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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카실록] "경주마의 전속력 질주"…각진 차 '갤로퍼'

등록 2023.02.28 11:00:00수정 2023.02.28 11: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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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저 호황 바람에 자동차 시장 수요 사륜구동 SUV로 이동

쌍용차가 장기 집권하던 SUV 시장, 후발주자 어려움 겪어

시작은 면허생산… 출시 3개월 만에 3000대 이상 판매

1년만에 쌍용차 밀어내고, 점유율 50% 확보하기도

[서울=뉴시스]강주희 기자 = [편집자주] 한국 자동차 역사를 들여다보면 오랫동안 사랑 받은 명차들이 눈에 띕니다. 시대와 사람을 초월한 이런 차들에는 저마다 숨겨진 스토리가 있습니다. 명카실록은 국내 자동차 시장에 한 획을 그었던 명차들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좋은 철학과 탁월한 안목을 가진 한국의 명차들을 독자 여러분께 쉽고 흥미밌게 전달하겠습니다.

[서울=뉴시스] 현대모비스의 전신 현대정공이 1991년 출시한 사륜구동 SUV 갤로퍼는 2003년 단종까지 12년간 국내외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다. (사진=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 제공) 2023.02.2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현대모비스의 전신 현대정공이 1991년 출시한 사륜구동 SUV 갤로퍼는 2003년 단종까지 12년간 국내외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다. (사진=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 제공) 2023.02.2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각진 외형에 둥근 헤드램프. 거침없이 질주하는 경주마를 닮은 우람한 외관.

현대자동차의 첫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갤로퍼는 출시 3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명차 중의 명차'로 불린다. 현대모비스의 전신인 현대정공이 일본 미쓰비시 기술을 이어받아 라이센스 생산한 것이 시작이다. 갤로퍼는 특히 국내 SUV 시장의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갤로퍼 탄생은 이른바 '3저(저금리·저유가·저환율) 호황'이 한창이던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득이 늘고, 삶의 질이 향상되며 국내 자동차 시장에도 사륜구동 SUV 수요가 촉발되기 시작한다. 이런 시장 흐름을 주시하던 정몽구 당시 현대정공 사장(현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은 아버지인 정주영 명예회장에게 사륜구동차 사업 계획을 보고한다.

타이밍은 딱 맞아 떨어졌다. 승용차와 소형 상용차의 신규 진입을 금지하던 '자동차 공업 합리화 조치'가 1989년 7월 해제되며 현대정공은 곧바로 신차 개발에 뛰어들었다. 현대정공의 지원 사격을 맡은 현대그룹도 다양한 차종을 개발한다는 원칙 아래 신차 개발에 적극 나섰다.

기술력 한계에 라이센스 생산으로 전환

당시 국내에서 SUV는 곧 '코란도'로 통했을 정도로 코란도 위세가 대단했다. 후발주자인 현대정공이 경쟁사인 쌍용차를 상대하기란 녹록치 않았다. 하지만 품질만 뒷받침된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고 믿은 현대정공은 'M-카(Car)'라는 이름으로 신차 개발에 착수했다. 현대정공은 사업 기본 방향을 가다듬은 뒤 현대차에서 기술 인력을 수혈 받아 직접 설계에 나섰다.

그러나 개발 경험이 전무했던 현대정공에게 신차 개발은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숱한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며 시제품을 만들어 미국으로 보내 성능 테스트를 거쳤다. 하지만 결과는 '대실패'. 성능은 물론 기능, 디자인 측면에서 모두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한계에 부딪힌 M-카 프로젝트는 그렇게 사라지는 듯 싶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독자 개발에 실패한 정몽구 사장의 눈에 들어온 건 바로 라이센스 생산방식이었다.

정 사장은 무리한 독자 개발 대신 이미 검증받은 제조사의 기술을 이어 받아 '면허' 방식으로 신차를 만들자고 아이디어를 냈다. 여러 제조사와 차종을 검토한 끝에 현대차와 기술 제휴를 맺고 있던 일본 미쓰비시의 '파제로'를 낙점했다.

그해 미쯔비시와 기술 도입 계약을 체결한 후 현대정공의 시계는 더 빠르게 돌아갔다. 1990년 울산공장에 생산설비를 갖추는가 싶더니 이듬해 1991년 9월 드디어 신차가 탄생했다. 이 신차는 '경주마가 전속력으로 질주한다'는 뜻의 '갤로퍼'로 명명했다.

[서울=뉴시스] 현대자동차그룹은 정몽구 명예회장이 세계 자동차산업 최고 권위의 '자동차 명예의 전당(Automotive Hall of Fame)'에 한국인 최초로 헌액됐다고 23일 밝혔다. 사진은 2014년 8월 정몽구 명예회장이 현대차 앨라배마공장을 점검하는 모습.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제공) 2021.07.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현대자동차그룹은 정몽구 명예회장이 세계 자동차산업 최고 권위의 '자동차 명예의 전당(Automotive Hall of Fame)'에 한국인 최초로 헌액됐다고 23일 밝혔다. 사진은 2014년 8월 정몽구 명예회장이 현대차 앨라배마공장을 점검하는 모습.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제공) 2021.07.2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1년만에 SUV 터줏대감 코란도 무너뜨려

시장에 첫 발을 내디딘 갤로퍼는 시작부터 돌풍을 일으켰다. 출시 3개월 만에 3000대 넘게 팔리며 당시 쌍용차가 독점하던 사륜구동 시장을 빠르게 접수했다. 급기야 출시 2년차인 1992년 2만3738대를 팔며 SUV시장의 52%를 차지했다. 갤로퍼는 그렇게 쌍용차를 밀어내고 시장의 절반을 확보했다. 그해 현대정공이 갤로퍼로 벌어들인 수익만 2755억4000만원. 전체 매출의 22%에 달했다.

수출에서도 성과가 나타났다. 1992년 동유럽에 40대를 선적하며 미미하게 출발한 수출은 1994년에는 중국 진출로 이어져 4년만에 7479억원을 벌어들였다. IMF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8년에는 매출 1조원을 돌파하며 성장세를 탄탄히 굳혔다. 이후 2003년 최종 단종될 때까지 갤로퍼는 12년 간 총 31만5783대가 팔렸다. 당시 SUV 최강자로 손색 없는 인기였다.

갤로퍼는 국내 시장에서 폭넓은 라인업을 선보이며 진화해갔다. 하위모델 라인업이 20종에 달하는데 소비자 선택폭을 넓히고 다양한 요구를 반영했다. 전장 길이가 제각각인 롱바디와 숏바디, 5~9인승으로 세분화된 차체, 디젤부터 LPG까지 확장된 엔진 등 디테일과 세련됨이 가미된 세부 모델은 갤로퍼의 특징이다.

갤로퍼는 끊임 없는 변신으로도 유명하다. 트레이드마크인 각진 외형과 둥근 헤드램프를 확 바꾼 것이 대표적이다. 1994년 출시한 '뉴 갤로퍼'는 기존 둥근 헤드램프가 아닌 사격형 램프가 적용됐고, 백미러는 깃발 모양으로 바꿨다.

그러나 갤로퍼에도 위기의 순간이 없지 않았다. 경쟁사인 쌍용차가 명운을 걸고 개발한 무쏘가 등장하며 갤로퍼 인기는  꺾이기 시작했다. 무쏘는 독일 완성차업체 벤츠로부터 제휴 받은 기술과 고급화 전략을 앞세우며 갤로퍼를 추격했다. 당시 업계에선 '경주마와 코뿔소의 대결'이라고 부를 정도로 양사 경쟁이 치열했다.

[서울=뉴시스] 1992년 갤로퍼 출시 1주년을 맞아 방영된 '갤로퍼 대장정' TV광고. (사진=유튜브 화면 캡처) 2023.02.2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1992년 갤로퍼 출시 1주년을 맞아 방영된 '갤로퍼 대장정' TV광고. (사진=유튜브 화면 캡처) 2023.02.2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파격적인 마케팅, 레트로 열풍 타고 부활

빼어난 마케팅도 갤로퍼의 인기 비결이다. 당시 업계에서 '파격'이라고 평가 받을 정도로 획기적인 광고는 지금까지 회자된다. 현대정공은 1992년 갤로퍼 출시 1주년을 맞아 '갤로퍼 대장정'이라는 TV 광고를 제작했다. 한국 최초의 세계 여행가로 불리던 김찬삼 교수가 갤로퍼를 타고 7만km 유라시아 대륙을 질주하는 내용이다. 광고라고 하기엔 워낙 대작이어서 총 5편에 나눠 방영했다.

특히 '가자, 해를 따라 서쪽'이라는 카피가 인기를 끌며 갤로퍼 판매에 단단히 한 몫을 했다. 2년 뒤인 1994년 중국 북부 지역을 질주하는 '고구려 대장정' 광고를 방영했는데, 두 번씩이나 스펙타클한 대장정 광고를 시도한 건 현대정공의 갤로퍼에 대한 자신감이 얼마나 컸는지 잘 보여준다. 당시 유라시아 대륙과 중국 북부 대륙을 달렸던 갤로퍼는 현재 각각 현대 모터스튜디오와 울산 현대차 문화회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12년간 국내외 시장을 거침없이 질주했던 갤로퍼는 최근 부활을 노린다. 완성차 업계에 과거 인기 모델의 디자인 유산을 신차에 반영하는 바람이 불면서 갤로퍼를 닮은 신차 출시가 기대된다.

실제 현대차가 올 하반기 선보일 신형 5세대 싼타페는 갤로퍼 디자인과 유사하다. 지난해 말 국내외 자동차 커뮤니티에 유출된 신형 싼타페 예상도를 보면 각진 외곽과 전면부 둥근 헤드램프가 갤로퍼와 똑 닮았다는 평가다. 정식 출시까지 아직 6개월이 남았지만 신형 싼타페에 대한 소비자들 반응은 벌써부터 뜨겁다.

자동차 거래 플랫폼 엔카닷컴이 실시한 '다시 부활했으면 하는 모델' 설문조사에서 갤로퍼는 23%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그만큼 갤로퍼가 한국 자동차 역사에서 손꼽히는 SUV라는 점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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