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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강력레이저 지금 때 놓치면 과학기술 패권경쟁서 도태"

등록 2023.01.09 09:26:02수정 2023.01.09 09:5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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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창희 GIST 교수 "초강력레이저 국가 과학기술계획 반영 절실"

우리나라 선도적 기술 개발했지만, 선진국 공격투자·추격 나서

[무안=뉴시스]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 운영 중인 초강력 레이저 연구시설. (사진=전남도 제공) 2022.09.11. photo@newsiscom

[무안=뉴시스]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 운영 중인 초강력 레이저 연구시설. (사진=전남도 제공) 2022.09.11. photo@newsiscom


[나주=뉴시스] 이창우 기자 =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올 상반기 '초강력레이저 연구시설' 부지를 공모해 선정할 예정인 가운데 대한민국이 과학기술 패권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관련 연구를 더욱 서둘러야 한다는 전문가 주장이 제기됐다.

최첨단 초강력레이저는 불확실한 미래에 '초격차 산업' 선점을 통해 산업지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해 줄 미래 먹거리로 꼽힌다.

국내 펨토초(1000조분의 1초) 레이저 연구의 선구자인 남창희 광주과학기술원(GIST) 교수는 9일 기술패권을 언급하면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기업으로 세계적인 반도체 제조 장비 업체인 네델란드의 시가총액 1위 기업 'ASML'을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ASML은 반도체 제조 장비 가운데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전 세계적으로 독점하고 있다.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도 장비 공급 요청을 위해 여러 번 직접 방문할 정도로 영향력을 갖춘 회사다.
남창희 광주과학기술원(GIST) 교수. (사진=뉴시스DB)

남창희 광주과학기술원(GIST) 교수. (사진=뉴시스DB)


남창희 교수는 "한마디로 세계 첨단산업인 반도체 분야에서 겉보기는 을의 위치이지만 실제로는 '슈퍼갑' 중에서 '슈퍼갑'이라"고 ASML을 정의했다.

그는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에 사용되는 극자외선 광원은 레이저로 생성된 플라즈마를 이용하며, 노광장비의 핵심은 고반복, 고출력 CO2 레이저 기술이다"고 설명했다.

남 교수는 ASML이 레이저 기술의 중요성을 선제적으로 인지해 발 빠르게 기술 개발에 나선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ASML은 세계적 레이저 회사인 사이머(Cymer)를 자회사로 편입했고, 트럼프(Trumpf) 레이저 회사와 손잡고 필요한 탄소(CO2) 레이저를 개발해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성공적으로 개발했다.

고성능 레이저를 공급할 수 있는 최고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지금의 극자외선 노광장비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남 교수는 "세계 굴지의 기업은 이처럼 독보적인 레이저 기술 확보를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며 "이러한 기술은 막대한 수익 창출은 물론이고 국가 위상을 높일 뿐 아니라, 2019년 한국과 일본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기술 분쟁에서도 보듯이 국가 경제 안보를 위해서도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도 예전과는 달리 여러 분야에서 큰 기술적 발전이 있었다. 특히 초강력레이저 분야에선 기술패권 지위를 획득했을 정도로 큰 발전이 있어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초강력레이저는 일반적으로 페타와트(1000조 와트)급 이상의 고출력을 가진 레이저를 말한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초강력레이저과학 연구단은 지난 2016년에 세계 최고 출력인 4페타와트 레이저를 자체 개발해 가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4페타와트 레이저 빔을 머리카락 두께의 100분의 1에 해당하는 1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초소형 공간에 집속해 세계 최초로 1023 W/㎠ 이상의 레이저 세기를 얻는 데 성공했다.

지난 2004년 미국 미시간 대학교 연구진에 의해 1022 W/㎠ 세기가 달성된 이후 답보 상태에 머물던 과학계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지난 20년간 극초단광양자빔구축사업(2003-2012년)과 기초과학연구원의 초강력레이저과학연구단(2012년–현재)을 통해 초고출력 레이저 기술 개발에 꾸준히 투자한 결실이다.

남 교수는 "이렇듯 우리나라가 전세계 레이저 연구자들이 부러워하는 초강력레이저 분야에서 기술패권의 지위를 획득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최근 선진국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면서 "미국은 50페타와트, 중국은 100페타와트, EU와 러시아는 200페타와트급 레이저 연구시설 구축을 진행하거나 제안하고 있는 등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의 공격적인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고 경각심을 촉구했다.

대한민국이 각고의 노력으로 일군 초강력레이저 분야의 선도적 우위를 빼앗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예정된 위기를 극복하고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전남도와 나주시에서 세계 최대 출력인 200페타와트급 레이저 연구시설 구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남 교수는 "우리는 어려운 시기마다 기초과학 연구가 큰 힘을 발휘했다는 역사적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하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도 단백질 구조분석이라는 기초과학 연구가 없었다면 시도조차 불가능했다"고 사례를 들었다.

그러면서 "만일 이 같은 연구를 경제적 논리로 평가했었다면 인류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겪었을지도 모르며, 초강력레이저 연구개발도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현재 초강력레이저 연구개발의 주목적은 기초과학 연구이지만 연구개발 과정에서 초격차 최첨단 기술을 확보할 수 있고, 이렇게 얻은 기술들은 머지않아 반도체, 바이오·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금은 상상도 못할 차원 높은 핵심기술의 근본기술이 될 것임이 자명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따라서 현 산업구조를 바탕으로 한 단순 경제성 분석보다는 기술패권 지위를 계속 유지하고 미래 발전을 위해 무엇보다도 시급하게 추진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검토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남 교수는 "초강력레이저 연구개발은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지만 과다한 초기 투자비용으로 인해 민간에서 추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초고도의 전문기술이 요구되는 대규모 사업은 국가가 계획부터 주도해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제언했다.

과학기술 패권경쟁서 밀리지 않으려면 이처럼 초강력레이저 관련분야 기술 연구개발이 시급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의식을 담은 과학계의 진정 어린 요청은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되고 있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향후 5년간 과학기술 분야 최상위 계획인 '제5차 과학기술기본계획(안)'을 수립했지만 안타깝게도 레이저 기술 육성계획이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 교수는 "갈수록 기술패권 지위 획득을 위한 세계 선진국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에 순간의 방심으로도 아찔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더욱이 초강력레이저 연구는 기초과학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산업과 핵융합 에너지, 최첨단 무기 개발 분야에도 응용성이 높아 기술 경쟁에서 밀릴 경우 국가 안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여러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남창희 GIST 교수는 "눈앞의 이익에만 연연하다 위태로운 시간을 겪었던 여러 역사적 사건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다시 한 번 떠올려야 할 때다"고 경종을 울렸다.

한편 현재 국내에선 전남도 외엔 공식적으로 초강력레이저 연구시설 유치를 밝힌 지자체가 전무한 가운데 전남도와 나주시는 과기부 로드맵에 맞춰 나주혁신도시에 연구시설 유치를 위해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나주혁신도시가 최고의 확장성과 개발 용이성·지반 안전성·서비스 편의성을 두루 갖춘 데다 한국에너지공대와의 시너지를 장점으로 내세운 채 연구시설 최적지임을 적극 어필하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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