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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국보된다

등록 2022.10.31 10: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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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보물 '익산 미륵사지 서탑 사리장엄구' 노출상태 (서탑사리공) (사진=문화재청 제공) 2022.10.31. phor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보물 '익산 미륵사지 서탑 사리장엄구' 노출상태 (서탑사리공) (사진=문화재청 제공) 2022.10.3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수지 기자 = 문화재청은 백제 공예품의 정수로 알려진 보물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를 국가지정문화재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고 31일 밝혔다.

2018년 보물로 지정된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는 2009년 익산 미륵사지 서탑 심주석(탑 구조의 중심을 이루는 기둥)의 사리공(불탑 안에 사리를 넣을 크기로 뚫은 구멍)에서 나온 유물이다.

639년 절대연대를 기록한 금제 사리봉영기와 함께 금동사리외호 및 금제 사리내호, 각종 구슬과 공양품을 담았던 청동합 6점 등 총 9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리장엄구 중 금제사리봉영기는 얇은 금판으로 만들어 앞·뒷면에 각각 11줄 총 193자가 새겨져 있다. 내용은 좌평(佐平)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인 백제 왕후가 재물을 시주해 사찰을 창건하고 기해년(639년)에 사리를 봉안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내용이다.

그동안 삼국유사를 통해 전해진 미륵사 창건설화에서 구체적으로 나아가 조성 연대와 주체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밝힌 계기가 돼 사리장엄구 중에서도 가장 주목되는 유물이다.

서체도 곡선미와 우아함이 살아있는 백제서예의 수준과 한국서예사 연구에 필요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사리장엄구 중 금동사리외호 및 금제 사리내호는 모두 몸체의 허리 부분을 돌려 여는 구조로, 동아시아 사리기 중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독창적인 구조다.

전체적으로 선의 흐름이 유려하고 양감과 문양의 생동감이 뛰어나 기형의 안정성과 함께 세련된 멋이 드러나 있다.
[서울=뉴시스]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청동합) (사진=문화재청 제공0 2022.10.3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청동합) (사진=문화재청 제공0 2022.10.3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사리장엄구 중 청동합은 구리와 주석 성분의 합금으로 크기가 각기 다른 6점으로 구성되어 잇다.

그중 하나에는 '달솔(達率) 목근(目近)'이란 명문이 새겨졌는데 이를 통해 달솔이란 벼슬을 한 목근이란 인물이 시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명문을 바탕으로 시주자의 신분이 백제 상류층이었다는 사실과 그가 시주한 공양품의 품목을 알 수 있어 사료적 가치와 함께 백제 최상품 그릇으로 확인돼 희귀성이 높다.

녹로(轆轤)로 성형한 동제 그릇으로서 그 일부는 우리나라 유기 제작 역사의 기원을 밝혀 줄 중요한 사례라는 점에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는 백제 왕실에서 발원해 제작한 것으로 석탑 사리공에서 봉안 당시 모습 그대로 발굴돼 고대 동아시아 사리장엄 연구에 있어 절대적 기준이 된다.

제작 기술면에서도 최고급 금속재료와 백제 금속공예 기술의 역량을 응집해 탁월한 예술품으로 승화시켰으므로 한국공예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유물로서 위상이 높다.

7세기 전반 백제 금속공예 기술사를 증명해주는 한편 동아시아 사리공예품의 대외교류를 밝혀주는 자료로서 역사·학술·예술적 가치가 매우 크므로 국보로 지정해 보존할 필요가 있다.
[서울=뉴시스]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66 (사진=문화재청 제공) 2022.10.3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66 (사진=문화재청 제공) 2022.10.3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문화재청은 이날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66', '대방광불화엄경소 권88', '불조역대통재', '사시찬요', '손소 적개공신교서', '이봉창 의사 선서문' 등 고려·조선 시대 전적, 근대 등록문화재 6건은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66'과 '대방광불화엄경소 권88'은 고려 11세기에서 12세기 동안 만들어진 불교경전이다.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66은 총 100권으로 구성된 '유가사지론' 중 권66에 해당하는 고려 11세기에 간행된 자료로, 해당 권차는 현재까지 발견된 사례가 없는 유일본이다.

고려시대에 한문을 우리말로 번역해 읽을 수 있도록 치밀하게 토를 단 석독구결이 표시되어 있어 국어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이 구결을 통해 고려시대 유식학에 대한 연구 수준을 엿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불교학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다.
[서울=뉴시스] 대방광불화엄경소 권88 표지 (사진=문화재청 제공) 2022.10.3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대방광불화엄경소 권88 표지 (사진=문화재청 제공) 2022.10.3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대방광불화엄경소 권88은 총 120권으로 이뤄진 '대방광불화엄경소'의 권88에 해당하는 자료로, 1087년 우리나라에 목판이 전래되면서 국내에서 간행되기 시작했다.

이후 1424년에 일본이 여러 차례 대장경판을 요구할 때 다른 경판들과 함께 일본에 하사했으므로, 그 이후에 찍은 간행본은 국내에서 더는 찾아 볼 수 없는 귀중본이다.

지정 예고 대상은 판본과 인쇄상태로 보아 12세기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동일판본 중 유일하게 알려진 권차다. 보존상태가 우수하고 조선·중국·일본 삼국의 불교교류 양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서울=뉴시스] 불조역대통재 전체 (사진=문화재청 제공) 2022.10.3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불조역대통재 전체 (사진=문화재청 제공) 2022.10.3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불조역대통재' 22권 14책은 원나라 승려 염상(1282~?)이 석가모니의 탄생부터 1334년까지 고승들의 전기나 일화들을 시간 순으로 엮은 책이다. 1430년 다시 간행된 판본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에서 새로 새긴 목판을 1472년 인수대비(1437~1504)의 발원으로 찍었다.

성종의 모친이자 인수대비가 왕과 왕자, 공주 등 왕실의 안녕과 장수를 위해 발원하고 간행한 것으로, 전체 권차가 남아 있는 완질본일 뿐 아니라 현재까지 국내에서 2건만 확인돼 자료적인 완전성과 희소성도 높다.
[서울=뉴시스] 사시찬요 (사진=문화재청 제공") 2022.10.3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사시찬요 (사진=문화재청 제공") 2022.10.3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사시찬요'는 중국 당나라 말기인 996년 한악이 편찬한 농업 서적이다. 사계절을 12달로 나누고 월별 농법과 금기 사항, 가축 사육법 등을 수록했다.

조선 초기 농정과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자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 도입해 세종 때 농사직설이 편찬되기 전까지 우리나라 농업경영에 참고한 대표 관련 서적으로 활용됐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된 대상은 조선 전기까지 사용한 고려 서적원이 제작한 활자를 바탕으로 조선 초에 사용한 금속활자인 계미자 중자를 함께 사용해 인쇄한 책이다.

사시찬요 중 지금까지 한·중·일 삼국에서 공개된 판본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그 서지적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학술적으로 인정되어 왔다.

간행 시기는 계미 중자의 사용례로 보아, 1403~1420년 사이에 해당하는 조선 전기로 추정된다.

조선 전기 금속활자를 사용해 사시찬요를 인쇄하게 된 배경에는 단지 농업 활동의 증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극복이라는 의지도 포함이 되어 있었던 것으로, 이 책은 민생을 위한 농업의 증진, 고려와 조선의 금속활자 인쇄사실 뿐 아니라 간행 당시의 사회경제사의 배경까지 살펴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다.
[서울=뉴시스] 손소 적개공신교서 (사진=문화재청 제공:)2 022.10.3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손소 적개공신교서 (사진=문화재청 제공:)2 022.10.3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손소 적개공신교서’는 경상북도 경주시 양동마을에 대대로 거주해 온 경주손씨(慶州孫氏)의 후손 손소(1433~1484)가 하사받은 적개공신교서 1점이다.

적개공신은 1467년에 세조가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신 45명에게 내린 교서로, 이 중 2등 공신 장말손, 3등 공신 정종의 교서가 이미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해당 교서에는 수급자명, 공적내용, 특전과 포상, 등위별 공신명단 그리고 발급일자가 기록되었고 마지막 발급일자 위에 ‘시명(施命)’이란 어보를 찍었다.

전반적으로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16세기 관련 의궤에 수록된 교서의 재질과 장황(粧䌙, 표구) 형식 등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개장(改粧, 새롭게 꾸밈)이나 후대의 보수 없이 550년 넘게 원래 형태를 유지해오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유물이라고 하겠다.

조선 전기 중요 사건인 이시애의 난과 그에 대한 국가의 조치, 공신으로 책훈된 인물, 공신에 대한 각종 은전 및 특전에 대한 구체적 사례 등에 관한 역사적 내용을 제공하고 있어 조선시대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공신교서 문서 양식의 전형을 보여줘 현전하는 적개공신교서나 관련문서들과 비교할 때에 보존상태가 가장 우수한 자료로 판단된다.
[서울=뉴시스] 이봉창 의사 선서문 (사진=문화재청 제공) 2022.10.3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봉창 의사 선서문 (사진=문화재청 제공) 2022.10.3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이봉창 의사 선서문'은 1931년 12월13일 작성된 것으로, 이봉창 의사(1900~1932)가 일본에 대한 항쟁을 다짐한 국한문혼용 선서문이다. 이 선서문은 김구가 결성한 항일독립운동단체인 한인애국단에 제출된 것이다.

이날 서명을 마친 이봉창 의사는 안중근 의사의 막내동생이자 한인애국단 임원이었던 안공근 집에서 양손에 수류탄을 들고 선서문을 가슴에 단 채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이 때 찍은 흑백사진이 전해지고 있다.

이봉창 의사 선서문은 1931년 이봉창 의사가 한인애국단 제1호 단원으로 입단하면서 선서한 당시 작성된 것으로, 이 의사의 의거 행적과 한인애국단의 활동, 항일투쟁의 역사를 증명하는 귀중한 역사적 산물이다.

이듬해 훙커우공원에서 의거를 단행한 윤봉길 의사가 작성한 선서문과 함께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유물 중 하나로 평가된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국보로 지정 예고되는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과 보물로 지정 예고되는 '이봉창 의사 선서문' 등 7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국보와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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