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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보러와요' 원곡 '원 웨이 티켓' 닐 세다카, 美 '틴 팝' 대가

등록 2026.02.28 13: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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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향년 86으로 별세…방미 '날 보러와요' 번안곡 국내 유명

클래식 음악 신동서 팝 거물로

세다카 히트 넘버 21곡 엮은 뮤지컬 국내 라이선스 공연도

[LA=AP/뉴시스] 닐 세다카

[LA=AP/뉴시스] 닐 세다카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27일(현지시간) 별세한 미국 '틴 팝(Teen Pop)의 대가' 닐 세다카(86)'는 1950~60년대 10대들의 마음을 대변하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다.

클래식 음악 신동에서 조숙한 팝 작곡가로 그리고 10대들의 우상에서 팝 음악계의 확고한 거물로 성장한 그의 70년 음악 여정은 그 자체로 현대 팝의 역사였다.

세다카는 비틀스 이전 로큰롤 시대인 195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반, 청춘들의 대표적인 찬가를 쏟아냈다. 좋은 멜로디에 대한 감각과 뛰어난 상업적 본능, 그리고 특유의 소년 같은 하이 테너 목소리는 10대들의 감성을 정확히 타격했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 연인이었던 캐롤 킹을 염두에 두고 쓴 '오! 캐롤'은 그에게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 첫 톱 10의 영광을 안겼다. 1962년 발매한 '브레이킹 업 이즈 하드 투 두'는 빌보드 '핫 100' 정상을 밟았다. 또한 코니 프랜시스를 단숨에 스타덤에 올린 '스튜피드 큐피드'와 '웨어 더 보이즈 아', 훗날 캡틴 앤 테닐이 불러 그래미상을 휩쓴 '러브 윌 킵 어스 투게더' 등 타 아티스트를 위한 작곡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뽐냈다.

1939년 브루클린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본래 9살의 나이에 줄리어드 음대 예비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클래식 피아노 신동이었다. 1956년에는 거장 아르투르 루빈스타인과 야샤 하이페츠 등에게 발탁돼 라디오 방송에서 클래식을 연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13세 때 이웃 하워드 그린필드와 함께 대중음악을 만들기 시작하며 궤도를 수정했다. 어머니 몰래 하루에 한 곡씩 노래를 만들던 두 사람은 이내 팝 음악 작곡가들의 메카였던 뉴욕 맨해튼 '브릴 빌딩'에 입성해 주옥같은 명곡들을 탄생시켰다.

1959년부터 1963년까지 2500만 장 이상의 음반을 팔아치우며 메이저 팝스타로 군림했지만, 1964년 비틀스를 위시한 '브리티시 인베이전(영국 음악의 미국 침공)'의 여파로 그의 커리어는 깊은 침체에 빠졌다. 20대가 채 지나기도 전에 흘러간 가수로 전락하는 듯했다.

그러나 1970년 영국으로 이주하며 반전이 시작됐다. 영국 팝 거물 엘턴 존은 세다카를 자신의 레이블인 '로켓 레코드'로 영입해 그의 커리어를 완벽하게 부활시켰다.
[뉴욕=AP/뉴시스] 닐 세다카

[뉴욕=AP/뉴시스] 닐 세다카

이후 80대까지 왕성하게 무대에 올랐던 그는 교향곡 '조아 드 비브르'와 피아노 협주곡 '맨해튼 인터메조'를 작곡하며 자신의 음악적 뿌리인 클래식으로 회귀하는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세다카가 내한 공연을 펼친 기록은 없다. 하지만 그는 국내 대중의 정서 깊숙한 곳에 자리매김한 아티스트다.

'유 민 에브리싱 투 미', '오! 캐롤' 등은 시대를 불문하고 라디오와 CF를 통해 꾸준히 불리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올드팝으로 손꼽힌다. 특히 그의 히트곡 '원 웨이 티켓'은 가수 방미가 '날 보러와요'로 번안해 국민적인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 2016년에는 세다카의 주옥같은 히트 넘버 21곡을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 '오! 캐롤'이 국내 라이선스 초연됐다. 남경주, 최정원 등이 무대에 올라 1960년대의 향수를 완벽하게 재현해 내며 팝 거장의 음악적 유산을 한국 관객들에게 다시 각인시켰다. 

유족으로는 시나리오 작가인 아들 마크 외에 1962년에 결혼한 아내 레바 스트라스버그, 1980년 히트 싱글 '슈드브 네버 렛 유 고(Should’ve Never Let You Go)'를 함께 작업했던 가수인 딸 다라, 세 명의 손주 그리고 며느리 사만다 세다카가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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