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밍족 "남자들은 화장하면 안 되나요?"
섬세하면서도 꼼꼼하게 얼굴에 화장품을 펴 바르는 그의 손길은 마치 베테랑 처럼 느껴졌다. 주변에서는 그를 신기한 듯 바라봤지만 이씨와 함께 있던 친구들은 그의 이러한 모습이 낯설지 않은 듯 했다.
스무살 무렵 여드름 자국을 가리기 위해 화장을 시작했다는 이씨는 석달 전 남성들의 화장품과 화장에 대한 노하우를 전하는 블로그인 '아우라M'을 개설했다. 이씨에게 있어 이제 화장은 자신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자신감의 원천이다.
그는 "이제 맨 얼굴로 밖에 나가면 손목시계를 안 차고 나온 것 처럼 허전하다"며 "여성들도 맨 얼굴에 트레이닝복 차림 일 때 보다 하이힐을 신고 있을 때 더 자신감이 생기는 것 처럼 남성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최근 들어 자신의 외모 관리에 관심을 갖고 화장품과 미용 등에 적극적으로 비용을 투자하는 남성들. 일명 '그루밍(Grooming)족'이 늘어나고 있다. 마부(Groom)가 말을 빗질해 말끔하게 꾸민다는 뜻에서 나온 신조어다.
젊은 남성들을 중심으로 그루밍족이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화장하는 남성들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관대해 지고 있는 추세다.
그루밍족 관련 책을 펴낸 김한균(26)씨는 "2~3년 전만 해도 남자가 화장을 한다고 하면 게이가 아닐까하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시각이 많이 옅어졌다"고 해석했다.
지난 3일 오후 3시께.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한 백화점 화장품 매장을 찾은 회사원 박모(31)씨는 진열된 화장품을 살펴보다 샘플을 자신의 손등에 직접 발라보며 테스트를 했다. 실제 면봉으로 화장품을 조심스럽게 바르는 모습이 여성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박씨는 "색조화장을 하진 않지만 BB크림 정도의 가벼운 화장을 하는 남성들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불광동에서 온 대학생 한모(22)씨도 "남성도 스타일이 중요한 시대인데 지나치게 심한 메이크업만 아니면 괜찮은 것 같다"고 귀띔했다.
화장에 관심을 갖는 남성들이 늘어나자 화장품 시장에서는 이들을 잡기 위해 상품군을 늘리고 매장을 확대하는 등 적극적인 구애작전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남성 화장품 로드숍인 '맨스튜디오'를 개점한 아모레 퍼시픽 관계자는 "과거에는 스킨이나 로션 등이 인기를 끌었지만 최근에는 BB크림이나 선크림 등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고 있다"며 "고른 피부결이나 피부톤 보정에 대한 남성들의 욕구가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LG생활건강의 더페이스샵은 지난해 7월 아예 남성 전용 메이크업 라인을 출시한 데 이어 제품을 아이라이너 등 포인트 메이크업 군으로까지 확대했다.
매장 관계자는 "남성 제품의 매출 비중이 전체의 약 6~8%에 달하고 매출 신장 폭 역시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특히 남성용 BB크림은 지난해 대비 20% 이상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로는 성 역할에 대한 경계가 점차 모호해졌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서강대 전상진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가 변화하면서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희석되다보니 메트로섹슈얼화되는 경향이 있다"며 "남성들이 이제껏 외모를 꾸미는 것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책임감으로 그 욕구를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 교수는 "여성들도 사회진출을 활발히 하기 시작하면서 경제적인 축을 담당하는 지금 남성들이 미적 욕구를 분출할 수 있게 됐다"며 "남성들도 타인에게 중요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화장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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