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유적과 기억]돌담 너머 사라진 마을, 디지털로 다시 만나다
등록 2026.09.22 08:00:00수정 2026.09.22 08:06:24
4·3 당시 불타 없어진 '잃어버린 마을'
VR·XR 등 디지털 기술 통해 복원 제안
"생활상까지 복원해야 잊지 않고 기억"
![[제주=뉴시스] 양영전 기자 = 제주4·3 당시 불에 타 없어진 '잃어버린 마을'인 곤을동. 2026.09.16. 0jeoni@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9/21/NISI20260921_0002245555_web.jpg?rnd=20260921155805)
[제주=뉴시스] 양영전 기자 = 제주4·3 당시 불에 타 없어진 '잃어버린 마을'인 곤을동. 2026.09.16. [email protected]
제주4·3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면서 4·3은 지역의 아픈 역사를 넘어 인류가 함께 기억해야 할 평화와 인권의 역사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당시 사건의 현장인 유적지는 훼손과 개발 등으로 보존과 활용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에 뉴시스는 잃어버린 마을과 주둔지, 집단묘역, 은신처 등 유적지의 의미와 보존 가치를 조명하고 디지털 복원,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 평화·인권 교육,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 아카이브 구축 등 미래 세대에 계승하는 과제를 살펴본다.
[제주=뉴시스] 양영전 기자 = "이 돌담이 다 집의 경계였지"
제주시 화북동 곤을동 '잃어버린 마을'터에 들어서면 돌담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낮게 이어진 돌담과 집터뿐이다.
곤을동은 과거 안곤을, 중간곤을, 바깥곤을로 구분됐었다고 한다. 김충임 제주4·3유족회 동부지회장(화북동 분회장)은 "현재 화북천을 따라 유적길로 다져진 중간곤을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나오는 집터가 안곤을인데 이곳이 제주4·3 당시에 불에 타 없어진 잃어버린 마을"이라고 설명했다.
돌담과 집터는 사라지지 않았으나 지금의 곤을동은 마을이 없는 마을이 됐다.
곤을동은 4·3 당시 마을 전체가 불타 사라진 대표적인 잃어버린 마을이다. 당시 주민들은 멸치잡이와 농사를 지으며 살아갔지만 1949년 1월 토벌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되고 마을이 전소됐다. 이후 마을은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곤을동을 기억하는 주민들의 구술 기록을 따라가면 지금 남아 있는 돌담보다 더 많은 풍경이 나온다.
마을에는 주민들이 이용하던 우물이 있었다. 물이 풍부했던 곤을동의 지명 역시 '물이 항상 고여 있는 땅'에서 비롯됐다는 설명도 있다. 그 우물 역시 지금은 흔적을 찾기 어렵다.
마을이 사라진 뒤에도 삶의 흔적은 조금씩 없어졌다. 우물이 사라지고, 지형이 바뀌고,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줄어들고 있다.
잃어버린 마을을 다시 보는 기술
제주시의 시민 아이디어 플랫폼에는 곤을동을 3D 모델링하고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혼합현실(MR)을 모두 아우르는 XR(확장현실) 환경에서 과거 모습 그대로 재현하자는 프로젝트가 제안된 바 있다.
3D 창작 툴 등을 활용해 사라진 마을을 디지털 공간에 구현하고, VR을 통해 과거의 마을을 걸어보는 방식 등을 구상할 수 있다.
![[제주=뉴시스] 양영전 기자 = 제주4·3 당시 불에 타 없어진 '잃어버린 마을'인 곤을동. 2026.09.16. 0jeoni@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9/21/NISI20260921_0002245544_web.jpg?rnd=20260921155647)
[제주=뉴시스] 양영전 기자 = 제주4·3 당시 불에 타 없어진 '잃어버린 마을'인 곤을동. 2026.09.16. [email protected]
현재의 마을터 위에 휴대전화 화면을 비추면 과거의 집터가 나타나는 방식이다.
이런 주민들의 기억이 공간 정보와 함께 겹쳐진다면 방문객들도 단순히 안내판을 읽는 데서 벗어나 마을의 구조와 생활을 입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
복원의 핵심은 당시 주민들의 '삶'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의 무등이왓 역시 4·3 당시 마을이 파괴된 뒤 사람이 살지 않는 잃어버린 마을이 됐다. 당시 주민들은 토벌을 피해 큰넓궤에 숨어 생활했고, 이후 많은 주민이 희생됐다.
무등이왓과 관련한 구술 기록에는 마을의 모습만큼이나 구체적인 생활상이 담겨 있다.
큰넓궤에 숨어 지내던 당시의 상황 등이 여러 차례 증언됐는데 사람들이 동굴 밖에 다닐 때 발자국이 남지 않도록 돌을 밟거나 마른 고사리를 이용해 흔적을 지우려 했다는 구체적인 기록도 있다.
이 기억을 디지털 복원에 담는다면 단순히 '1948년의 무등이왓'을 만드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집과 밭, 올레길만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어디에서 물을 길었고, 어떤 길로 오갔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무등이왓이 불타 없어진 후 인근에 생긴 마을인 석교동 주민 송호진씨는 "과거에 (무등이왓에) 학교도 있을 만큼 마을이 컸고 방애터도 여러 개 있었다"고 설명했다.
![[제주=뉴시스] 양영전 기자 = 제주4·3 당시 불에 타 없어진 '잃어버린 마을'인 무등이왓에 자리했던 광신사숙 터. 2026.09.16. 0jeoni@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9/21/NISI20260921_0002245556_web.jpg?rnd=20260921155819)
[제주=뉴시스] 양영전 기자 = 제주4·3 당시 불에 타 없어진 '잃어버린 마을'인 무등이왓에 자리했던 광신사숙 터. 2026.09.16. [email protected]
이미 시작된 '기억의 복원'
안덕면 동광리 주민들과 탐라미술인협회는 무등이왓에서 조를 직접 재배하고 이를 이용해 제주 전통술인 고소리술을 빚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주민과 예술인들이 사라진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수확물을 다시 공동체의 기억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사람이 살던 마을은 사라졌지만, 그 땅에서 다시 농사를 짓고, 함께 수확하고, 술을 빚고, 희생자를 기억하는 새로운 공동체 활동이 만들어지고 있다.
여기에 디지털 기술이 더해진다면 기억의 방식은 한층 확장될 수 있다.
제주도교육청이 동광리 옛 동광분교를 활용해 추진하는 4·3학생교육관에도 전시·영상과 함께 VR 체험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현장의 장소성과 주민의 증언, 교육 콘텐츠, VR이 하나로 연결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제주4·3평화재단도 제주4·3아카이브를 통해 디지털 접근성을 확대했다. 그동안 제주4·3평화기념관 수장고에 보존돼 오던 4·3기록물과 국내외 주요기관에서 소장 중인 4·3 주요 자료 등이 등록돼 있으며 유튜브를 통해 시청각 자료를 서비스하고 있다.
고미경 제주도 4·3지원과장은 "제주4·3 유적은 현장 보존과 함께 미래세대가 쉽게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의 활용이 필요하다”며 “앞으로 제주4·3 관련 기록과 디지털 기술을 연계해 잃어버린 마을을 보다 생생하게 기억하고 체험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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