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은 컬처pop]‘지아이조’뿐이리오, 北은 악의축

이병헌이 출연한 두 번째 할리우드 영화 ‘지.아이.조 2’의 첫 장면에는 휘날리는 인공기가 보이는 휴전선 인근에서 탈북자를 구출하는 미군이 나온다. 극의 전개와는 무관하다. 지아이조 부대의 활약상을 보여주기 위한 단편적 일화다. 외국인이라면 무심코 넘길 신이지만, 우리나라 관객이라면 비무장지대(DMZ) 관할권 문제를 떠올리며 잠시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
2002년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신년연설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 이래 할리우드는 약속이나 한 듯 주인공의 활약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적국으로 북한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선두에 선 것이 그해 말 개봉한 007시리즈 제20탄 ‘007 어나더데이’였다. 동토의 제국 북한의 무기밀매 현장에 위장잠입해 비밀임무를 수행하던 제임스 본드(피어스 브로스넌)가 붙잡혀 고문을 당하다 풀려난 후 신무기로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장교 문 대령(윌 윤 리·토비 스티븐슨)과 맞서 싸운다는 얘기다. 당시 차인표는 문 대령 역을 제의받았으나 한반도를 철저하게 할리우드의 오락장으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에 고민 끝에 포기의사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북한을 심히 왜곡해 세계를 위협하는 악마로 묘사한 점, 휴전선을 지키는 이가 미국이고 제임스 본드가 대한민국에 와서 주요책임자로 만나는 이도 미군관계자들로 한국인은 주권도 없는 투명인간처럼 그려져 있는 점을 그 이유로 들었다.
앤절리나 졸리 주연 영화 ‘솔트’(2010)의 도입부도 ‘007 어나더데이’와 오버랩된다. 미국 CIA요원 솔트가 북한 핵시설을 파괴하려했다는 혐의를 받고 북한에 억류돼 모진 고문을 받다가 포로 맞교환 형식으로 석방되는 내용이 10여분간 이어진다. 공교롭게도 ‘지아이조2’의 제작자는 ‘솔트’를 제작한 로렌조 디 보나벤추라다. 우연인지 의도된 것인지, ‘솔트’와 ‘지아이조2’에는 모두 북한이 초반부에 등장할 뿐더러 미국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핵발사권을 탈취해 핵폭탄을 투하하려는 악당에 맞서싸운다는 스토리다. 본래 ‘지아이조2’의 첫 장면은 자신이 연기한 자객 ‘스톰 섀도’가 파키스탄 대통령을 암살하는 신이었다는 것이 이병헌의 말이다.
연출과 편집 과정에서 변화가 있을 수는 있지만 ‘지아이조2’는, 아무리 만화 원작이라 해도, 핵 발사 버튼을 눌러버리는 장면이 너무 가볍게 다뤄져 실소를 머금게 한다. 핵보유국 정상들이 모여 회의를 하다가 가짜 미국 대통령이 핵무기 발사 버튼을 누르자 타국 정상들도 잇따라 이 버튼을 눌러 결국 런던이 초토화되는 장면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과 자리를 나란히 한다. “작다고 무시할 수는 없다”, “이번에도 북한이 가장 늦다”며 북한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대사들이 나오기도 한다.
이 장면에 대해 존 M 추 감독은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를 연상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거장 스탠리 큐브릭의 이 영화는 블랙코미디로서 일관된 풍자성을 유지하지만, 나름 심각하게 선악대결을 벌이는 블록버스터에서는 뜬금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북한을 다루는 그의 입장은 제3자로서는 이해할만한 설명이다. 추 감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희화화하고 싶었다”며 “‘지아이조’라는 만화가 비현실적인 얘기이고, 시사적인 사건이나 사고를 만화적으로 풀어내려 했을 뿐이지 심각성을 주려고 한 의도는 없었다”고 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그려지는 악의 국가는 그 당시 뉴스에 자주 나오는 나라를 꾸며 등장시켜 슈퍼영웅이 나와 싸워 제거하는 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냉전시대까지는 구 소련이 할리우드 영화에 공공의 적으로 단골등장했다. 2011년 작 ‘엑스맨: 퍼스트클래스’에서도 1960년대가 배경이 되면서 소련과 소련과 손잡은 쿠바가 적국으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이 종식되면서 더 이상 ‘주적’을 찾지 못한 할리우드는 새로운 악한으로 북한을 선택했다. 영화 ‘레드던’(2012)이 상징적이다. 미국내에서는 예상보다 흥행에 성공했는데, 국내에서는 개봉하지 않기로 한 작품이다. 1984년 작을 리메이크한 이 영화는 북한군 특수부대가 미국 워싱턴주를 침략, 점령하고 이에 맞서는 미국 민병대의 활약을 그렸다. 존 밀리어스 감독의 1984년작에서는 소련, 쿠바, 니카라과 3국연합이 침략국으로 설정됐다.
이외에도 ‘머더1600’(1997), ‘스텔스’(2005), ‘에너미라인스2-악의축(2006)’ 등 크고 작은 미국영화에서 북한은 적국으로 등장하고 있다. 북한이 핵 위협을 가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영화제작사 측은 리얼리티 강화와 흥행 가능성을 고려해 이 같은 설정을 더욱 반길 수 있다. 그러나 세계로 배급되는 할리우드 영화의 영향력을 감안할 때 한반도의 주권이 오리무중처럼 돼버리고, 남북분단 현실은 단순 선악대결로 오인되는 이러한 설정이 한국인에게는 영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문화전문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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