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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데려와라" 청소년에게 높기만 한 정신과 문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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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11-12 12:00:00
정신과 절반은 부모 동의 없이 진료·처방 '거부'
청소년 우울 심각…마음병 앓아도 방법 몰라
인식개선 시급…모바일상담 등 소통창구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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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홍세희 기자 = 고등학생인 A양은 1년 전부터 우울한 감정이 드는 날이 많아지고,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청소년 심리상담센터에서 10여 차례 상담을 받은 A양은 상담사로부터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서 약물 치료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들었다.

A양은 부모님께 상담내용을 털어놓으며 정신과 진료를 받아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정신과 약은 많이 먹으면 안 좋다", "너가 우울한 생각을 해서 우울한 것이다. 의지로 극복할 수 있다"며 만류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지만 A양의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A양은 고민 끝에 부모님 몰래 정신과를 찾아갔다. 부모님께 정신과 상담 얘기를 또다시 꺼냈다가는 예전과 같이 상처만 입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서너 곳의 정신과 병·의원을 방문했다. 그러나 "미성년자는 부모 동의 없으면 진료를 못 본다"며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다. 일부 의원은 "성인만 진료한다"고 했다.

A양은 "여러 곳의 정신과를 가봤는데 혼자 병원에 가면 모두 진료를 볼 수 없다고 했다"며 "결국 부모님께 다시 말씀드리고 같이 가서 진료를 받았다"고 토로했다.

A양와 같이 홀로 정신과 병의원을 찾았다가 부모의 동의가 없거나 동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당한 청소년들이 있다.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았지만 적절한 처방은 커녕 진료 조차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정신과 절반은 부모 동의 없이 진료·처방 '거부'

12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부산지부 추진모임이 지난 9월15일부터 18일까지 부산시 내 정신건강의학과 의원급 의료기관 108곳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에 따르면 부모의 동의 없이는 진료 조차 볼 수 없는 의원이 50곳(46%)에 달했다.

청소년이 부모 동의(동행) 없이 진료와 처방을 받을 수 있는 정신과는 23곳(21%)에 불과했고, 부모의 동의 없이 진료만 볼 수 있는 곳은 12곳(11%)이었다.

그러나 부모의 동의가 없이는 정신과 진료를 볼 수 없다는 규정은 없다. 오히려 의료법 제15조에는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 개설자는 진료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는 진료 거부 금지 조항이 있다. 보건의료기본법 제10조에도 모든 국민은 나이 등을 이유로 자신의 건강에 관한 권리를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정신과 병의원들은 나중에 부모가 아이의 진료 사실을 알게 되면 항의를 받을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미성년자의 진료나 처방을 꺼린다고 한다.

한 정신과 전문의는 "진단서가 필요하거나 검사 등 법률적 행위를 할 때 미성년자는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며 "나중에 부모가 '우리 동의 없이 어떻게 아이 진료를 보느냐'며 항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 우울 심각…마음병 앓아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우리나라 청소년의 우울과 스트레스는 심각한 상황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중·고등학생 10명 중 4명(39.9%)은 스트레스를 많이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 사망원인 1위는 8년 째(2011~2018년) 자살(고의적 자해)이기도 하다.

청소년들의 자해·자살 시도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5년 간(2015~2019년) 자해·자살 시도 청소년은 총 3만4552명으로 2015년 하루 평균 13.5명에서 2019년 26.9명으로 2배 가량 증가했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우울감을 호소하는 청소년들이 더욱 늘어났다.

이같이 우울, 스트레스 등을 호소하는 청소년들이 매년 늘어나고 있지만 적절한 상담이나 치료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전문가들은 보이지 않는 청소년 우울증 환자가 굉장히 많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인식개선 시급…모바일 상담 등 소통창구도 중요

청소년들이 부모님에게 정신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신과 치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이다.

홍현주 한림대학교 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자살과 학생 정신건강 연구소장)는 "부모님들은 정신과 치료라고 하면 '우리 아이가 정신병인가',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가'라고 받아들인다. 아이에게는 '혼자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극복해봐라', '마음이 약해서 그런 것'이라는 식으로 얘기를 많이 한다"며 "정신과 상담이나 치료에 대해서는 아이들보다 오히려 부모님이 부담스러워하고, 편견이 많다.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신과 치료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이 이뤄져야 우울증을 겪거나 스트레스가 심한 청소년들이 주변에 도움을 손길을 적극적으로 요청할 수 있다.

홍 교수는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는 문화나, 정서적인 문제는 참아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청소년 자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며 "보이지 않는 우울증이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이어 "해결하지 못한 힘든 감정을 푸는 것의 하나로 자해를 선택하는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라며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 힘들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체계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특히 "아이들이 얘기할 수 있는 통로가 있어야 하는데 병원을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하는 것도 부담스러워한다"며 "아이들이 익숙한 모바일을 활용한 모바일 기반 상담 등이 커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ong198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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