다. 이는 OECD 평균자살율 10만명당 11.1명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정부는 오는 2027년까지 자살률을 30% 가까이 낮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래픽=전진우 기자) 618tue@newsis.com

[서울=뉴시스] 22일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2021년 기준 연간 자살사망자는 1만3352명으로 자살율은 인구 10만명당 26.0명이었다. 이는 OECD 평균자살율 10만명당 11.1명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정부는 오는 2027년까지 자살률을 30% 가까이 낮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래픽=전진우 기자) [email protected]


살기 위해 찾은 곳이 '자조(自助)모임'이었다.

자조모임은 말 그대로 '스스로를 돕는 모임'이라는 뜻으로 장씨는 이곳에서 자살로 가족을 잃은 이들을 한 달에 한 번꼴로 만났다.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이 모여 있는 '안전한' 공간에서 저마다의 아픔을 털어놓는 것은, 그 자체로 치유가 됐다.

"모임에 가서 '(동생을 잃은 지) 이제 한 달도 채 안 됐어요'라고 했더니 자녀를 잃은 한 어머님께서 이렇게 말했어요. '참 힘들겠네요'. 그 한마디에 제가 이해받고 있구나, 제 얼어붙은 마음이 녹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고통 말하기'가 치유가 된다는 건 자조모임에 참여하는 이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것이었다.

"한번은 자녀를 잃은 한 어머님이 자조모임에 온 적이 있었어요. '제가 무슨 말을 하겠어요. 할 말이 없어요'라면서 입을 꾹 닫고 계셨던 분이었어요. 그런데 이후에도 꾸준히 모임에 오시더니, 마침내 본인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자조모임 덕에 '가벼워졌다'고 말했어요."

그때부터 그는 '아픈 사람만이 아픈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게 됐다. 고통받는 이를 돌보는 이가 상처 받은 사람일 때 상대방은 더 큰 위안과 안정을 체험한다는 것이다.

장씨는 2020년부터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자살 예방 활동을 하는 임상심리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자살 시도자나 유가족들을 만나 이들의 심리 상태를 평가하고 이들의 상태에 따라 병원을 연계하는 등 업무를 맡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자살 유족 동료 지원활동가'가 되어 한 달에 한 번씩 리더로서 자조모임을 이끌고 있다. 같은 아픔을 겪은 '동료'만 동료지원 활동가가 될 수 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8일 '2023년 세계 자살예방의 날 기념식' 행사에서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8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23 자살예방의 날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자살예방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3.09.08. jhope@newsis.com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8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23 자살예방의 날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자살예방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3.09.08. [email protected]


그는 "고통은 입 밖으로 꺼낼 때 해소가 돼요. 그런데 용기 내 고통을 말하기가 쉽지 않죠. 그런데 자조모임에서는 누군가가  자신의 상처를 말하잖아요. 그걸 들은 다른 사람들이 용기를 내는 겁니다. 그러면 그걸 들은 또 다른 사람이 또 용기를 내요. 용기가 전염되는 겁니다. 내 고통 말하기가 남을 구하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제게 8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듯이 저마다 견뎌야 하는 시간이 있다. 그 시간 동안 같이 견뎌주는 사람만 있다면 얼마든지 그 사람은 살 수 있다"며 "누군가가 곁에 있어줄 수 있는 공동체와 시스템이 마련되길 바란다"며 말을 끝맺었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자살 1건이 발생할 경우 주변 유족 5~10명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국내 자살 사망자 수가 연간 1만3000여명(2021년 통계청 사망원인통계)에 달하는 점을 감안했을 때 많게는 한 해 10만명 이상이 자살 유족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보건복지부의 2015~2021년 심리부검 면담 결과에 따르면 자살 유가족의 80% 이상이 우울증을 경험했고 60%가 극단선택을 생각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