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프엑스 f(x)는 어쩌다 가장 진화한 아이돌 됐을까

현재 활동 중인 SM엔터테인먼트 아이돌 중 유일하게 ‘1위’를 못해봤던 에프엑스(f(x))가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그것도 한 번 오르고 나니 무서운 기세로 몰아쳤다.
에프엑스 첫 정규앨범 ‘피노키오’의 타이틀곡 ‘피노키오’는 지난 5월8일 SBS ‘인기가요’ 뮤티즌송 1위를 차지함으로써 가요 순위를 집계하는 방송3사 음악프로그램 1위를 모두 거머쥐게 됐다. 컴백 17일 만이다. 특히 SBS ‘인기가요’에선 2주 연속, 엠넷 ‘엠카운트다운’에선 3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근래 흐름으로 봤을 때 그리 대단한 화젯거리라 보긴 힘들다. 1위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린 것 같지만, 에프엑스 언니뻘 그룹 소녀시대도 ‘지’로 각종 차트를 평정하기까지 약 1년 반 정도가 걸렸다. 에프엑스와 거의 같다. 이유는 단순하다. 아이돌의 음원 및 음반 판매는 노래의 퀄리티에 달려있다기보다 멤버들 개개인의 캐릭터화가 얼마나 잘 이뤄졌는지, 그리고 소비 타깃층이 얼마나 정교하게 맞춰졌는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리 착실하게 코스를 밟아온 될성부른 아이돌일지라도 1위까지는 일정 기간 이상이 필요한 것이다. 멤버들 캐릭터를 대중에 인지시키는데, 그리고 소비 타깃층을 형성시키는데 시간이 걸린다. 반면 아무리 해도 못 뜨는 아이돌은 노래나 퍼포먼스가 안 좋아서라기보다 바로 이 작업, 캐릭터화와 타깃층 설정 과정이 시원찮게 진행됐기 때문이 크다. 그런 점에서 에프엑스의 ‘1위까지 1년 반’은 상당부분 ‘정석적 타이밍’에 속한다.
그런데 여기서 더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다. 에프엑스는 과연 그간, 적어도 지난해 미니앨범 ‘NU예삐오’에서 ‘피노키오’까지 제대로 된 아이돌 코스를 밟아온 게 맞느냐는 것이다. 액면 그대로만 놓고 보면 확실히 각종 TV출연이 늘긴 했다. 예능 프로그램, 리얼리티 쇼프로그램, 음악프로그램 MC, 심지어 시트콤 출연까지 감행했다. 특히 리얼리티 쇼프로그램은 케이블TV에서 2편, 멤버 빅토리아 혼자 지상파TV에서 1편을 소화했다. ‘NU예삐오’ 이전 행보와 비교해보면 가히 러시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들 프로그램들을 면면히 따져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과연 이들 프로그램에 출연한 ‘효과’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투톱인 설리와 크리스탈부터 살펴보자. 설리는 지난해부터 여전히 SBS ‘인기가요’ MC를 맡고 있지만, 딱히 캐릭터 인지효과가 일어나는 역할이라 보긴 힘들다. 야심차게 기획된 SBS 시트콤 ‘웰컴 투 더 쇼’는 지난 3월16일 파일럿만 나가고 결국 정규편성에는 실패했다. 크리스탈도 크게 다르지 않다. MBC 시트콤 ‘볼수록 애교만점’에 정규멤버로 출연했지만 효과는 극히 미미했다.
한편 빅토리아 쪽은 확실히 성공적이긴 했다. KBS2 ‘청춘불패’와 특히 MBC ‘우리 결혼했어요’ 출연을 통해 자신의 캐릭터를 명확히 대중에 알렸다. 그러나 언어구사능력 등 빅토리아 본인이 지닌 몇몇 한계들 탓에 그 효과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빅토리아가 좋아서 음원을 사는’ 일이 가능할지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얘기다.
가창력으로 크게 인정받던 루나는 SBS ‘스타킹’에 출연해 오히려 이미지 타격을 입은 경우다. 필리핀 여가수 채리스 펨핀코와 비교된 ‘굴욕’ 사건이 그 핵심이다. 끝으로 앰버는 음반활동 시기가 끝난 뒤 아예 한국에 들어오지도 않았기에 애초 열외다.
팀 전체로 봐도 마찬가지 얘기가 된다. Y스타에서 소녀시대, 티맥스, 레인보우 등과 번갈아가며 출연했지만 이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고, 약 3개월 간 방송된 MBC에브리원 ‘f(x)의 코알라’도 딱히 대중적 반향을 일으켰다 보기 힘들다. 적어도 ‘2NE1 TV’가 일으킨 반향에 비해선 새발의 피도 안 됐다.
거기다 방송 외로도 에프엑스는 종종 구설수에 오르내렸다. 물론 아이돌로서 ‘나쁜 뉴스보다 없는 뉴스가 더 나쁘다’는 속성은 존재하지만, 에프엑스의 경우 대중적 관점에서 다소 치명적인 것들이 많았다. 설리와 크리스탈은 한 언론사 취재과정에서 ‘무례’ 스캔들을 겪었고, 앰버는 ‘피노키오’가 나오기 직전까지 탈퇴 루머를 겪어야 했다. 데뷔 후 1년 반 동안 오히려 데뷔 당시의 공주병 이미지를 향상시키고 대중에 살갑게 다가섰던 언니그룹 소녀시대와 크게 차별되는 부분이다.
결국 결론은 특이하게 나온다. 지난 1년 반 동안, 더 정교하게 들어가면 지난해 ‘NU예삐오’와 ‘피노키오’ 사이, 에프엑스는 ‘아이돌로서’ 대중에 낙점을 받아 음원과 음반판매 상승효과를 일으킬 만한 일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점수를 깎아먹을 일들을 하거나 결정적인 기회들을 몇몇 놓쳤다. 제대로 한 번 튀어봤던 빅토리아는 불행히도 팀 내에서 입지구축의 중심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피노키오’의 1위 획득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결과일까. ‘피노키오’의 음원 및 음반 판매 상황을 살펴보면 이해가 쉽다. ‘피노키오’의 방송사 순위 프로그램 1위 러시는 기본적으로 음원과 음반판매 호조에서 비롯됐다. 특히 KBS2 ‘뮤직뱅크’의 경우 KBS 출연이 없어 시청자선호도 점수가 0점이었는데 음원 및 음반판매 점수가 높아 1위를 차지하게 됐다. 발매 초의 음원 및 음반판매는 팬덤의 탄탄한 구매력을 바탕으로 하기에 그 사이 열혈 팬덤이 착실히 구축됐다는 방증 정도는 된다.
흥미로운 건 그 다음부터다. 팬덤이 절대다수를 구입하는 음반의 경우 ‘피노키오’는 가온차트 5월 둘째 주 조사에서 2위를 차지한 뒤 바로 다음 주에 11위로 추락했다. 역시 팬덤 구매는 발매 첫 주에 몰린다는 점을 재입증했다. 그러나 일반대중의 선택이 더 잘 드러나는 음원차트는 양상이 전혀 달랐다. 싱글 ‘피노키오’는 가온차트 4월 다섯째 주 1위에 등극한 뒤 2주 동안 박봄의 ‘돈트 크라이’에 이어 2위 자리를 지켰다. 신곡들이 몰린 5월 셋째 주에도 여전히 6위에 랭크돼있다.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셈이다.
결국 에프엑스는 아이돌적 인기를 등에 업고 탄탄한 팬덤을 구축해 1위 자리를 차지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보다는 대중이 에프엑스의 ‘음악’에 신뢰를 갖고, 양질의 트렌드 상품으로 인지해 구매해줬다는 게 더 설득력 있는 답이다. 여기서, 좁게 보자면 ‘피노키오’라는 싱글 하나가 맘에 들어 구매가 촉진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피노키오’마저도 여전히 안티트렌드적인 면이 존재하는 싱글이라는 점을 감안해볼 때, ‘라차타’→‘츄~’→‘NU예삐오’로 이어지는 에프엑스의 꾸준한 안티트렌드 행보가 마침내 대중에 이해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충분히 가능해진다. 에프엑스의 ‘낯선’ 음악이 에프엑스라는 브랜드의 차별점으로서 대중에 인지되고, 결국 동의를 얻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한국 대중음악산업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지표가 된다. 에프엑스는 한국 아이돌산업 내에서 가히 독보적일 정도로 실험적인 팀이기 때문이다. YG엔터테인먼트 아이돌과는 또 다르다. YG엔터테인먼트 아이돌은 기본적으로 ‘탈(脫)아이돌’을 기치로 내걸고 ‘아이돌이 아닌 아이돌’ ‘아이돌을 뛰어넘는 아이돌’을 내세워 시장의 아웃사이더로서 판매된다. 그러나 에프엑스는 ‘아이돌’이란 틀을 고스란히 유지한 채, 아이돌 상품의 성격과 속성 내에서 변화와 파격, 실험을 가하는 팀이다. ‘아이돌을 뛰어넘는 아이돌’이 아니라 ‘아이돌의 진화 버전’에 속한다.
이런 팀은 한국 아이돌산업 전체를 진화시키는데 분명한 역할을 한다. 더군다나 이런 식으로 변화와 파격, 실험을 가하더라도 ‘1위’를 거머쥐었다는 점에서 그 진화의 전염도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에프엑스가 실험하고 있는 각종 전향적 아이돌 음악 전략이 전염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에프엑스는 ‘피노키오’ 앨범에서 한국 아이돌산업의 방향성 자체를 이동시킬 수 있는 대범한 아이디어들을 다수 내놓았다. 일단 대형기획사별 ‘색깔’을 서로 공유하는 작업을 지난 미니앨범에 이어 지속적으로 추구했다. JYP 전속 작곡가에 가까운 심은지는 지난 미니앨범에 이어 이번 앨범에서도 ‘소 인투 유’로 참여했고, 특히 이번 앨범에는 DSP의 얼굴이라 불릴 만한 작곡 팀 스윗튠까지 싱글 ‘아이’로 참여하고 있다. 덕택에 한국 아이돌시장의 다양한 면면이 한 데 배어있는 인상을 얻게 됐다.
더 중요한 건 몇 차례 제기돼왔던 인디 신과 아이돌산업 간 가교를 형성해내는 작업을 이번 앨범을 통해 마침내 성공적으로 이행했다는 점이다. 싱글 ‘스탠드 업!’은 인디 신에서 널리 알려진 페퍼톤스의 곡이며, 페퍼톤스 특유의 작법과 방법론이 그대로 살아있으면서도 에프엑스의 음악적 궤와 충돌을 일으키지 않으며 훌륭하게 조화돼있다.
만약 이 같은 실험이 지속적으로 시도돼 일정부분 이상의 성과를 얻어낸다면, 일본이 포스트 시부야계 일렉트로니카 뮤지션 나카타 야스타카와 아이돌그룹 퍼퓸을 연결시켜 얻어냈던 시너지 효과를 한국 아이돌산업도 동일하게 얻어낼 수 있게 된다. 퍼퓸은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음악으로 아이돌시장에서 주목받아 성공을 거두고, 그 성공이 나카타 야스타카에 대한 대중의 관심으로 이어져 그 자신의 팀인 캡슐까지 성공을 거두게 된 상생 환경이 한국에서도 마련될 수 있다는 얘기다.
어찌됐건 에프엑스의 이번 ‘피노키오’ 1위는 여러 가지 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사건’임에 분명하다. 한국 아이돌시장이 ‘누가 뭐래도 아이돌’과 ‘아이돌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아이돌’로 양분돼있는 현 시점, ‘누가 뭐래도 아이돌’을 ‘진화된 아이돌’로 이끌어낸 실험이 성공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실험을 대중이 받아들였다는 얘기가 되고, 같은 맥락에서 아이돌을 즐겨 소비하는 대중 역시 진화하고 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식으로 생산자와 소비자 간 합의가 이뤄진 진화 과정이 있었기에 한국 아이돌산업은 비약적 발전을 거듭, 마침내 아이돌 개념의 종주국인 일본까지 넘볼 수 있게 됐다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식의 진화 과정이 받아들여지는 환경이기에, 한국 아이돌산업은 앞으로도 꾸준히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 자신할 수 있게 된다.
아무리 해외에서 한국 아이돌상품을 벤치마킹해 그 속성과 패턴을 카피하려 해도, 그 카피에 성공했을 시점이면 한국 아이돌산업은 이미 또 다른 진화를 거쳐 전혀 새로운 콘셉트의 상품을 내민 상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종주국과 후발국 사이 간격을 꾸준히 유지시키며 한국을 산업선도 입장에 설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바로 ‘진화’에 대한 생산자와 소비자 쌍방 간 합의다.
이런 합의를 꾸준히 도출해줄 팀으로서, 그리고 도출해 ‘줘야만 할’ 팀으로서, 에프엑스의 향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에프엑스 같은 팀이 존재해야만 비로소 ‘지속가능한 한류’라는 무책임한 캐치프레이즈도 그 의미를 되찾고 기능을 회복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대중문화평론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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