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현 교수 "자궁·질 없는 여성, 제2의 인생 선물"

그 중 선천적으로 질이 없는 무질증은 월경이 나타나지 않으며 성관계를 하지 못하는 질환으로, 여성 3000~4000명 중 1명이 고통을 겪고 있다.
9일 국내 최초로 지난 2003년 복막을 이용한 무질증 환자 질재건술에 성공한 안양샘병원 산부인과 박기현(연세의대 명예교수) 과장을 만나 이 질환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산부인과 의사로서 경험했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 교수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동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과 일본에서 생식내분비 분야를 연구했다.
지난 1987년 세브란스병원에서 박 교수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자궁내시경을 이용한 점막하자궁근종 및 내막제거술을 시행했고, 지난 2003년에는 국내 최초로 무질증 환자의 질재건술에 복막을 이용한 수술을 성공하기도 했다.
또 그는 지난 2006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암환자의 난소이식을 위해 난소냉동을 실시한 바 있다.
다음은 박 교수와의 일문일답.
-어떻게 무질증 분야에 발을 내딛게 됐는가?
"생리를 하지 않고 훗날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젊은 여성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자 적합한 시술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무질증 환자에게 후진적 수술인 멕인도(허벅지 살을 잘라 질을 만드는 수술)를 시행하는 것을 보고 상당히 안타까웠다. 이 수술을 받고 질에서 땀이 나오는 등의 부작용으로 고통받는 환자를 보면서, 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절실하게 느껴 유학을 가게 됐다."
-주요 업적에 유난히 '국내 최초'란 수식어가 많이 들어간다. 새로운 시술을 많이 적용한 이유는?
"관심이 있다 보니 저절로 전문가가 된 것 같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도입하기 위해 자비를 들여 유학을 자주 갔다. 우선 지난 1987년 6월 수술적자궁내시경수술을 국내 최초로 시행했는데, 이는 일본 게이오대학교에서 배운 내시경수술을 국내에 도입한 것이다. 기존에 자궁근종이나 혹 등을 절제하는 수술은 배와 자궁을 모두 가르는 큰 수술이었지만, 내시경수술의 도입으로 질을 따라 자궁수술을 시행해 배에 흉터가 남지 않게 됐다. 또한 한국에서 처음으로 무질증 환자에게 복막을 이용한 질재건술을 시행했는데, 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멕인도 수술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껴 도입한 것이다. 미국 유학을 통해 복막을 질로 변화시키는 수술법을 배웠다. 미국 여성들은 이 수술을 비교적 간단하게 받을 수 있지만, 한국 여성들은 방광과 직장 사이가 상당히 좁아 수술이 매우 어렵다. 자칫 수술 도중 방광이나 직장을 건드릴 수 있어 전문의의 세심한 주의와 수술에 대한 노하우가 필요한데, 아직까지 이에 대한 기술이 부족해 많은 의사들이 멕인도 수술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멕인도 수술과 비교해 복막을 이용한 질재건술이 갖는 이점은 무엇인가?
"우선 허벅지 등에 흉터가 남지 않으며, 최소 침습으로 시술이 가능해 수술 후 미용적인 부분에 부담감이 없다. 또한 원래 질과 비슷한 줄기세포로 만들어져 마치 자연적으로 재생된 질의 형태와 성격을 갖추게 돼 수술 후 미용적ㆍ성적 만족감이 크다. 이에 대한 실례로 이 시술을 받은 환자가 다른 산부인과를 찾았는데, 전문의도 본래 질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한 바 있다. 성형외과나 다른 병원 등에서 시행하는 질재건술은 질 자체를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산부인과 의사의 시각으로 봤을 때, 매우 잘못됐다고 생각하며 그 환자의 미래까지도 생각할 수 있는 의사가 돼야 한다고 본다."
-16~18세에 월경이 시작하지 않으면, 무질증으로 봐야 하나?
"아니다. 이 경우 세 가지 원인이 있다. 처녀막폐쇄와 질중격 등으로 무월경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질환은 비교적 수술이 간단하다. 월경을 하지 않는 18세 이상의 여성은 자궁MRI를 통해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난소이식 위한 난소 냉동'이란 생소한 분야도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해 시행 중이다. 이는 어떻게 접하게 됐나?
"우리나라 소아암 환자 대부분은 각종 항암치료 등으로 인해 난소가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암은 완치했더라고 아이를 낳는 것이 불가능한 젊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반면 미국에서는 소아암 환자들은 항암 치료 전 미리 난소를 빼서 냉동한 뒤 완치 후 팔이나 복부 등에 난소를 이식한다. 소아암의 완치율은 70%로 성인과 달리 매우 높은 편이며, 소아암환자가 매년 1%씩 증가하는 것을 감안할 때 이러한 기술 도입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지난 1991년 미국 CNN을 보다가 우연히 코넬대학교 암센터에서 팔에 난소를 이식하는 장면을 보고, 미국 유학길을 떠난 것이다."
-산부인과를 찾는 젊은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좋지 않다. 그래서 내원을 꺼리고 뒤늦게 찾아 질환을 더 키우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한국에서는 흔히 산부인과는 결혼을 하고 나서 가는 곳, 여성 생식기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가는 곳 또는 성적으로 활발한(sexually active) 사람이 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편견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며, 국가적인 질병관리 차원에서 초경이 시작되면 산부인과를 찾아 전문적인 검진과 상담을 받는 것이 옳다는 내용을 홍보해야 한다. 조기에 산부인과에 방문할 경우 암이나 유방질환, 성인병 등을 미리 발견해 치료가 더욱 간단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을 따라서 만든 과명을 여성의학과나 여성의원, 여성병원 등으로 개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저출산을 넘어 아예 아이를 낳지 않는 기혼 여성과 이를 결심한 미혼 여성들이 증가 중이다. 이에 대한 산부인과 의사로서 견해는?
"여성들의 권익이 신장되고, 개인생활을 중시하면서 사회적으로 출산율이 상당히 낮아졌다. 하지만 이를 산모의 문제로 국한시켜서는 절대 안 된다. 낳고 싶어도 사회적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지 않아 직장을 포기하는 등 어려움이 뒤따르므로 출산을 포기하는 산모가 많은 것에 집중해야 한다. 여성들이 미혼을 왜 고집하는지를 잘 분석해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제반 정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단지 임신이나 출산 시에만 도움을 주는 '반짝' 정책이 아닌, 출산 후 양육과 보육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 및 재원 투자가 필요하다. 홍콩의 내니서포트(Nanny Support)처럼 탁아시설 확충과 유아원ㆍ유치원 등 보조금 지급 등 실질적인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시급하다."
-최근 산부인과 의사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어 분만을 하지 않는 산부인과가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산부인과를 여성클리닉 등으로 전환해 산부인과 이외의 질환(피부과나 지방흡입, 모발이식, 성형 등)을 다루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개원가에서 산부인과는 분만이 주 업무이자 주 수입원이다. 하지만 의사 수에 비해 출산율 저하가 심각해 진료량이 현저히 줄었으며, 분만시설 및 인력에 대한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졌다. 이 때문에 현재 비현실적인 수가로는 채산성이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다른 질병이나 미용 성형술, 피부과 등으로 전업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다. 산부인과 전문의가 5년간 수련받은 전문분야를 포기하고 다른 영역으로 가는 현상은 고등인력의 낭비다. 반면 전국 52개 시ㆍ군ㆍ구에 분만하는 산부인과 의사나 그 시설이 없어 인력난을 겪고 있다. 국가적으로 인력을 배치하고 수가를 조정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끝으로 산부인과 의료계에 바라는 점은.
"산부인과는 인력난으로 인한 고민이 꽤 오래됐다. 이는 의료계의 문제라기보다는 국가적인 문제다. 이 문제는 정부는 물론 대한산부인과학회와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등 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한다. 국민들에게 피해가 없으며, 언제 어디서나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전문 의료인 양성에 힘써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현재 수가를 낮추는 경제논리에만 매달리고 있으며, 산부인과 단체들은 주도권 싸움에 힘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산부인과 의사로서 하루빨리 시정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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