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무더위쉼터' 4000곳인데…지하철역으로 가는 노인들

등록 2026.07.17 09:00:00수정 2026.07.17 09:30:09

냉방 잘되는 역사·전동차로 피서

매년 7월 노인 지하철 이용 증가

"쉼터 늘리기보다 접근성 높여야"

[서울=뉴시스]김범준 인턴기자 = 16일 오전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 1호선 종로5가역 방면 승강장에서 노인들이 의자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다. 2026.07.16.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김범준 인턴기자 = 16일 오전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 1호선 종로5가역 방면 승강장에서 노인들이 의자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다. 2026.07.16.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신유림 기자, 김범준 인턴기자 = "전철 오는데 안 타세요?"

"시원하잖아. 여기 한 번 서봐. 바람 나오네."

연일 폭염이 이어진 지난 16일 오전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 1호선 승강장. 전동차가 들어와도 벤치에 앉아 있던 노인들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냉기가 쏟아지는 곳 아래 서 있던 김모(75)씨는 "집보다 여기가 더 시원하다"며 기자를 손짓해 불렀다.

서울시는 무더위쉼터 약 4000곳을 운영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만난 노인들의 발걸음은 주민센터나 경로당보다 지하철 역사와 전동차로 향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폭염이 일상이 된 상황에서 쉼터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 누구나 부담 없이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 방식을 바꾸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17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왔다는 김씨는 아침부터 지하철을 타고 종로3가역까지 왔다.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고 탑골공원에도 들렀다가 다시 역사에서 더위를 식힐 계획이라고 했다.

김씨는 "집에만 있으면 덥고 답답하다"며 "전철은 공짜로 시원하게 타고 어디든 갈 수 있으니 제일 편하다"고 말했다.

김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전동차가 두 차례 승강장으로 들어왔지만 벤치에 앉아 있던 노인들은 대부분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목적지 없이 전동차를 타고 다니며 냉방을 이용하는 노인들도 적지 않았다.

인근 계단에서 쉬고 있던 60대 남성은 "더우면 지하철을 계속 타고 왔다 갔다 한다"며 "갈 만한 곳이 별로 없어 역사나 전동차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다"고 전했다.
[서울=뉴시스]김범준 인턴기자 = 15일 오후 서울 청량리역 역사에서 노인과 시민들이 냉방이 되는 역사 안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2026.07.16.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김범준 인턴기자 = 15일 오후 서울 청량리역 역사에서 노인과 시민들이 냉방이 되는 역사 안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2026.07.16. [email protected]


지난 15일 찾은 청량리역 역시 비슷한 풍경이었다. 역사 안 의자에는 TV를 보거나 담소를 나누는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고, 일부는 의자에 기대 잠을 청하고 있었다. 냉방이 유지되는 역사 안은 한낮 무더위를 피해 나온 노인들로 붐볐다.

답십리에 사는 유영자(83)씨는 "동주민센터나 경로당도 가지만 지하철역이 더 가깝고 시원해서 자주 온다"며 "밤에는 날이 더워 잠도 잘 못 자고, 에어컨을 틀면 전기요금이 걱정돼 역사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실제 노인들의 지하철 이용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7월 65세 이상 노인의 지하철 승하차 인원은 4006만5775명으로, 전년 같은 달(3837만327명)보다 약 170만명 증가했다. 하루 평균 이용객도 123만7752명에서 129만2444명으로 약 5만5000명 늘었다.

폭염이 이어진 올해도 노인들의 발길은 지하철로 향했다. 지난 1일부터 14일까지 65세 이상 노인의 지하철 승하차 인원은 1927만21명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137만6430명이 지하철을 이용한 셈이다.

정부와 서울시는 폭염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관공서와 경로당, 도서관, 은행 등을 활용한 무더위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서울 시내에서 운영 중인 무더위쉼터는 약 4000곳에 달한다.
[서울=뉴시스]김범준 인턴기자 = 16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인근 한 주민센터 무더위쉼터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6.07.16.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김범준 인턴기자 = 16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인근 한 주민센터 무더위쉼터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6.07.16. [email protected]


그러나 현장 분위기는 달랐다. 취재진이 종로3가역 인근 은행과 을지로의 한 주민센터 무더위쉼터를 찾았을 때는 더위를 피해 나온 노인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은행 직원은 "업무를 보러 왔다가 잠시 쉬는 분들은 있지만 더위를 피하려는 목적으로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주민센터 관계자도 "카페와 함께 운영하다 보니 행정 업무를 보러 오거나 카페를 이용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라며 "무더위쉼터만 이용하기 위해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노인들은 무더위쉼터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 접근성과 이용 편의성을 꼽았다. 김씨는 "은행은 오래 있으면 눈치가 보이고, 교회는 다니는 곳이 아니라 선뜻 들어가기 어렵다"며 "경로당도 회원들끼리 어울리는 분위기라 자주 가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대구=뉴시스] 이무열 기자 = 초복을 하루 앞두고 폭염이 연일 이어진 14일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사랑해밥차 무료급식소를 찾은 어르신들이 삼계탕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2026.07.14. lmy@newsis.com

[대구=뉴시스] 이무열 기자 = 초복을 하루 앞두고 폭염이 연일 이어진 14일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사랑해밥차 무료급식소를 찾은 어르신들이 삼계탕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2026.07.14. [email protected]

전문가는 폭염이 일상화되는 상황에서 무더위쉼터를 단순히 늘리는 것보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운영 방식을 개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들이 지하철이나 백화점, 공항 같은 공공장소를 찾는 것은 집 밖에서 머물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경로당은 회원 중심으로 운영되다 보니 처음 이용하는 어르신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짚었다.

이어 "무더위쉼터는 이미 충분히 지정돼 있지만 중요한 것은 활성화"라며 "경로당도 특정 회원만의 공간이 아니라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 정부가 쉼터를 새로 만드는 것보다 기존 시설을 개방적으로 운영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