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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마지막 노예1세 1937년에 사망

등록 2019.04.03 22:4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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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1619년에 첫 흑인노예 사들여

300만 명의 흑인들이 백인 노예상에게 붙잡혀 죽음 아니면 노예가 되는 출발지점인 항구 기념문 <CNN 캡쳐>

300만 명의 흑인들이 백인 노예상에게 붙잡혀 죽음 아니면 노예가 되는 출발지점인 항구 기념문 <CNN 캡쳐>

【서울=뉴시스】김재영 기자 = 미국에서 마지막 아프리카 출생 '노예 1세'가 1937년까지 생존했던 것으로 3일 영국 여성 학자의 새 논문이 밝혀냈다.

미국은 영국에서 청교도들이 뉴햄프셔로 본격적으로 건너오기 1년 전인 1619년 버지니아주 식민 도시 제임스타운 백인들이 노예상으로부터 첫 흑인 노예를 샀다.

그로부터 200년도 훨씬 지나 미국 남북전쟁이 시작되기 직전 1860년 서아프리카 베냉에서 로데시라는 이름의 12세 소녀가 다른 부족에 의해 붙잡힌 뒤 백인 노예상에게 팔렸다. 116명의 생포 흑인들을 짐승처럼 가둔 노예선을 타고 대서양을 건너 미 앨라배마주 멕시코만 항구 모빌에 도착했다.

로데시가 타고 온 배 클로이틸다 호는 미국에 마지막으로 온 노예선이었고 영국 뉴캣슬 대학의 한나 더스킨이 조사 연구한 결과 이 로데시는 미국의 수백 만 노예1세 중 가장 마지막으로 숨을 거둔 '역사적' 인물이었다.

남부 노예시장에서 은행가 겸 플랜테이션 농장주 워싱턴 스미스에게 팔린 로데시는 샐리 스미스로 불렸고 1865년 노예해방 이후에도 스미스의 셀마 농장에서 계속 일하고 살았다. 더스킨의 조사에 의하면 로데시는 노예선에서 다른 생포 흑인과 결혼했으며 딸과 함께 셀마에서 일했다.

셀마는 1950년 후반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흑인 민권운동과 시위가 시발된 곳이다. 로데시에 관한 데이터가 관련이 먼 고문서, 인구조사 자료에 이어 직접적인 1차 구술 자료까지 남겨진 연유이기도 하다. 샐리 스미스가 70년 넘게 한 고장에 머물러 살다 89세 혹은 90세로 사망할 당시인 1937년은 지금부터 잘해야 82년밖에 떨어져있지 않다.

연구자 더스킨을 비롯 이를 보도한 BBC나 CNN이 주목하는 부문이 바로 이 지점이다. 고래적 아주 먼 일 같은 미국 흑인 노예의 역사가 생각보다 그다지 먼 과거가 아니라는 것이다.

1500년대 후반에 시작해 1800년대 후반까지 계속된 유럽 백인의 노예무역으로 서아프리카 고향을 등진 흑인 노예 1세는 1000만 명이 훌쩍 넘고 이 중 수백 만 명이 서아프리카 항구와 노예선 및 대서양 바닷길에서 목숨을 잃었다. 목숨을 부지한 흑인이 가장 많이 팔린 곳이 카리브해 지역이며 그 다음이 미국이다.

미국이 독립선언한 1776년 당시 거주 인구의 20%가 흑인 노예였다. 1860년 남북전쟁 직전 흑인 인구(노예인구) 수는 정확히 395만3761명으로 10년 간격의 센셔스가 집계하고 있다. 로데시는 당시 인구의 12.6%인 이 395만 명에 들어가지 않는다.

 로데시보다 더 늦게 사망한 노예 출신 흑인도 여럿 있지만 모두 미국 땅에서 태어난 노예1세 후손이다. 아프리카 땅에서 태어난 노예 1세가 1937년까지 생생하게 살았다는 사실은 미국을 알고자 할 때 기억할 만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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