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90년대학번들 홀릴듯, 가슴뭉클 팬서비스 영화 ‘비포 미드나잇’

미국청년 제시(에단 호크)와 프랑스처녀 셀린느(줄리 델피)의 후일담이 궁금한 이들이라면, 영화관을 찾아보고픈 마음이 들 것이다.
두 사람이 유럽여행 중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말을 섞게 되면서 벌어지는 빈(비엔나)에서의 하룻밤 로맨스는 세계 젊은이들의 호응을 얻으며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감독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젊은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꿈꿨던, 누군가는 실제 겪기도 했을 또래 외국인 이성과의 매력적 짧은 만남을 전형적인 극영화가 아닌 둘 만의 진지하고 끊이지 않는 대화 위주로 구성하면서 ‘솔메이트’ 같은 이상적 관계를 잘 그려낸 덕분이다.
9년 만에 나온 속편 ‘비포 선셋’(2004)을 통해 꽃피운 이들의 사랑은 또 9년이 흘러 ‘비포 미드나잇’을 통해 보다 실생활적이고 현실적인 지점을 맞이했다. 두 남녀가 유럽의 골목골목을 걸으며 쉴새없이 떠들어대는 덕에 ‘워키토키 영화’라는 애칭을 얻은 이 시리즈는 트릴로지(3부작) 마지막에서 절정을 이룬다.
9년을 함께 살며 서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되고 공통의 주제가 많아지고 40대에 들어서며 경험도, 아는 것도 늘어나면서 수다의 향연 속으로 관객들을 몰아넣는다. 솔직히 108분 러닝타임 내내 떠들어대는 두 배우의 전력연기도 놀랍고, 대사 하나하나가 사실감 넘치는 것도 놀랍다. 그 숨넘어갈 듯 숨찬 대화를 일일이 따라가다 보면 핑 도는 어지럼증과 함께 배고픔까지 느끼게 될 정도다.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제시와 셀린느가 첫 등장부터 실제 존재하는 옛 친구를 오랜만에 다시 만난 듯 리얼하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지저분하게 수염을 키운 에단 호크(43)는 그렇다치고, 손질하지 않은 부스스한 금발, 화장기 없는 얼굴 등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해온 줄리 델피(44)는 굵어진 팔뚝, 푹 퍼진 엉덩이와 배를 드러내며 ‘여배우’라는 느낌을 삭제했다. (델피는 이 영화 이후 배우로서는 은퇴하고 극작과 연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소설가 제시처럼 실제로 호크는 미국 텍사스 출신으로 자신의 소설을 발표한 작가이기도 하고(유명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후손이기도 하다), 이혼한 전처인 우마 서먼(43) 사이에 아이를 두고 재혼하기도 했다. 델피 역시 셀린느처럼 파리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극단적인 남녀평등주의자의 어머니의 영향으로 페미니스트 성향이 강하다. ‘비포 선셋’에 나왔듯 뉴욕으로 옮겨가 파리를 오가며 살고 있기도 하다.
영화는 그리스의 아름다운 해변마을 카르다밀리에 위치한 작가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제시와 셀린느가 제시와 전처 사이에서 낳은 아들과 쌍둥이 딸들과 함께 보낸 여름휴가의 마지막 날을 담았다. 파리에서 재회 후 임신한 셀린느를 위해 제시는 파리로 건너와 동거한다. 프랑스의 많은 동거커플들처럼 결혼식은 올리지 않았지만 실질적인 부부로 살아왔다.
돌을 쌓아올려 만든 아늑한 집과 해변풍경, 오랜 유적과 비잔틴 시대의 작은 교회가 살짝살짝 등장하긴 하지만 영화는 ‘워키토키’라는 원래의 정체성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관광영화’로 나아가지 않은 것이 이 작품의 미덕이기는 하다. 그러나 관객 입장에서는 그리스까지 가서 푸른 지중해 한 번 시원하게 보여주지 않는 것이 조금 아쉽다.
게스트하우스의 노주인과 역시 그처럼 배우자를 잃은, 그의 오랜 친구의 아내가 한 쌍이 되고, 노주인의 손자와 그의 여자친구가 20대 젊은 커플, 제시·셀린느 커플보다 약간 연상으로 보이는 중년 부부와 야외에서 지중해식 만찬을 벌이며 대화를 한결 풍부하게 만들기는 하나, 거의 제시와 셀린느의 끊임없는 대화 만이 이어진다. 이들 또래로, 이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관객이라면 무척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이 끝도 없이 계속되며 시나리오에 들인 공에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게다가 국제결혼이 가져오는 거주의 문제 등 더욱 복잡해진 인터커플의 문제들에다가 “프랑스 여자는 헤프다”는 문화차와 편견적 독설까지 터져나오며 이들의 말싸움은 더욱 생생해진다. 18년 이상 다져온 이들 배우의 우정도 시너지 효과를 더한다. 종종 백치미녀로 ‘변신’해주는 델피의 연기도 재치로 넘친다.
제작진의 의도로는 이것이 ‘비포’ 시리즈의 마지막이 될 것 같다. 그러나 한 9년쯤 뒤 또 제시와 셀린느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팬의 마음이다. 15세관람가 등급을 받은 시리즈 전작들과 달리 ‘비포 미드나잇’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다.
직접적인 베드신은 없지만 델피가 프랑스 여우답게 과감하게 젖가슴을 한동안 노출하고, 애무하고, 페미니스트답게 잠자리 문제에 대해서도 과감한 표현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22일 국내에서 세계 최초 개봉한다. 요즘 ‘추억 마케팅’의 주타깃층인 90년대 학번들을 끌어들이는 데는 입소문 만으로도 큰 어려움이 없을 듯하다. 그 이상의 관객층을 확보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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