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슬로시티]①亞 최초 슬로시티 첫 퇴출 파장

【광주=뉴시스】송창헌 기자 = 슬로시티국제연맹이 지난 2007년 말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Slow City)로 지정한 전남 장흥에 대해 "재인증 심사 결과 회원자격을 상실했다"며 이명흠 장흥군수에게 보내온 재인증 심사 결과 통보서. 국제연맹은 실적자료 미비와 사업성과 부족, 슬로푸드 식당 부재 등을 이유로 탈락 결정을 내렸다고 한국슬로시티본부가 7일 밝혔다. 2013.07.07. [email protected]
국내에도 2007년 12월 4개 지역이 아시아 최초로 국제연맹에 가입하면서 짧은 기간에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빨리빨리 문화'에 지쳐있던 도시민들에게 슬로시티는 더 없는 청량제가 됐고, '슬로시티=치유의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슬로시티는 브랜드 가치상승이나 관광상품화 측면에서 보기 드문 '대박'을 텄다.
그러나 불과 5년 새 12곳이 국제슬로시티로 지정되는 등 과도한 인증이 이뤄지면서 지방자치단체 간 경쟁이 빚어졌고, 관광 위주 정책이 버무려지면서 슬로시티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는 퇴색되기 시작했다. 단체장 치적 쌓기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결국, 이 과정에서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 4곳 중 2곳이 국제연맹으로부터 퇴출당하거나 1년 시한부 보류 조치를 받으면서 한국 슬로시티는 존폐 기로에까지 몰리게 됐다.
첫 언론보도가 있기까지 2개월간 각 지자체와 한국슬로시티본부는 퇴출 사실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지자체와 본부 간의 갈등과 소통 부재, 근시안적 정책 등도 속속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각 자치단체는 서둘러 후속 대책 마련에 돌입했고, 지방의회도 종합대책 마련을 주문하고 나섰다. 슬로시티의 심장 격인 주민들도 "이대론 안된다"며 운영방식 개선과 소통 채널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슬로시티본부도 추가 승인 작업을 사실상 중단하고 내실화에 주력하기로 했다.
한국 슬로시티의 첫 퇴출사태와 생사를 가른 슬로시티 철학, 해외 선진사례, 한국 슬로시티의 문제점, 해결 방안 등을 긴급 점검해본다. <편집자주>
①亞 최초 슬로시티 '흔들'…첫 퇴출 결정
14일 한국슬로시티본부와 해당 지방자치단체 등에 따르면 슬로시티국제연맹은 지난해 12월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인 전남 담양 창평과 장흥 유치·장평, 완도 청산도, 신안 증도 등 4곳을 대상으로 재인증 심사를 위한 실적보고서와 모니터링 결과 등을 제출받은 뒤 올 초 최종심사를 통해 장흥은 탈락, 신안은 보류 결정을 내렸다.
세계적으로 탈락 후 재인증된 사례가 없는 만큼 장흥은 슬로시티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게 됐다. 신안도 내년 4월 재인증 시점까지 슬로시티로서의 브랜드 가치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게 됐다.
반면 담양 창평과 완도 청산도는 행정력과 브랜드 가치 상승 등을 이유로 5년간 재인증됐다.
탈락과 재인증 여부는 지난 4월에 이뤄졌다. 심사통지서 번역본은 한국본부와 각 지자체에 5월을 전후로 통보됐다. 재인증 심사는 전 세계 27개국 174개 슬로시티 중 지정된 지 5년이 된 슬로시티를 대상으로 1년에 2차례씩 이뤄진다. 국내 12개 슬로시티 중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심사는 지역 환경과 자연조건, 생태, 음식문화, 삶의 질, 주민 반응, 지역 특산물 등 크게 6개 분야, 54개(현재 71개) 항목에 걸쳐 두 달 남짓 이뤄졌다. 각국 슬로시티 전문가 40∼50명이 국제조정위원회를 구성, 해당 슬로시티에서 올린 성과 자료 등을 토대로 심사를 벌였다.

【장흥=뉴시스】배동민 기자 = 7일 오전 장흥 슬로시티방문자센터가 장마 탓에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슬로시티 재인증 심사에서 탈락한 장흥은 오는 9월초부터 국제슬로시티연맹 로고를 사용할 수 없다. 2013.07.07. [email protected]
신안 증도는 5년간의 성과가 미흡하고 일부 업소에서 로고를 불법 사용한 점 등이 부정적 요인이 됐다. 슬로시티 지정 2년 만인 2010년 3월 증도대교가 들어서면서 섬으로서의 상징성과 정체성을 잃은 데다 외지인 방문이 폭증하면서 쓰레기가 넘쳐나는 등 애초 취지에 어긋난다는 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장흥과 신안은 이른바 '슬로시티 마케팅'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게 됐고 2010년 이후 3년 연속 이어진 전남 슬로시티 100만 관광객 시대에도 적신호가 불가피하게 됐다.
또 슬로시티가 요구하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만족하게 하지 못하면 나머지 8개 슬로시티도 지위 유지가 쉽지 않아 보여 제2, 제3의 탈락 지역이 나올 수도 있다는 우려감도 커지고 있다.
장흥과 신안은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후유증은 만만찮을 전망이다.
당장 브랜드 가치 하락에 따른 관광객 감소가 우려된다. 대부분 매우 급한 도시화와 패스트푸드에 맞선 슬로시티의 유유자적한 삶을 찾은 경우여서 슬로시티 퇴출은 크든 작든 관광객 유치에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인다.
교통표지판은 물론 행정서류, 안내책자, 홈페이지에 이르기까지 자유롭게 사용해온 슬로시티 로고도 전면 금지돼 대대적인 정비사업이 불가피하게 됐다.
아울러 특허청 등록상표가 장흥에서만 '정남진 슬로우시티 장흥' 등 3건에 이르고 농수축산식품 등 90여 종류가 이를 활용하고 있는데다 걷기 열풍에 힘입어 슬로시티 도보 코스도 개발된 상태여서 퇴출 여파에 민감한 실정이다. 특허청에 출원된 슬로시티 관련 표장만도 신안 증도가 34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고, 장흥도 5건에 달하고 있다.
슬로시티 자격 박탈로 국비 지원과 지역 축제에도 빨간불이 커졌다. 재인증 탈락 사실을 알고도 몇 달간 이를 공표하지 않은 데 대한 일부 주민과 군의원들의 반발도 만만찮아 군으로선 또 다른 짐이 되고 있다.
한국슬로시티본부 장희정 사무총장은 "5년 전 인증 신청 당시 슬로시티를 발전시키기 위해 진행하겠다고 약속한 사업들이 있는데 상당 부분 이뤄지지 않았다"며 "지자체의 안이한 대응과 운영이 이번 사태를 불러왔다"고 밝혔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지역공동체연구센터 김현호 소장은 "슬로시티는 개발과 이윤보다 느림을 통해 삶의 양식을 바꿔보자는 운동인데 성과주의와 세일식 접근이 이뤄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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