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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어렵게 통과한 박원순표 '민주주의위원회'…소통에서 답 찾아야

등록 2019.07.01 18: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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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윤슬기 기자 = "의회민주주의는 물론이고 당내 민주주의까지 무너진 거대여당의 촌극을 보면서 분노를 넘어 참담함을 느낍니다. 책임지지도 못할 부결을 해놓고 다시 가결시키는 건 초등학생 임원회의보다 못한 수준 아닌가요?"

1일 서울시의회에서 박원순 시장의 3선 핵심공약인 서울민주주의위원회 조례안이 통과된 후 시의회에서 만난 자유한국당 한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의원들은 야당의원들 만큼 날선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완곡한 표현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여기까지만 보면 마치 서울민주주의위원회 조례안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상황을 야기시킨 것은 박원순 서울시장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민주주의위원회(민주주의위원회) 조례안은 박 시장의 3선 핵심공약이다. 해당 위원회를 시장 직속 기구로 설치해 시민들이 시정(市政)협치형 사업, 예산안 편성 등을 제안하면 이를 시정에 반영해 시민참여 확대를 도모하는 것이 핵심이다.
 
민주주의위원회는 상근직인 위원장을 포함한 위원들이 2022년까지 연간 1300억원에서 최대 1조원까지 예산편성에 관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해당 조례안이 발의된 이후 시의회에서는 의회의 중요 기능 중 하나인 예산심의권 침해, 잦은 조직개편으로 인한 조직 불안정성 등을 근거로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박 시장의 측근이 위원으로 활동하기라도 한다면 의회나 시정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때문에 지난달 18일 시의회 해당 상임위인 기획경제위원회에서는 해당 조례안을 만장일치로 부결(否決)시켰다. 특히 당시 반대표를 던진 의원 12명 중 10명이 여당인 민주당 소속의원이어서 서울시와 민주당 지도부 등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간 시의회에서 시장이 발의한 조례가 부결된 적은 전무했기 때문이다.

조례안이 별탈없이 무난하게 통과할 것으로 예상했던 서울시는 다급하게 조례안과 관련한 박 시장의 기자회견을 취소했다. 이후 시는 수정된 조례안을 다시 시의회에 제출했고, 시의회 여당지도부는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그러나 정례회 폐회식이 열린 지난달 28일 의원총회에서도 성토가 이어졌다. "이미 상임위에서 부결된 조례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왜 임시회까지 열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특히 서울시 간부들과 여당 지도부는 직접 시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했고 치열한 논쟁 끝에 임시회 개최에 합의했다. 그럼에도 불안했던 시의회 의장단 및 여당 지도부는 이날 본회의 참석을 독려하는 '문자메시지'를 4번이나 보내기도 했다. 

본회의에서도 조례안 통과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당초 오전 10시 개회되기로 했던 본회의는 10시30분이 다 돼서야 열렸다. 의사결정과정은 통상적으로 '기명투표'로 진행되지만, 의원들의 요청에 '무기명 전자투표'로 진행됐다. 투표 결과 조례안은 재석인원 90명 중 찬성 60명, 반대 24명, 기권 6명으로 가결됐다.

민주당이 시의회에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반대표가 상당히 많이 나온 셈이다.

이를 두고 서울시와 시의회 안팎에선 "박 시장의 독주를 견제하는 목소리가 여당 내에서 더 강해질 수 있다"고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서울민주주의위원회 조례안 사태와 같은 일은 처음이 아니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 서울형 유급병가 도입 등 서울시 핵심공약 사업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박 시장의 독주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지난해 4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 기본계획을 발표한 서울시는 시의회에 예산을 요청했다. 당시 시의회는 자체 설문조사 결과 60% 이상의 응답자가 현재 광화문광장에 만족한다고 답변했다는 이유로 시민광장 설계비와 감리비를 전액 삭감했다. 시는 설계비 약 28억원 중 현재 확보된 역사광장 설계비 15억원에 대해 1차 계약했으며 이중 8억원이 집행된 것이라고 해명하면서 예산을 통과시켜줄 것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시의회와 상의하지 않고 예산부터 집행한 게 문제가 됐고, 급기야 서울시가 사과를 하는 일도 있었다. 

서울형 유급병가 사업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울형 유급병가 제도는 소득이 중위소득에 못 미치는 자영업자와 인턴, 일용직 근로자 등이 질병으로 입원하면 서울시가 하루에 8만1184원씩 생활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수혜 대상자 중에서 가족 중 직장건강보험 가입자가 있으면 한 세대로 묶여 지역건강보험료 부담을 회피하는 사례가 많다는 지적은 시의회 심의 당시에도 여야 의원 할 것 없이 제기했었다. 하지만 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해당 사업에 대한 재검토 없이 강행하기로 결정됐고, 이를 지켜본 일부 여당의원들 사이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일련의 사태를 지켜본 한 여당 의원은 "박 시장이 우리와 소통하려는 모습만 보였더라도 그런 갈등들이 계속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박 시장을 향해 많은 사람들이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박 시장과 그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우려하거나 반대하는 목소리에 귀기울여 달라는 것이다. 

1일은 박 시장이 '10년 혁명'을 완수하겠다고 선언한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박 시장이 약속한 혁명을 완성하기 위해선 아직도 3년이란 시간이 남았다.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서라도 박 시장은 시의회의 '마지못한 찬성'과 '반대'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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