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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 사격' 계기 관심끄는 5·18 미해결 과제들]

등록 2016.12.18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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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정수만(70) 전 5·18 민주유공자유족회장이 14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 10층 옛 전일방송 영상 데이터베이스(DB) 사업부 사무실을 찾아 기둥에 남겨진 총탄 흔적을 살피고 있다. 2016.12.14.  sdhdream@newsis.com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정수만(70) 전 5·18 민주유공자유족회장이 14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 10층 옛 전일방송 영상 데이터베이스(DB) 사업부 사무실을 찾아 기둥에 남겨진 총탄 흔적을 살피고 있다. 2016.12.14.  [email protected]

최초 발포 명령자, 암매장 등 의혹 수두룩 정확한 사망자·실종자·행불자 수도 과제 "진실 규명 더딘 사이 5·18 왜곡만 춤 춰"

【광주=뉴시스】송창헌 기자 = "이명박 정부 이후 5·18 왜곡과 폄훼가 춤을 추면서 진상 규명이 묻힌 측면이 강합니다. 국가 차원의 전수조사 없이 제대로 된 진실 규명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5·18기념재단 관계자)

 5·18의 아픈 역사를 함께 했던 '광주 금남로 1번지' 전일빌딩에서 1980년 5월 계엄군이 쏜 것으로 보이는 총탄 흔적이 150여 곳이나 발견되고, 이 중 상당수는 헬기 사격에 따른 탄흔이라는 것이 기정사실화되면서 그동안 헬기 사격과 함께 제기됐던 5·18 미해결 과제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5·18 진실 규명 운동은 1987년 6월 항쟁을 계기로 불붙기 시작해 노태우 정부에서 민주화합추진위원회가 꾸려지고, 여소야대 국회이던 1988년 7월부터 1989년 12월 말까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 소위 '광주청문회'가 열렸지만, 관련자들의 진술 거부와 자료 부족, '국민 화합을 해칠 수 있다'는 논리 등이 진실의 길을 가로막았다.

 김영삼 정부 들어서도 '선 진상 규명, 후 명예 회복'을 촉구하는 국민적 요구 속에서 '12·12, 5·18 고소·고발사건'이 이어졌지만 검찰과 국방부는 훗날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결정했다.

 그러던 중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정 축재 사건이 터지면서 12·12, 5·18 특별수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 전두환·노태우·허화평 등 5공 실세 15명이 처벌을 받았지만 핵심 문건인 군부대 이동 상황과 작전 일지, 계엄군수 등은 끝내 공개되지 않았다.

 당시 '5·18 학살자 재판 회부를 위한 광주·전남공동대책위원회'도 "검찰 수사가 가해자 중심으로 진행돼 학살과 만행 자체가 축소됐다"며 대표적인 미해결 의혹으로 34가지를 들었다. ▲ 도청 앞 집단발포의 사전 계획과 최초 발포 상황 ▲ 헬기 기총 소사 ▲ 대검 양민 학살 ▲ 시외곽 양민 학살 ▲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등이다.

 이후 5·18특별법이 제정되고 계엄군이 양심 선언을 하고,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잇따라 들어서고 특히, 국방부 내에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까지 설치됐지만 5·18 진상 규명은 요원한 과제로만 남았다.

 4만800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 수집과 육군본부 작전상황 일지, 보안사 일일보고, 11공수여단의 작전 상황 일지, 5월17일 전국 주요 지휘관회의록 등 57권의 자료집이 확보됐지만 최초 발포 명령자, 사망자와 실종자, 행방불명자 수, 헬기 기관총 사격, 암매장 등 핵심 의혹들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13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 1가 1번지 전일빌딩 3층 윤동주문학관 사무실에서 김동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총기안전실장이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쏜 것으로 추정되는 총탄 흔적에 대한 조사를 벌인 뒤 헬기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2016.12.13.  sdhdream@newsis.com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13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 1가 1번지 전일빌딩 3층 윤동주문학관 사무실에서 김동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총기안전실장이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쏜 것으로 추정되는 총탄 흔적에 대한 조사를 벌인 뒤 헬기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2016.12.13.  [email protected]

 그러다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정권 시대에 5·18은 '폭동', '북한군 개입' 등 왜곡과 폄훼에 시달려야만 했고,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수년째 되풀이됐다.

 5·18 재단 관계자는 18일 "헬기에서 계엄군이 총을 난사했다는 증언이 이어졌지만 진실 규명은 36년이 지난 지금에야 소중한 단초를 찾게 됐다"며 "국가 차원의 전수조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발포 명령자나 암매장, 정확한 피해자 수는 영구적 과제로 남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피해자 수만 보더라도 논란은 계속된다. 2007년 국방부 과거사위는 "민간인 166명이 숨졌다"고 밝혔고, 육군본부 자료에는 "민간인 부상자가 852명에 이른다"고 적혀 있고, 광주시 자료에는 '5·18 유공자 5517명 중 사망 155명, 행방불명 81명, 상이 후 사망 110명' 등으로 기록돼 있지만 적어도 사망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미국 하비 목사가 이끄는 '한국인권감시 북미연맹'이 1980년 9월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5월21일 도청 진압작전 이전에 사망자는 이미 500명에 이르고, 960여명이 실종됐다고 기록돼 있다.

 '광주의 어머니' 고(故) 조아라 여사는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시내에서)관을 구할 수가 없었다"고 생전에 회고하기도 했다.

 암매장도 마찬가지다. 2001년 이후 공수부대원 등의 증언이 이어졌지만 유골 발굴 탐사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고, 검찰의 수사 기록 공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암매장 문제도 십수년째 짙은 안개 속에 파묻혀 있다.

 헬기 사격도 고(故) 조비오 신부와 시민군 이광영씨, 아놀드 피터슨 목사 등의 증언이 잇따랐음에도 당시 계엄군은 이를 전면 부인하며 되레 조 신부 등을 고소, 법적 다툼으로까지 비화됐으나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되면서 36년 만에 '그 날의 진실'이 밝혀지게 됐다.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은 "전일빌딩 헬기 사격 탄흔은 5·18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라며 "미해결 과제들을 푸는 게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의 한을 풀어주는 길"이라고 밝혔다.

 전남대 최정기 교수는 '민주 장정 100년, 광주·전남 사회운동사'를 통해 "과거 청산 과정에서 정략적 합의가 이뤄지면서 5·18 진실의 사회적 위상을 형성하지 못한 한계 등을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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