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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증시는 밸류업하는데…증권가 모럴헤저드 언제까지

등록 2024.05.15 2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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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증시는 밸류업하는데…증권가 모럴헤저드 언제까지


[서울=뉴시스]우연수 기자 = "금융투자 업권은 검사를 해서 제재를 해도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에서 자본시장 업권 업무를 두루 거친 한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금감원은 은행, 보험, 여신, 금융투자 등 업권을 감독하고 있는데, 똑같이 불법을 적발하고 제재해도 금융투자 업권은 유난히 재범률이 높고 업계 내 자정 작용도 없다는 것이다.

최근 2년만 해도 수많은 위법·부당 행위들이 드러난 탓에 다 읊기도 힘들 지경이다. 개인투자자들 사이에 주식 열기가 뜨거워졌던 어느 해에는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기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분석 리포트를 내기 전 해당 종목을 선행매매해 차익을 챙겼다. 개미들을 이용한 것이다.

부동산 '붐'이 일었을 땐 증권사와 운용사 임직원들이 개발 관련 미공개 직무 정보를 이용해 수십억원의 부당 이득을 취했다. 본인들은 싼값에 투자하고 고객 돈이 들어간 자사 펀드로 비싸게 엑시트(자금 회수)하기도 했다. 지난주엔 부동산 신탁사들이 시행사와 용역 업체 등에 고리의 이자를 받아내거나 수십억 상당의 금품을 수취한 사례들도 밝혀졌다.

선을 지키는 것, 도덕적으로 일하는 것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돈을 잘 버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선을 넘는 것이 증권가에선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금감원 제재를 받은 전적이 그들만의 리그에선 '훈장'처럼 여겨지기도 한다는 후문이다.

한번 당국에 찍히면 회사 잔류도, 동종업계 이직도 어려워지는 타업권과 달리 증권가에서는 받아줄 곳이 여전히 많은 것도 문제다. 8년 전 A 증권사 재직 당시 채권형 신탁 불건전 운용으로 걸렸던 직원은 이 노하우로 이후에도 승승장구, B사로 이직해선 업그레이드된 수법으로 불건전 운용을 이어가다 재차 적발됐다. 징계는 징계대로, 업계는 업계대로 돌아가니 제재 실효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게 금감원의 오랜 고민이다.

그 결과 증권맨, 펀드매니저 등에 대해 일반인들이 떠올리는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불법 공매도, 미공개정보 이용, 부동산 개발 정보 악용, 랩·신탁 손실 돌려막기, 임직원의 사익 편취." 이들의 모럴헤저드(도덕적 해이)는 공정하고 투명해야 할 시장을 교란했고, 직접 고객 또는 다수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안겼다.

검사와 제재보다 중요한 건 업계의 자정작용이다. 투자 시장이 커지고 고객 등 이해관계자가 많아질수록, 주먹구구식이 아닌 최소한의 내부통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형식적 수준의 내부통제는 안된다.

현재 금융사들이 열심히 준비 중인 '책무구조도' 비슷한 것을 과거 책임 회피용으로 쓴 모 증권사 전 대표의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대표 자리에 오르자마자 가장 먼저 내규 개정을 통해 대표(본인)를 전결권자에서 빼고 밑의 임원들로 책임을 내려 보냈다. 금감원에서 검사를 나가도 대표가 전결권자인 게 없어 책임을 물을 수도 없었다는 후문이다.

직원들에게 돈 벌어 오라고만 시키고 회사는 뒷짐 지는 지금 같은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 위법·부당행위를 개인의 일탈로 치부해 내보내고, 다른 데서 쫓겨난 직원을 받아주는 식의 '눈 가리고 아웅'이 사라져야, 국내 자본시장이 진정으로 한 단계 '밸류 업(value up)' 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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