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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자인 헝다 회장 종신형…中 부동산 ‘새 둥지 성장’ 시대의 종언

등록 2026.08.21 15:22:41

쉬 전 회장, 두 아들 등 56명 함께 실형…한 시대에 대한 단죄

높은 부채·높은 레버리지·빠른 회전율 3고(고) 성공 비결, 몰락부른 독으로

농촌 가난한 소년에서 최고 부자, 종신형 수감자 전락

[서울=뉴시스] 중국 부동산 대기업 헝다 그룹의 쉬자인 전 회장이 20일 광둥성 선전시 중급법원에서 종신형과 재산 몰수, 정치 권리 박탈 등을 선고받고 있다. (출처: 명보) 2026.08.21.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중국 부동산 대기업 헝다 그룹의 쉬자인 전 회장이 20일 광둥성 선전시 중급법원에서 종신형과 재산 몰수, 정치 권리 박탈 등을 선고받고 있다. (출처: 명보) 2026.08.21.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중국 헝다(恒大)그룹 창업자 쉬자인 전 회장(67)이 20일 뇌물, 횡령, 불법자금 모금 등 8개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 정치 권리 종신 박탈, 재산 몰수 등을 선고받았다.

이날 선전 중급인민법원과 선전 난산구 인민법원에서 쉬 회장과 함께 선고를 받은 사람은 그의 두 아들(큰 아들은 해외 도피 중), 헝다 그룹과 헝다 부동산 임원 등 56명에 이른다.

이들은 1년 10개월부터 18년에 이르는 징역형과 함께 벌금 및 재산 몰수 등을 선고했다.

쉬 전 회장, 두 아들 등 56명 함께 실형…한 시대에 대한 단죄

쉬 전 회장에 대한 판결은 한 때 중국의 부동산 시장을 좌지우지했던 인물들에 대한 집단적인 판결이자 그러한 부패와 비리가 가능했던 시대에 대한 단죄의 의미가 있다.

법원은 쉬 전 회장이 “시장 경제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사회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며 “불법 이득 환수를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쉬 전 회장과 헝다가 사회에 입힌 피해 중 대표적인 것은 지금도 전국에 짓다 말고 방치된 채 회사가 파산하고 상장 폐지되면서 약 16만 여명의 개인 투자자가 투자 자금을 날리게 된 것이다.

헝다 그룹은 2조 4000억 위안(약 492조 원)이라는 막대한 부채를 남기고 중국 기업 사상 최대 손실을 기록했다.

전국에 널린 수백만 채의 미완성 주택은 부동산을 넘어 중국 내수 경제의 발목을 잡는 큰 요인을 제공했다.

그에 대한 단죄는 성난 민심을 달래고 내수 부진의 속죄양으로서도 정부에 필요할 수도 있다.

올해 1분기 헝다 주택 중 완성돼 팔린 것은 약 53%(320만 채 이상)에 불과하고 미완성 주택의 거의 절반은 중서부의 3,4선 도시(동부에 비해 덜 발달된 도시)에 집중되어 있고 상당수는 3년 이상 공사가 지연되고 있다.

경제학자 마광위안은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한 부채, 주민들의 자산 감소, 그리고 소비와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단 한 번의 판결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명보는 20일 보도했다.

헝다는 완커(万科), 비쿠이위안(碧桂园)과 함께 3대 부동산 건설사로 불렸으나 과도하게 사업을 확장하다 2020년 8월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개발업체 대출 규제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쉬 전 회장은 2023년 8월 회사가 파산 신청을 한 뒤 그해 9월 체포됐다가 이날 처음 공개석상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4월 재판에서 자신에 대한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고 한다.

높은 부채·높은 레버리지·빠른 회전율 3고(高)…성공 비결, 몰락의 요인으로

헝다의 성공은 높은 부채, 높은 레버리지, 빠른 회전율이라는 ‘3대 고(高)’ 모델에 크게 의존해 왔다.

그러나 이 ‘3대 고’는 중앙 정부가 “주택은 거주를 위한 것이지 투기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정책라고 하면서 대출을 규제하면서 독이 됐다.

헝다는 ‘새 둥지는 지어 놓으면 새가 날아든다’는 이른바 ‘새 둥지 성장’ ‘부동산(을 기반으로한) 성장’ 시대를 상징하는 회사였다.

‘새 둥지 성장’은 공공기관으로부터 싼값에 토지를 임대해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낮은 금리로 주택을 지어 놓은 뒤 판매 후 건설비용 등을 회수하던 시대를 대신했다.

이런 과정에서 벌지던 것이 뇌물, 횡령, 편법 대출, 권력 유착 등 개발 시대의 비리가 모두 동원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출길이 막히고 수요가 줄어들면 빚으로 지은 주택은 흉물 시멘트 덩어리로 남게 되고 이에 관련된 인물들을 나락으로 몰게 된다.

쉬 전 회장의 몰락과 단죄가 한 개인 만의 일이 아닐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헝다 제국의 성장과 몰락에 관여된 인물들

헝다의 거대한 사업 제국 뒤에는 수많은 지역 지도자, 고위 관료, 그리고 금융 거물들이 연루되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 중 명보가 21일 소개한 일부만 봐도 화려한 면면을 알 수 있다.

하이난성 단저우시 전 당서기 장취안은 ‘세계 최대 인공섬’으로 알려진 ‘오션 플라워 아일랜드’ 건설 계획을 부적절하게 승인했다.

랴오닝성 법무부 장관을 지낸 탕이쥔은 재임 시절 헝다가 성징은행의 경영권을 인수하고 수천억 위안의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도왔다.

선전시 전 시장 천루구이는 헝다 본사를 선전으로 이전하는데 관여했다.

심지어 중국 최고지도부인 중앙정치국 위원 출신으로 선전시 당서기와 광둥성 성장을 역임한 마싱루이는 헝다의 신에너지 자동차 사업을 지지했다.

그의 동생 마싱취안도 헝다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다.

사형에 2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던 구중원 전 국가체육총국장은 국가대표 선수들의 헝다 축구 클럽 이적을 지원했다.

금융계에서는 시티은행의 쑨더순, 중국초상은행의 톈후이위, 중국은행의 류량거, 중국에버브라이트은행의 리샤오펑 등이 헝다의 막대한 자금 조달에 불법적으로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농촌 가난한 소년에서 최고 부자, 종신형 수감자 전락 

그는 허난성의 한 농촌 마을에서 태어난 가난한 소년은 억만장자가 되어 전설적인 부동산 제국을 건설했으나 종신 수감자로 전락했다.

그는 1958년 허난성 시골 지역에서 태어났다. 생후 8개월에 모친을 여의고 조부모 손에서 자랐다.

그는 1974년 고교를 졸업했지만 문화대혁명 때문에 진학을 못 하고 마을에서 건설자재를 파는 사업을 시작했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대학이 문을 열자 사업을 정리하고 1978년 우한철강학원(이후 우한과학기술대학) 금속공학 전공으로 입학했다.

대학 재학 중 여러 사업들을 벌이다 1990년대 초반 한창 경제가 발전하던 광둥성 선전시로 내려왔다.

이후 중다(中达) 그룹에 입사한 뒤 능력을 발휘해 불과 2년 만에 사장까지 승진했다.

1997년 중다그룹에서 독립해 헝다그룹을 창업해 2000년대 중반 광둥성의 부동산 확장붐을 타고 부동산 재벌로 발돋음했다.

경제 호황과 부동산 붐을 발판으로 헝다 그룹은 주요 도시 전역으로 사업을 빠르게 확장했다.

2010년부터는 스포츠, 신에너지 자동차, 금융 분야에도 진출해 2017년에는 순자산 2900억 위안으로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등을 제치고 중국 최고 부자가 됐다.

그는 화려한 생활 방식으로 유명해 여행시 항상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헝다 무용단도 만들었다.

올해 67세인 그는 20일 재판정에 나왔을 때 백발에 희끗희끗한 눈썹으로 나이에 비해 늙어 보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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