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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겸 칼럼]이슬람 교도, 티베트에도 살고있다

등록 2013.08.01 07:41:00수정 2016.12.28 07:5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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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하도겸 박사의 ‘히말라야 이야기’ <22>  티베트 관련 소식을 실시간으로 소개하는 더 티베트미러에 의하면 14세기에서 17세기 사이 인도 카슈미르, 라다크 등에서 와 티베트에 정착한 모슬렘 상인들은 티베트인 여성과 결혼을 했다. 티베트 안의 모슬렘 즉, 이주 배경을 가진 다문화가정인 ‘카체’ 즉 이슬람교 믿는 티베트인의 형성이다. 티베트에 정착한 그들은 우리나라에 정착한 다문화 가정들처럼 티베트어를 사용하나 ‘회족(回族)’들이 이슬람 전통에 따른다. 제5대 달라이 라마(1617~1682)의 배려로 모슬렘들은 이슬람교를 계속 신앙할 수 있었으며, 티베트 라싸 조캉사원 뒤 등 4개의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를 설치했다. 쿠란을 공부할 수 있는 이슬람 대학 역시 설치한 바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dogyeom.ha@gmail.com

【서울=뉴시스】하도겸 박사의 ‘히말라야 이야기’ <22>

 티베트 관련 소식을 실시간으로 소개하는 더 티베트미러에 의하면 14세기에서 17세기 사이 인도 카슈미르, 라다크 등에서 와 티베트에 정착한 모슬렘 상인들은 티베트인 여성과 결혼을 했다. 티베트 안의 모슬렘 즉, 이주 배경을 가진 다문화가정인 ‘카체’ 즉 이슬람교 믿는 티베트인의 형성이다. 티베트에 정착한 그들은 우리나라에 정착한 다문화 가정들처럼 티베트어를 사용하나 ‘회족(回族)’들이 이슬람 전통에 따른다. 제5대 달라이 라마(1617~1682)의 배려로 모슬렘들은 이슬람교를 계속 신앙할 수 있었으며, 티베트 라싸 조캉사원 뒤 등 4개의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를 설치했다. 쿠란을 공부할 수 있는 이슬람 대학 역시 설치한 바 있다. 카체는 부처님 오신 달 ‘사가다와’에는 고기를 먹지 않는 등 불교를 배려한다고 한다. 종교적으로도 화합하는 성공적인 다문화 사례이지만 누구도 관심을 두고 있진 않는다.

 2008년 7월 13일 방미 중인 제14대 달라이라마는 펜실베이니아 주 리하이 대학에서 이슬람을 폭력적인 종교로 지칭하는 것은 잘못되고 불공평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2001년 11월 아프가니스탄 난민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 5만 달러를 기부한 달라이라마는 2011년 9월 17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민주주의를 위한다는 미국의 처음 의도는 좋았으나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의 전쟁에 대해 반대하며 2001년 9·11 테러 이후 모슬렘에게 다가갈 것을 강조하는 평화롭고 자비로운 주장을 펼쳤다.

 2012년 5월 28일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에서 이슬람교도 3명이 27세의 불교도 여성을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한 후 최소 50명 이상이 사망하는 유혈 충돌이 발생했다. 이에 인도 남부 모슬렘 사회에서 미얀마 불교도들에 의해 살해된 모슬렘들 사진이라며 티베트 승려들이 쓰촨 성 지진에서 사망한 시체들을 수습하는 사진을 돌리며 악의적으로 모슬렘들을 격앙시켰다. 7월 14일 달라이 라마는 1000명이 넘는 티베트인 모슬렘들인 카체의 환영을 받으며 스리나가르에 있는 티베트 공립학교를 방문해 “우리는 종교가 다를지라도 모두 티베트인으로서 하나이며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다시 볼 수 있어 매우 행복하다”고 밝혔다.

 8월 14일 남인도 마이소르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모슬렘 2명이 길을 가던 티베트 불교 승려를 흉기로 위협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8월 22일 티베트 망명정부 롭상 상가이 총리는 인도 뉴델리에서 모슬렘 사회 지도자 시에드 야햐 부하리를 만나 “티베트인들은 예로부터 모슬렘 등 모든 주변 종교인들과 평화롭게 지내왔으며, 오해가 낳은 이번 사태에 대해 해결책을 마련해 달라”는 달라이라마의 서한을 전하는 한편 문제의 사진은 미얀마 종교 분쟁과는 상관없는 오해임을 충분히 설명했다. 하지만 왜 총리가 갔으면 그만인 것이지 총리가 꼭 달라이라마의 서한을 전달했을까는 의문이 간다.

 지난 3월 20일 미얀마 중부 만달레이주 메이크틸라시에서 모슬렘이 운영하는 귀금속점에서 주인과 고객 간 금 거래를 놓고 벌어진 언쟁이 양측 간의 충돌로 이어져 최소 40명 이상이 숨졌고 정부의 비상사태 선포로 이어졌다. 같은 달 스리랑카에서도 불교 조직이 이슬람교도가 소유한 상점을 공격했다. 5월 7일 달라이 라마는 미국 메릴랜드 대학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일은 이해하기 어렵다. 미얀마와 스리랑카에서 승려들이 이슬람교도와 이슬람 사원을 공격해 정말 슬프다. 불교도들은 이슬람 공동체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이 생길 때는 부처의 얼굴을 생각하라고 조언하며 부처가 이슬람교도들을 보호해 줄 것이다”고 종교화합의 말을 건넸다.

 올해 7월 7일 오전 5시 45분께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불교 최대 성지인 인도 비하르주 보드가야(옛 부다가야)에서 인도 이슬람 무장단체인 무자헤딘의 소행으로 보이는 폭탄 10발이 터져 미얀마 승려와 티베트 불교 닝마파 승려 등 2명이 다쳤다. 마하보디 템플 내 카르마 카규파의 사원 일부가 파괴됐다. 지난 7월 24일 티베트 망명정부의 롭상 상카이 총리는 무자헤딘이 불교 신자와 사원을 테러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는 대테러 담당 수사기관인 인도 조사국(NIA)의 경고와 관련해 인도 정부에 달라이 라마 신변 보호를 더욱 강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끊임없는 달라이라마의 모슬렘 옹호발언과 평화적인 배려와 상생에 대한 언급에도 달라이라마가 테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서울=뉴시스】하도겸 박사의 ‘히말라야 이야기’ <22>  티베트 관련 소식을 실시간으로 소개하는 더 티베트미러에 의하면 14세기에서 17세기 사이 인도 카슈미르, 라다크 등에서 와 티베트에 정착한 모슬렘 상인들은 티베트인 여성과 결혼을 했다. 티베트 안의 모슬렘 즉, 이주 배경을 가진 다문화가정인 ‘카체’ 즉 이슬람교 믿는 티베트인의 형성이다. 티베트에 정착한 그들은 우리나라에 정착한 다문화 가정들처럼 티베트어를 사용하나 ‘회족(回族)’들이 이슬람 전통에 따른다. 제5대 달라이 라마(1617~1682)의 배려로 모슬렘들은 이슬람교를 계속 신앙할 수 있었으며, 티베트 라싸 조캉사원 뒤 등 4개의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를 설치했다. 쿠란을 공부할 수 있는 이슬람 대학 역시 설치한 바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dogyeom.ha@gmail.com

 7월 14일 “(달라이 라마는) 미국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침략전쟁에 입도 뻥긋한 적이 없다”는 ‘환상을 먹고 자란 세계 평화의 우상’이라는 기사가 한겨레 신문에 보도됐다. 아울러 “1989년 달라이 라마는 노벨평화상을 받으면서 이제 세계를 향해 평화를 외칠 수 있는 ‘자격증’까지 확보했다. 그 모든 바탕엔 제2차 세계대전 뒤부터 대중국 봉쇄 정책을 펴온 미국 정부의 매우 어려운 대티베트 공작과 지원이 깔려었다. 바로 달라이 라마라는 우상과 세계 평화론이 태어난 조건들이었다. ‘불행한 땅은 영웅을 필요로 한다.’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말을 음미해볼 만하다.”는 내용이었다.

 달라이라마는 미국의 전쟁에 반대해 왔다. 서구의 정치적인 이해가 깊이 반영된 노벨평화상의 수상은 대중국 견제용이며 미국 CIA의 대중국외교에 티베트 망명정부와 달라이라마가 이용된 것도 맞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인 이해가 없었더라도 훌륭한 불교 수행자로서 평화주의자인 달라이라마는 노벨평화상 수상 이상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 또 티베트인의 인권과 평화를 위해 미국과 상호 이익이 맞아서 협조한 것이지 언제나 미국의 꼭두각시가 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더 티베트미러의 운영자 룽타와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의 정웅기 운영위원장(전 티베트평화연대 대변인), 청정승가를 위한 대중결사 이명호 사무국장, 나무여성인권상담소 김영란 소장, 마하이주민단체협의회 남춘호 사무팀장, 비영리사단법인 나마스떼코리아 권윤영 기획실장을 비롯한 친 티베트성향의 인사 21명의 공식 항의 서한과 한국 내 달라이라마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항의 등으로 해당 신문사의 정정기사를 바로 이끌어내며 일단락되는 듯하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가 아무리 자신은 부처가 아니라고 선언하고 자유로운 민주주의를 원하며 정치적으로 완전히 은퇴했고 제15대 달라이라마는 종교에만 관여할 것이라고 선언했다고 해도 티베트인들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일련의 행위는 티베트인들의 달라이라마에 대한 존경심과 신앙심을 증폭시키기만 할 뿐이다. 티베트인들에게 있어 달라이라마는 단순한 환생자 툴쿠가 아닌 14대나 전승돼온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티베트인 모두가 진정으로 신앙하는 관세음보살의 환생이다. 정교일치의 절대 권력이며 신정(神政)이라는 지적은 전혀 틀리지 않다. 또 달라이 라마의 친족이나 연줄에 따른 소수 엘리트가 독점해온 티베트의 정치·종교·경제·사회적인 권력은 망명 후에도 그다지 변화하지 않았다는 몇몇 지적은 소수의견이라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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