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소원 도입 추진…헌재-대법 해묵은 갈등 표면화
헌재, 민주당 재판소원 추진에 찬성 의견 제출
대법 재판소원 반대 의사…"사실상 4심제 해당"
수십년간 이어온 다툼…1997년 소득세법 첫 충돌
헌재, 이례적 재판 취소 관련 사건 진행 경과 공개
법조계 "사법 체계 근간 흔드는 변화…신중 검토"
![[서울=뉴시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2025.05.23. (사진 = 뉴시스 DB) photo@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5/04/17/NISI20250417_0020775181_web.jpg?rnd=20250417100615)
[서울=뉴시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2025.05.23. (사진 = 뉴시스 DB)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이종희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삼는 재판소원 도입을 추진하면서 사법부 양대 기관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조기대선이 실시돼 새 정부 출범이 멀지 않은 가운데 재판소원 도입을 둘러싸고 양 기관의 수십년간 이어온 해묵은 갈등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을 파기환송하자 압박 차원에서 재판소원 도입을 위해 헌재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헌재법 68조에서 정한 헌법소원심판 청구 대상에 '법원의 재판'을 허용하는 방안을 골자로 한다.
헌재법 68조 1항은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하는데, 개정안은 현행 조문에서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문구를 삭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헌재는 재판소원 찬성…대법 "사실상 4심제" 반대
헌재는 "현행 헌재법 68조 1항은 '법원의 재판'은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일률적으로 제외해 실질적 권리구제에 중대한 한계를 초래하고 있다"며 "대법원의 판결로 귀결됐다는 이유만으로 헌법적 판단이 봉쇄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명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14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현행 헌법상 재판소원은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헌법 규정에 반한다"며 "재판소원을 도입하면 사실상 4심제를 도입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법원이 반대 의사를 밝힌 이유는 판례를 변경하고 재판 결과를 확정하는 최고 법원의 역할이 헌재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재판소원 도입으로 헌재가 법원의 결정을 최종 심사하면 대법원의 기능이 유명무실해질 것으로 우려한다.
수십년간 이어온 다툼…1997년 소득세법 첫 충돌
헌재가 대법원의 판결에 한정위헌 결정을 하면, 대법원이 한정위헌 결정의 기속력을 부정하는 판결을 내놓았다. 다시 헌재는 재판 취소 결정을 하며 정면 충돌했다.
대법원과 헌재가 맞붙은 첫 사례는 지난 1997년 소득세법 사건이다.
이길범 전 의원은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양도소득세를 부과한 과세 처분에 반발해 취소 소송을 냈고 법원에서 패소하자 헌재에 소득세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재는 이 전 의원의 헌법소원을 인용 결정했다. 이 전 의원은 헌재의 결정을 근거로 행정소송을 냈는데 대법원에서 패소가 확정됐다.
이에 대해 헌재는 과세의 근거가 된 법률 세법 조항에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는데 법원이 기속력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법원 판결을 취소했다.
대법원은 재판 취소 결정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면서 양 기관의 힘겨루기 양상이 이어졌다. 결국 국세청이 문제가 됐던 과세 처분을 취소하고, 이 전 의원도 소송을 취하하면서 일단락됐다.
![[서울=뉴시스] 서울 서초구 대법원. 2025.05.23. (사진 = 뉴시스 DB) photo@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5/05/08/NISI20250508_0020801229_web.jpg?rnd=20250508092749)
[서울=뉴시스] 서울 서초구 대법원. 2025.05.23. (사진 = 뉴시스 DB) [email protected]
헌재, 이례적 재판 취소 관련 사건 진행 경과 공개
헌재는 해당 사건에 대한 사건 개요, 사건 현황 등을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했는데, 개별 사건에 대해 진행 경과를 공개하는 건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KSS해운이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이 재판 취소 결정 이후 대법원이 재심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서 장기화된 재판소원 관련 사안이다. 이에 헌재가 대법원과 재판소원을 둘러싸고 갈등이 표면화된 상황에서 제도 도입에 힘을 싣기 위해 적극 나선 것으로 해석됐다. 헌재 관계자는 "재판 취소 결정 이후 권리 구제가 되지 않는 사례를 알릴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해당 사건은 2004년 KSS해운이 세무당국의 세금 부과 처분에 불복하면서 시작됐다. KSS해운은 상장을 전제로 법인세를 감면받았으나 기한을 지키지 못했다. 세무당국은 KSS해운에 법인세를 부과했고, 회사 측은 과세 처분의 일부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KSS해운은 항소심 과정에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했으나 기각되자 2009년 2월 헌재에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소원 사건이 접수돼 심리 중인 가운데 대법원은 2011년 4월 KSS해운이 제기한 행정소송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했다.
헌재는 2012년 7월 KSS해운이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을 과세의 근거가 된 구 조세감면규제법 부칙이 이미 실효됐다는 취지로 한정위헌 결정했다.
KSS해운은 헌재의 결정을 근거로 재심을 청구했으나, 대법원은 "한정위헌 결정이 재심 사유가 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이에 재심 기각 판결의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헌재는 2022년 7월 대법원의 재심기각 판결이 위헌결정의 기속력에 반한다고 보고 판결을 취소했다.
KSS해운은 헌재의 재판 취소 결정에 따라 재심을 청구했으나 대법원은 해당 사건에 대해 심리를 진행 중이다. KSS해운은 대법원 판단이 지연되자 지난 4월 "국세청이 부과처분을 직권 취소하지 않고 있는 부작위가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재판 취소 결정 이후 대법원에서 재심을 기다리는 사건 5건이 미선고됐다며 "권리구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조계 "사법 체계 근간 흔드는 변화…신중 검토"
한 부장판사는 "대법원과 헌재의 다툼은 결국 국회에서 정할 몫이지만 예상치 못한 변화로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은 국민"이라며 "제도 도입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헌법재판관은 "대법원과 헌재가 수십년동안 다퉈왔기 때문에 국민의 기본권 보장 측면에서 제대로 결론을 내는 것이 필요하다"며 "서두를 문제는 아니고 국민적 합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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