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립 잡기노트]둘 다 고생한다, 영어와 한국인

구와 절을 애용하면 영어다. 국어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다. 국어를 공부하는 것이 옳다. 영어가 우리말을 좀먹은 탓이다. ‘락키펠러’(록펠러), ‘와슁턴’(워싱턴)이라고 발성하지 않아도 괜찮다. 천하의 반기문 UN 사무총장도 미국사람처럼 말하지는 않는다. 미국 국회의원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또박또박 영어연설을 쏙쏙 알아듣고 박수를 쳤다.
얼마 전 세종대왕이 태어난 616돌 세종날을 앞두고 한글학회 얼말글 교육관에서 ‘지나친 영어 편식 정책 문제점과 해결책’ 토론회가 열렸다. 리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는 “영어 편식 교육으로 겨레와 나라의 뿌리가 썩고 있다”고 개탄했다. “일찍이 120년 전 이 나라가 쓰러져 갈 때 주시경 선생은 남의 글을 배우는 힘과 시간을 살아가는 데 더 필요한 우리 말글과 실업, 과학 교육에 쓰면 더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면서 우리 말글을 살리고 빛내기에 힘썼다”며 “영어 편식 교육을 중단하고 제 말부터 잘 가르쳐라”고 촉구했다.
한학성 경희대 영어학부 교수는 “대학 영어 강의, 그 참을 수 없는 위선의 가벼움”을 폭로했다. 영어 강의의 “보다 근원적이고 실질적인 이유는 대학 평가에 영어 강좌 비율이 중요하게 반영되기 때문”이라면서 “국내 대학들끼리의 경쟁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다. 세계화 시대의 대학 경쟁력 강화라는 표면적 이유와 우리끼리의 경쟁에서 보다 나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라는 실질적 이유 사이에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위선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소한 현재와 같이 영문과에서는 영어 강좌를 하지 않아도 되고, 국문과에서는 영어 강의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아이러니는 마감해야 한다. 대학 영어 강좌에 대한 논의를 할 때,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다음이 돼야 한다”며 “영문과나 영어교육과 혹은 기타 영어를 필요로 하는 학과에서 영어로 강의할 것을 요구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대학 영어 강좌에 대한 더 이상의 논의는 무의미하다. 현재의 우리 상황이 바로 그렇다고 할 수 있다”고 짚었다.
“물론 영문과 외에도 국제 관계를 담당할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자 하는 학과나 대학이 있을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외국인 유학생들이 다수 재학하고 있는 학과나 대학도 있을 수 있다. 이런 학과나 대학들은 자율적으로 원어 강좌에 대한 결정을 하면 된다. 지금처럼 영어를 필요로 하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대학, 모든 학생들에게 영어를 요구하고, 나아가 영어 강좌를 요구하는 어리석음은 탈피해야 할 것이다.”
한 교수는 “영어 강좌를 선택한다는 것은 전공 지식과 영어 중에서 영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전공 지식 습득에 있어 어느 정도 손실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영어로 인한 이득이 어느 정도 있다고 하더라도, 전공 지식 습득 면에서의 손실이 그 이득을 상회한다면, 그런 영어 강좌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형태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은 영어유치원, 사실은 ‘유치원’이라는 명칭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사설학원 등 ‘상상을 초월하는 영어 몰입교육 실태’를 공개했다. “모국어인 국어 예산은 6억원, 외국어인 영어 예산은 982억원으로 약 160배 차이가 난다. 이것이 정상적인 나라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일찌감치 ‘사걱세’(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는 잘못된 영어교육을 문제 삼았다. 영·유아의 정상적 발달을 방해하는 영어유치원을 비롯한 영어 조기교육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판단이다. 영어도서관을 세워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의지만 있다면 양질의 영어에 노출될 기회를 모든 국민이 누릴 수 있는 실용 영어교육 인프라를 구축하라고 주문했다. 우리나라 영어환경에 적합한 ‘다독 기반 학교-가정 연계 영어교육’ 모델을 도입해 사교육비 지출은 물론, 영어교육을 위한 엄마의 부담을 덜고 공교육을 통한 실용영어능력 신장을 구현하자고 제안했다.
1997년 이전, 즉 영어가 초등학교 정규과목이 되기 전에 영어를 익힌 세대의 우국충정 만은 아니다. 다들 영어를 배우지 말자는 소리는 안 하기 때문이다. 과유불급을 말할 뿐이다. “아날로그 시대의 인재는 성실하고 말 잘 듣고 부지런한 사람이었지만, 디지털 시대의 인재는 창의력과 스피드를 갖추고 있고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윤종용 삼성전자 전 부회장의 현실직시 주장에 토를 다는 남녀도 없다.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국의 연예·스포츠 스타들은 영어를 꽤 잘한다. 발음도 원어민과 흡사한 수준이다. 예체능 실력을 갈고 닦느라 또래의 보통학생들처럼 한국식 영어교육을 덜 받고 자란 덕일 지도 모른다. 나중에 필요에 의해 영어를 배운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런 듯하다.
문화부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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