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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마다 1999년 12월1일…정몽구 회장의 뚝심[기아 80년 결정적 순간②]

등록 2025.12.13 09:01:00수정 2025.12.13 09:3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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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 위기와 함께 기아차 도산 위기

정몽구 명예회장, 인수전 적극 참여

이후 현장 매진…조기 정상화 도전

비운의 상장 카니발, 성공 이끌어

[서울=뉴시스] 정주영 현대차 창업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이 1999년 3월 기아 화성공장을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기아 80년 사사) 2025.12.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정주영 현대차 창업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이 1999년 3월 기아 화성공장을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기아 80년 사사) 2025.12.1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기아의 역사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역사였다"는 정몽구 명예회장 말처럼, 기아는 80년 동안 수많은 위기와 도약을 반복하며 성장했다.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선도하고 있는 기아의 현재 혁신 동력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창업 이래 회사의 존립과 정체성, 미래 방향을 근본적으로 뒤바꾼 가장 결정적인 순간 톱3를 꼽아본다.

[서울=뉴시스] 류인선 기자 = "기아자동차를 인수해 정상화할 수 있는 한국 자동차 업체는 현대자동차밖에 없습니다."

현대그룹은 1998년 3월 기아자동차 인수 의사를 이렇게 밝혔다.

당시 한보그룹을 시작으로 외환위기가 본격화되면서 기아자동차는 도산 위기에 내몰렸다. 글로벌 공급 과잉으로 자동차 업계의 인수합병(M&A)이 이어지던 시기였다.

기아자동차가 위기를 맞은 것은 '첨단 기술'에 전념했지만, 경제성을 갖춘 차량을 만들지 못한 데서 출발한다.

스포츠카 엘란은 원가가 4000만원이 넘었지만, 출고가는 2750만원에 불과해 '기술 지상주의'의 단면이라는 오명을 받았다.

기아 인수전…현대차, 삼성·포드 제치고 승리

김선홍 회장이 이끈 전문경영인 경영 체제의 한계도 드러났다. 우리사주조합과 경영발전위원회 등 임직원 지분이 18%로 단일 최대 주주였다. 국민 기업, 모범적인 소유 구조의 대표로 불렸지만, 독단적 의사 결정을 방지할 내부 견제 장치가 없었다.

분식 회계와 내부 통제 부실 등으로 인해 기아자동차는 결국 부채 12조8000억원을 떠안은 기업이 됐다.

국제 입찰이 열렸고, 삼성, 대우, 포드, 현대가 기아자동차 인수전에 참여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과 현대그룹 경영전략팀은 정주영 창업회장을 설득해 인수전에 적극 뛰어들었다.

결국 현대그룹은 주당 응찰가 5500원, 부채 탕감 7조3000억원을 제시하며 1순위 인수 협상자가 됐다. 이후 정 명예회장이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공동회장을 맡으며 그룹에 편입됐다.

"따로 또 같이"…정몽구 회장의 현장 경영 리더십

정 명예회장은 1998년 12월 기아자동차 주식 납입대금 1조1781억원을 마련한 후 본격적으로 현장 경영에 나섰다. 그는 같은 달 7일 오전 기아 아산만 공장, 오후 소하리 공장을 잇따라 방문했고, 이틀 후에는 아시아자동차 광주 공장으로 향했다.

이어 11일에는 계동사옥에서 조기 경영 정상화 방안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정 명예회장은 3년 내에 흑자 전환하고, 1999년 말까지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낮추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내놓았다.

정 명예회장이 주재하는 각종 회의 자료에는 굵은 글씨로 '1999년 12월 1일'이라는 목표 달성 기한이 적힌 것은 지금까지 유명한 일화다. 회의하고 나면, 현장에서 그 내용이 어떻게 구현됐는지 확인하는 것은 정 명예회장의 중요한 일과였다.
[서울=뉴시스] 평택항에서 선적을 기다리는 기아의 수출용 차량들. (사진=기아 80년 사사) 2025.12.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평택항에서 선적을 기다리는 기아의 수출용 차량들. (사진=기아 80년 사사) 2025.12.1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카니발은 이런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법정관리가 발표된 1997년 10월 국제 무대에 데뷔한 카니발은, 그룹 편입 후 카렌스, 카스타와 함께 미니밴 전성시대를 여는 핵심 키 역할을 했다.

업계 관계자는 "기아자동차는 2000년 법정 관리를 조기 졸업했다"며 "현대그룹의 리더십과 1조원 이상의 대규모 자금 투입, 현대자동차와의 시너지 효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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