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글로벌기업 '혁신'을 배워라]②후지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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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강덕우 기자 = 기업의 주력사업이 속한 시장 자체가 시대의 흐름에 밀려 사라져 버린다면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필름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면서 필름업체들이 자취를 감추는 동안 위기에서 탈출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성장의 동력으로 삼은 기업이 있다.
더 이상 쓸모가 없다고 여겨지던 필름의 원천기술을 활용해 화장품·제약업체로 '환골탈태'한 후지필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면서 필름이 사양산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1980년대부터 나왔다. 하지만 필름시장을 삼등분해 장악하고 있던 코닥과 후지필름, 아그파포토 3사는 당시 최고 '캐시카우(수익창출원)'였던 필름을 포기할 수 없었다.
1881년 설립된 코닥의 경우 1976년 전성기에는 미국 필름시장의 90%, 카메라시장의 85%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강력한 기업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1975년 최초로 발명한 디지털카메라가 걷잡을 수 없이 발전하고, 세계 필름시장이 2000년부터 급속도로 추락하는 동안에도 "소비자가 필름 대신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디지털카메라 시장을 억제하고 필름산업을 활성화 시키려 노력했다.
필름시장은 디지털 시대의 급류에 밀려 연간 20~30% 감소했고, 이에 따라잡지 못한 코닥은 2012년 파산했다. 1876년 설립된 독일의 아그파포토도 디지털 시대로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2005년 파산하고 말았다.
후지필름도 코닥,아그파포토와 같은 위기에 직면했었다. 필름 산업이 본격적인 위기를 맞기 시작한 2000년 후지필름의 필름 부문 이익은 회사 총이익의 70%에 달했다. 하지만 후지필름은 코닥과 아그파포토와 같이 과거의 영광에 얽매이지 않았고, 단순히 아날로그-디지털에 대한 단순한 이분법적 태도에 초점을 맞추지도 않았다.
후지필름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역임하다 2003년 최고경영자(CEO)로 승진한 고모리 시게다카 사장은 "자동차가 없는 시대에 자동차 회사는 어떻게 살아남는가"라는 질문을 필름 업계에 물어야만 했다.
그는 이 질문에 '탈(脫)필름 구조조정'에서 해답을 찾았고, 경쟁사였던 코닥과 아그파포토가 잇따라 파산신청을 하는 동안 성장을 거듭해 2015년에는 역대 최고의 매출액을 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모리 사장이 취임한 2003년 당시에도 후지필름의 필름 매출비중이 20%에 달했고, 필름 관련 사업까지 포함하면 50%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후지필름의 필름 분야를 과감히 잘라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2년간 필름 관련 인원 5000명을 감축했으며, 2000억엔(약 1조9451억원)에 달하는 필름 관련 설비와 유통망 등을 제거한 뒤에야 사업 다각화에 나설 수 있었다.
고모리 사장이 카메라와 무관한 산업으로 눈을 돌리자 임원들은 "디지털 시대에 맞게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하고 이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원성을 쏟아냈다. 하지만 고모리 사장은 디지털카메라 시장에는 이미 니콘과 캐논, 소니 등이 장악하고 있어 진입장벽이 너무 높았다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1934년 설립 당시부터 70년 가까이 투자해온 필름 부문을 완전히 버리진 않았다. 고모리 사장은 '탈필름 구조조정'을 선포하면서도 "본업과 무관한 분야는 절대 진출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갖고 필름 기술과 부품을 다른 사업에 응용·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는 또 엔지니어들과 의논한 결과 "후지필름은 다양한 기술자원을 가진 회사"라는 결론을 내리고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고모리 사장이 2006년 회사명을 후지사진필름에서 후지필름으로 개명할 때도 사진을 포기하지만, 필름 기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후지필름의 엔지니어들은 마침 부상하고 있던 LCD TV 시장에 후지필름의 축적된 필름 기술을 직접 활용할 수 있는 것을 발견했다. LCD TV에 꼭 필요한 편광판에 들어가는 'TAC(Triacetyl Cellulose) 필름'의 구조가 후지필름이 만들어오던 카메라용 필름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지필름은 LCD TV 시장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2005년 1500억엔(약 1조4588억원)을 투자했다. 그 결과 현재 전 세계 TAC필름 시장의 70%를 독점하고 있는 성과를 거뒀다. 사진 필름을 코닥과 아그파포토와 삼등분하던 당시보다 훨씬 큰 비중의 시장점유율이다.
현재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LCD TV 시장의 1, 2위를 다투는 업체들도 TAC필름을 전량 수입하고 있으며, 이중 상당 부분은 후지필름으로부터 공급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후지필름의 탈필름 구조조정 및 다각화는 TAC 시장에서 멈추지 않았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후지필름의 대표적인 변화는 화장품 시장 진출이었다. 2007년 후지필름이 출시한 '아스타리프트(Astalift)'가 바로 그것이다.
아스타리프트도 필름 기술을 활용했다. 필름의 원자재는 콜라겐이라는 것에 주목한 것이다. 노화방지 화장품에도 활용되는 콜라겐을 70년 넘게 다뤄온 후지필름이 이를 사람의 피부에 적용했다.
우연히도 필름의 주원료인 콜라겐뿐만 아니라 사진의 변색을 방지하는 항산화 성분인 아스타잔틴(Astaxanthin)도 피부노화를 억제한다는 효과가 확인되면서 아스타리프트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모았다.
후지필름은 이 같은 사업 다각화를 위해 과감한 구조조정뿐만 아니라 파격적인 투자를 강행해야만 했다. 후지필름은 2000년부터 약품 회사 도야마화학공업과 초음파 진단장비 제조업체 소노사이트 등 40여개 회사를 7000억엔이나 들여 인수·합병했다. 특히 2008년 인수한 도야마화학공업의 경우 적자투성이였기 때문에 고모리 사장은 주주들의 비난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필름 개발 과정에서 20만개 이상의 화학성분을 다뤄본 경험이 있는 후지필름은 약품 회사의 기술을 활용해 최근 에볼라 치료제 '아비간'을 선보이는 등 혁신적인 의약품을 개발해나갔다.
후지필름은 올해 화장품과 의약품 부문에서만 4000억엔 규모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으며, 2020년에는 1조엔의 매출액을 예상하고 있다. 이는 2000년 필름에만 집중하던 후지사진필름의 총매출액인 1조4000억엔의 70%가 넘는 수치다. 후지필름의 2015년 매출은 약 2조4000억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후지필름의 총매출액의 20%에 달하던 필름 부문은 현재 1%도 채 되지 않는다. 반면 과감한 구조조정과 사업 다각화를 통해 새로 개척한 의료·전자소재·화장품 분야는 매출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고모리 사장은 기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용기"라고 밝힌 바 있다. 눈앞의 이익이 아닌 3~5년 후를 생각하고 새로운 분야의 리스크를 견뎌내기 위한 결단력과 용기를 뜻하는 것이다.
후지필름과 달리 2012년 파산한 코닥도 수익성이 보장되던 필름에 집착하고 파산 직전까지 몰렸을 때야 뒤늦게 화학약품을 이용한 제약산업에 뛰어들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후지필름의 구조조정은 아직 진행형이다. 후지필름은 2007년 사상 최대의 매출액인 2조8468억엔을 기록한 바 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피해갈 수 없었다. 후지필름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또다시 대규모 구조조정을 강행했고, 핵심인재를 해외로 파견해 현재 매출 비중의 60%가 해외에서 창출된다. 후지필름은 해외매출비중을 5년 안에 8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노무라의 와다키 테츠야 연구원은 "외부에서 봤을 때 후지필름의 구조조정은 절반 정도 진행된 것 같다"라며 "고모리 사장이 구상하고 있는 '제2의 창사'가 명확해지려면 끝까지 구조조정을 지속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모리 사장도 "승리를 선언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라며 "변화에 맞춰 계속 전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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