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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립 잡기노트]“(박)근혜, 첫 외국나들이…” 육영수의 기록

등록 2014.11.14 08:03:00수정 2016.12.28 13:4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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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정희 대통령이 부인, 장녀와 함께 호주·뉴질랜드 순방길에 올랐다.

【서울=뉴시스】박정희 대통령이 부인, 장녀와 함께 호주·뉴질랜드 순방길에 올랐다.

【서울=뉴시스】신동립의 ‘잡기노트’ <474>

 박근혜 대통령은 16세(성심여고 2)때 딱 한 번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을 수행, 해외순방을 했다. 1968년 9월 15일부터 25일까지 호주와 뉴질랜드를 방문했다.

 반세기 전 한국의 1인 국민소득은 160 달러, 두 나라는 1600 달러로 우리의 10배 수준이었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6·25에 UN군으로 참전해 대한민국이 자유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왔다. 베트남전에도 함께 참전한 자유 우방국가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어머니 육영수 여사는 귀국 후 ‘호주·뉴질랜드 방문소감’이라는 글을 남겼다. 당시 43세의 영부인은 보고 느낀 것을 일기 형식으로 기술했다.

 이 글을 공개한 이현표 전 주미한국대사관 문화홍보원장은 “육 여사의 방문소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감동적인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퍼스트레이디가 해외순방 후에 소감을 남긴 것은 국내외를 통틀어 육 여사를 빼고는 찾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육 여사는 ‘호주·뉴질랜드 방문소감’을 이렇게 시작했다.

 “이번 호주·뉴질랜드 방문은 나에게 네 번째 공식 외국순방여행이었다. 매번 그러했지만 이번 여행에서도 나는 어떤 사명감이 앞서는 심정 때문에 한 달 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여행준비에 바쁜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두 나라의 안팎 사정을 책으로 익혀두는 일부터, 내가 만나야 할 분들에 대한 여러 가지 면모를 살펴야했고, 그분들에게 전해줄 선물에 세심한 배려와 성의를 담아야 했다. 또한 때와 장소에 따라 내가 입어야하는 의상들을 구상하고 만드는 시간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이번에는 처음으로 외국 나들이를 하게 된 근혜가 아침저녁으로 걱정하는 심정을 덜어주어야 하는 것도 내가 할 일이었다. 우리 일행의 장도를 빌어주던 태극기 물결과, 전화로 혹은 편지로 헤아릴 수 없이 받았던 국민들의 말없는 성원을 뜨거운 마음으로 간직한 채, 멀리 태평양끝 두 나라에 가서 우정과 협력을 다짐하고 돌아오게 되기까지의 여정을 편의상 날짜순으로 기록해본다.”

 ◇9월16일

 호주 중북부의 도시 다윈에서 동남단에 위치한 수도 캔버라까지는 무려 다섯 시간이나 걸렸다. 아침 하늘에 비행기 창가에 끝없이 전개되는 대지에서 이 나라가 얼마나 크고 할일이 많은 나라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 비행기가 캔버라 공항에 도착한 것은 예정대로 오전 10시 정각. 때마침 화창한 봄 날씨에 공항 주변의 목장에는 젖소들이 한가로이 목초를 뜯고 있었다. 과연 이 나라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목축국가임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케이시 호주 총독 내외분과 고튼 총리 내외분을 비롯하여 호주 정부의 전 각료, 그리고 조야 인사들의 따뜻하고 정중한 영접을 받았다. 공항의식을 마친 후 멀리서부터 마중 나와 주었다는 교포일행의 열렬한 환영에 답례하면서 곧장 숙소인 캔버라 렉스 호텔로 향했다.

 호텔로 가는 교외 연도에는 우리나라의 농촌길보다 더 한가로울 만큼 인적이 드물어서 한편으로 살기에 너무 적적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길가에 혹은 울안에 마침 살구꽃과 이 나라의 국화라고 하는 골든 와틀(Golden Wattle: 아카시아의 일종)이 진노랑으로 화사하게 피어있었다. 하루 만에 두 계절을 앞서 가는 봄을 이곳에서 맞게 되니 모두가 진지한 풍경으로 보였다.

 이튿날 호주 각료 부인들의 얘기에 따르면, 이 골든 와틀은 꺾어서 방에 들이지 않는 전설이 깃든 꽃이라서 호주 여성들은 지금도 그 꽃을 꽃꽂이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꽃향기가 재채기를 잘 일으킨다고 하니 과학적으로 뒷받침이 되는 전설이라고 하겠다.

 인구가 10만 명 정도라는 캔버라는 호주의 광활한 내륙지방을 개척하기 위해 이룩된 신흥도시이다. 높지 않은 구릉을 배경으로 주로 단층 살림집들이 아담하고 질서 있게 펼쳐져 참으로 아름다운 전원도시였다.

 캔버라 렉스 호텔에 도착하자 곧 고튼 총리 내외분의 예방을 받았다. 나로서는 초면인 두 분과 잠시 환담을 나누는 가운데 새벽 비행기에서 얻은 피로를 모두 잊을 수 있었다. 두 분이 떠난 후, 우리 일행은 아담하고 규모 있게 꾸며진 총독 관저로 향했다. 그곳에서 케이시 총독 내외분과 옛정을 나누듯 환담했고, 이곳 주재 외교사절들과도 친밀한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이날 저녁 케이시 총독 내외분이 마련한 만찬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또다시 총독관저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많은 호주 지도자들과 만나 화기애애한 가운데 여유 있는 의사소통의 기회를 가졌고, 이 나라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영국의 영향을 받아온 호주는 예식을 갖추는데 정중하고 보수적인 면이 엿보였다. 그러나 지극히 겸허하고 친절한 환대를 받다보니 참으로 즐거웠다. 특히 이 나라 분들은 한국을 조금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으며, 아시아에서 우리나라가 담당하고 있는 역할에 대해서 한결같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서울=뉴시스】멜버른의 가톨릭계 고교에 들른 박근혜양(왼쪽) 사모아에서는 화환을 받았다.

【서울=뉴시스】멜버른의 가톨릭계 고교에 들른 박근혜양(왼쪽) 사모아에서는 화환을 받았다.

 ◇9월17일

 대통령이 호주 정계의 조야인사들과 중요한 정담(政談)을 나누기로 된 이날, 나는 별도의 일정을 가짐으로써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상이한 조건이 많은 이 나라의 사회적 측면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조찬을 마치고 나는 캔버라 중심가를 빠져나와 교외에 자리 잡은 메리미드 (Marymead) 아동보호소를 방문했다. 캔버라에 단 하나밖에 없는 이 아동보호소에는 생후 14개월부터 14세에 이르는 40명의 어린이들이 수녀들과 같이 살고 있었다.

 이곳은 임시보호소의 구실을 하고 있었다. 즉,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 없는 고아가 아니라, 양친 가운데 한 사람이 불상사를 당하거나 가정불화로 부부가 헤어졌다든지 하는 등 불가피한 사정으로 돌볼 사람이 없어 이곳에서 양육되고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원장 수녀님의 안내로 널찍한 풀밭 대지 위에 어린이 놀이터를 가운데 두고 둘레에 아담한 살림집과 함께 자리 잡은 어린이집을 살펴보았다. 비록 규모는 작으나 짜임새 있는 시설로 어린이들의 정상적인 발육을 위해서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를테면, 어린이들의 생활의 안정감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저마다 자기가 다니던 교회나 학교에 통학시켜주고 있었다. 나는 이곳을 우리나라 고아원 운영 실태와 견주어보았다. 고아원의 규모를 작게 해서라도 의지할 곳 없는 어린이들에게 조금 더 세심한 배려와 따뜻한 애정으로 가정적인 분위기를 맛보게 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주 총리 관저는 널따란 정원과 둘레에 단정하게 가꾼 수목들로 무척 아담한 저택이었다. 그러나 이날 오찬회에서 손님들을 접대하기에 식당이 너무 협소했던지 총리 부인은 오찬 테이블을 서재에 마련하여 20여명의 호주 각료부인들과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결하게 차린 식탁과 수수한 옷차림에 조금도 허식 없는 몸가짐으로 그분들은 내게 따뜻한 대접을 베풀어주었다. 나는 마음이 차분해지고 즐거웠으며, 평소 몸에 밴 그분들의 검소한 생활풍습에서 이 나라의 건전한 사회상을 엿볼 수 있었다.

 이어서 호주 전쟁기념관에 들렀다. 멀리 의사당을 마주보고 널찍이 자리 잡은 그곳은 성역화하기 위해서 의욕적으로 가꾸어 놓은 흔적이 역력했다. 비록 역사는 짧으나 이 나라가 오늘에 이른 투쟁적인 발자취를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전쟁기념관에서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호주용사들의 명패가 큰 벽을 이루고 내 앞에 마주쳤을 때, 온 몸에 전류처럼 흐르고 지나가는 감동과 6·25의 생생한 회상이 머릿속에 교차했다. 이국 병사들의 영령 앞에 나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혼자만의 경건한 축수(祝手)를 해주었다.

 이곳 대리석으로 세워진 전쟁기념관 중앙에는 정결한 장방형의 노천 연못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곳을 순례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 기념관에 안치된 순국 장병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은화나 동전을 던지는 미풍이 생겨, 나도 가지고 있던 은화를 물에 던져 순례자의 기쁨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9월18일

 이틀간에 걸친 캔버라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호주의 뉴사우스웨일스 주에 속하는 시드니 공항에 도착한 것은 아침 10시. 호주 최대의 도시이며 세계적인 미항인 시드니는 아름답고 번화한 도시였다.

 수려한 시드니항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뉴사우스웨일스 주총독 관저로 카틀러 총독 내외분을 방문하고, 우리 숙소인 웬트워스(Sofitel Wentworth) 호텔에서 아스킨 뉴사우스웨일스 주총리 내외분과 즐거운 오찬을 들었던 일, 모두가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이날 오후 3시 대통령과 근혜와 함께 가기로 예정했던 시드니 항만시찰을 취소하고 일정에 없던 콩코드 원호병원(Concord Repatriation General Hospital)으로 갔다. 아직도 병상에 누워있다는 호주의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하늘색 입원복을 입고 이젠 얼굴에 주름이 잡힌 아홉 분의 참전용사들을 대면했을 때, 나는 6·25의 쓰라린 상처를 이곳에 와서 그처럼 생생하고 아프게 느낄 줄은 몰랐다. 특히 몸은 살아있으나, 동공의 초점을 잃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제 정신을 찾지 못한 환자가 첫 눈에 들어왔을 때, 설레고 아픈 마음을 어쩔 수 없었다.

【서울=뉴시스】박정희 대통령 부부와 근혜양이 고튼 총리 부부의 영접을 받았다(왼쪽) 뉴질랜드 도착

【서울=뉴시스】박정희 대통령 부부와 근혜양이 고튼 총리 부부의 영접을 받았다(왼쪽) 뉴질랜드 도착

 그리고 그 환자를 가운데 두고 다 늙은 어머니와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그의 아내를 한꺼번에 보았다. 지난 20년을 이같이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가야만 하는 두 여인을 생각하니,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연민의 정을 누를 길이 없었다. 또한 내가 가 볼 수 없는 도처에 이런 분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니 잔인한 공산주의자들이 다시 한 번 미워지는 것이었다.

 다소 상기되었던 나는 한 자리에 모여 앉은 그들에게 즉흥적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넸다.

 “여러분과 여러분 전우들의 고귀한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아서 우리나라가 공산군을 완전히 제압하였고, 이제 모든 분야에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지금 우리는 태평양지역의 자유 수호를 위해 월남에서 여러분의 형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용감히 싸우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전공(戰功)을 기리는 전승기념탑이 여러분이 전투를 벌였던 가평의 격전장에 세워졌습니다. 여러분의 피로써 대신한 빛나는 전공과 명예는 그 기념탑과 함께 한국 국민의 기억에서 길이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을 다 해주어도 아깝지 않았다. 이어 그들을 대표한 어느 상이(傷痍) 소령이 나의 말을 받아 “여태까지 맛보지 못한 감격과 영광을 갖게 되어 더없이 기쁘다”고 말하자, 장내는 엄숙함과 감동으로 변해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9월19일

 만 사흘 동안 여러 가지 잊지 못할 사연을 간직한 채 시드니 공항을 출발해 뉴질랜드 오하키(Ohakea) 공군기지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30분이었다. 우리는 웰링턴에서 이곳까지 마중 나온 포리트 총독 내외분과 홀리오크 총리 내외분의 따뜻한 영접을 받았다.

 이곳에서 3대의 작은 비행기에 나누어 탄 우리가 웰링턴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서산에 기울기 시작한 저녁이었다. 바람이 많고, 비 오는 날이 잦은 뉴질랜드였지만, 우리가 도착한 날은 바람도 없이 맑게 갠 화창한 날씨였다. 때문에 뉴질랜드에서 우리는 좋은 날씨를 몰고 온 동양의 귀빈이라는 인사를 여러 차례 들을 수 있었다.

 공항 로비에서 홀리오크 총리의 안내로 뉴질랜드 각료 부부, 야당 당수 내외분, 외교사절들과 우애 넘치는 인사를 교환한 후, 우리는 뉴질랜드 총독관저가 있는 웰링턴 시가지로 향했다.

 잔잔한 파도를 연달아 밀어붙이는 해변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시가지에 이르는 풍경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시내로 다가가면서 산기슭에 산뜻하고 아담하게 들어앉은 집들의 지붕들이 서울에서 많이 보던 것 같아서 친근하게 느껴졌다.

 주황 등으로 밝힌 긴 터널을 빠져나와 눈앞에 전개되는 웰링턴 시가지는 거의 산마루까지 크기가 고르고 산뜻한 집들이 숲속에 가득하게 들어 앉아 특유한 아름다움을 자아냈으며, 이 나라가 골고루 잘사는 복지국가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특히 이번 뉴질랜드 방문에서는 포리트 총독 내외분의 각별한 배려로 총독 관저의 특실에서 머물렀다. 우리 내외와 근혜가 그분 기족과 더불어 한가족처럼 생활했던 경험은 나로서 길이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이날 저녁 총독관저에 여장을 풀고 포리트 총독 내외분과 함께 만찬을 끝낸 후에 리셉션이 개최됐다. 우리 내외를 위해서 총독 내외분이 베푼 리셉션에는 뉴질랜드의 거의 모든 저명인사들과 한국전에 참전했던 많은 인사들이 대접견실에 모여 마치 축제를 즐기는 것 같았다.

 ◇9월20일

 이날 오전에는 은은한 종소리가 하늘에 퍼지는 가운데, 고색창연한 성당 안에 마련된 전쟁기념비에 경건한 마음으로 헌화했다. 이 자리에서 이제 모두 중년이 된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전몰유족들을 만나 감회가 새로웠다. 나는 그분들에게 될 수 있으면 의미 있는 한국 소식을 전해주려고 무척 노력했다.

 곧 이어 키츠 웰링턴 시장이 베푸는 환영식에 참석하여 이곳에 모여든 시민들과 조금 더 호흡을 가까이 할 수 있었다. 또한 이 환영식에서 웰링턴 시의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4명의 여류정치인들과 인근 도시의 여성시장을 만나 이 나라 여성의 사회 참여도를 가늠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호주와는 달리 이곳 뉴질랜드에서는 원주민인 마우리족들이 사회적으로 아무런 차별을 받지 않고 있었다.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이들이 의회에까지 진출하여 똑같이 복지사회건설에 이바지하고 그 덕을 함께 누리고 있는 것이 대견스러워 보였다.

【서울=뉴시스】박정희 대통령이 사모아 총독에게 근혜양을 소개했다(왼쪽) 뉴질랜드 치즈공장

【서울=뉴시스】박정희 대통령이 사모아 총독에게 근혜양을 소개했다(왼쪽) 뉴질랜드 치즈공장

 어느 거리에서나 볼 수 있었던 마우리족 남녀들은 대부분 건장한 체격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외양은 우리 동양사람과 별로 다르지 않았고, 햇볕에 그을린 피부색을 지닌 그들을 보면 호감이 갔다. 

 시청의 환영식에 이어 대통령은 뉴질랜드 의회에서 홀리오크 총리와 중요한 회담을 나누기로 되어서 나는 근혜와 함께 카리테인 병원을 방문했다.

 웰링턴 시가지와 멀리 남태평양의 망망대해를 바라다 볼 수 있는 산꼭대기에 위치한 산모(産母)병원이었는데, 규모는 작지만 짜임새 있게 운영되고 있었다. 산모의 간호와 육아 기술을 습득하여 이 지방 시민들에게 보급시키는 역할까지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이 나라의 산모와 영아를 위한 세심한 배려의 단면을 느낄 수 있었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곳 가축시험소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조희주씨를 만났다. 내가 고국을 떠나기 전에 편지를 보내와 아들을 만나주기를 간곡히 바랐던 그의 어머니 박순개 여사의 청을 들어줄 수 있어서 기뻤다. 

 이날 나는 홀리오크 총리 부인이 주최하는 오찬회에 참석하여 20여명의 뉴질랜드 각료부인들과 즐거운 오찬을 가졌다. 간결하고 조촐한 이날의 식탁에는 우리나라의 뱅어전과 거의 유사한 생선전뿐만 아니라 한식맛과 비슷한 요리 접시가 여럿 있어서 참으로 유쾌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한 부인들이 입고 온 태국 실크가 우리나라 실크보다 못하다는 것을 모르는 그들에게 한국 비단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을 해주었더니, 모두 새로운 것이나 발견한 듯 좋아했다. 좌중의 모든 각료 부인들은 한결같이 서민적이고 검소해보였다. 대부분 자기 손으로 부엌일부터 자녀양육과 교육에 이르기까지 도맡아 한다는 얘기를 들으니 우리나라 현실과 여러모로 비교되었다.

 이곳 뉴질랜드에서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거리의 모든 음식점과 접객업소들이 문을 닫아 남편들이 가정에서 지낸다고 한다. 또한 평일에 직장에서 돌아온 남편들은 주부가 할 수 없는 페인팅이나 정원 가꾸기를 하며 가정을 이상적으로 이끌어나간다니, 이 나라가 축복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이 2박3일 동안 묵었던 총독관저는 앞뒤로 널찍한 정원이 있고, 주변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고색창연한 2층 목조건물은 귀족적인 권위를 풍겼다. 건물은 연도가 오래되어 내부시설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옛 모습대로 소박한 실용성을 지니고 있어서 정겨웠다. 특히 2층에서 벽돌 하나를 사이에 두고 총독 내외분과 각각 지냈던 만큼 수돗물 쓰는데도 되도록 소리가 덜 나게 조심하고, 일찍 취침하는 그분들을 위해서 다음날 준비를 일찍 끝내고 잠을 청했다.

 ◇9월21일

 웰링턴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아침 9시, 비행기편으로 홀리오크 총리 내외분과 함께 농장시찰을 위해 해밀턴시로 향했다. 적당한 고도를 유지하며 날아가는 비행기 창문을 통해서 펼쳐지는 뉴질랜드의 수려한 산천은 모두가 풀밭으로 덮여있었다. 그 위에 희고 검은 반점의 가축들이 무수히 노닐고 있어서 전국토가 목장을 방불케 했다.

 해밀턴시를 거쳐 존스톤 목장에 도착하여 목장 주인 존스톤씨 아들이 운전하는 랜드로버 승용차를 타고 1250 에이커에 달하는 대규모 목장을 대충 살펴보았다. 양 6000 마리, 소 600 마리를 기르는 이 거대한 목장이 단 10명의 손에 의해서 가꾸어진다는 얘기를 듣고 그저 놀랍기만 했다.

 더구나 70년 동안 대를 이어서 경영하고 있는 주인집이 작고 편리하게 꾸며져 있는 것을 보고 불필요한 경비를 억제하는 뉴질랜드인들의 검소한 생활철학이 어느 계층에나 스며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존스톤씨는 초등학교 손자들도 집에 오면 젖 짜는 일을 거든다고 한다. 그는 또한 기술자는 하루에 300 마리의 털을 깎지만, 아들은 서툴러 200 마리 정도라고 설명했다.

 해밀턴 지방은 높은 계곡이 거의 없고 현관문만 나서면 발 닿는 곳은 어느 곳이든 목초로 덮여 있어서 흙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농약과 비료는 비행기로 뿌리고, 개들이 양을 몰고 다니며, 모든 인력과 자원이 생산에 동원되고 있는 이 나라는 정말 알뜰하고 살뜰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풀밭에 천막으로 만든 간이식당에서 이 고장 육류산업 조합원들이 베푼 뷔페 오찬에 초대받았다. 그들이 알려주지 않았던들 처음 먹어보는 양고기를 닭고기로 알고 먹을 뻔하여 서로 웃기도 했지만, 양고기 카레는 맛이 훌륭했다. 나는 그곳에서 뉴질랜드 토산동물 키위새가 새겨진 티스푼 한 벌을 조합장으로부터 선사받고 따뜻한 배려에 감사를 표했다. 다시 자동차로 코마코라우 치즈 공장으로 이동해 젖소에서 짜낸 우유가 맛이 일품인 치즈로 금세 상품화되는 과정을 목격했다. 우리나라도 목축업이 성하여 이렇게 영양가 높은 식품들이 조석으로 식탁에 오르는 날을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이현표 원장은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뉴질랜드에서 2.2t이나 되는 축산과 낙농에 관한 책 등 자료를 싣고 귀국했다”고 귀띔했다)

 약 1세기 전에 이곳에 자리 잡기 시작한 뉴질랜드가 불과 300만 미만의 인구를 가지고 값비싼 목축국가로 변모한 이면에는 끈질긴 개척정신과 피나는 노력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서울=뉴시스】육영수 여사와 박근혜양이 카리테인 산부인과에 왔다.

【서울=뉴시스】육영수 여사와 박근혜양이 카리테인 산부인과에 왔다.

 뉴질랜드 최대의 도시이며 옛 수도인 오클랜드에 도착한 것은 오후 5시. 커다란 항만시설을 갖고 널찍한 평원에 전개된 이 도시는 근대와 현대가 잘 조화되어 시가지의 다양한 풍경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어둠이 시가지를 덮기 시작할 무렵, 맥켈로이 시장이 베푼 환영초대연에 참석하기 위해 시청에 도착했다. 마침 몇 명의 애송이 공산주의자들이 쿠바기를 흔들며 무언가 억지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주는 여유를 보였다.

 이날 밤 화기에 넘치는 리셉션에서 세 쌍의 건장한 마우리족 남녀가 힘에 넘치는 그들 고유의 민속춤과 음악으로 우리를 매우 즐겁게 해주었다.

 ◇9월22일

 날씨가 흐려 비가 오락가락하던 이날은 정해진 일정이 없는 일요일이었고, 이젠 대부분의 공식 일정이 끝난 터여서 마음이 다소 가벼웠다. 이날 아침 볼 수 있었던 한 가지 진풍경은 우리가 묵고 있던 인터콘티넨탈 호텔의 길 건너 보행로에서 중공기와 월맹기를 들고 밤을 새워가며 대통령 행사를 기다렸다는 4~5명의 10대 데모 대원이었다. 

 13층 내 방의 앉은 자리에서 내려다 볼 수 있었는데, 지나가는 행인들은 아무도 그들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들은 연상 무엇을 먹어가며 그저 발장난을 하다가 막상 대통령이 너무 당당하게 현관 정문으로 행차하는 바람에 그만 소리 한 번 제대로 못 지르고 헤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이들 허술한 데모 대원들은 일당으로 보수를 받고 데모 행세를 하고 있다니 합법화된 이 고장 공산주의자들의 모습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오클랜드에서 이틀 묵었던 인터콘티넨탈 호텔은 비교적 방이 알맞은 규모였고 방마다 색조를 달리 하고 있어서 서비스가 비교적 세련되었다. 특히 시원한 윈도우를 통해 보이는 전망이 더없이 아름다웠다.

 마침 일요일이라 근혜가 인근 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돌아와서 함께 이곳 박물관에 들렀다. 이 나라의 역사적인 발자취를 섭렵하고 돌아온 나는 이번 여행에서 처음 보는 빗줄기를 내다보며, 이모저모로 생각에 잠겼다.

 이번 호주와 뉴질랜드 방문에서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이며, 우리가 그분들에게 해 줄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또한 고국의 동포들에게 들려주고 안겨줄 선물은 무엇인가? 집에서 아빠와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근영이와 지만이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그 동안 쌓였던 피로를 조심스럽게 풀기도 하였다.

 아침 8시 반, 이번 호주·뉴질랜드 친선방문을 마무리하고 떠나는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그동안 더없이 각별했던 포리트 총독 내외분과 가는 곳마다 친절하게 살펴주고 안내해주었던 홀리오크 총리 내외분이 배웅을 나와 정말 아쉬운 석별이었다.

 북쪽을 향해 날기 시작한 우리 비행기는 이날 정오경 사모아 공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삼치 원양어업에 종사하고 있는 우리 어부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남양의 정취가 깃든 아담한 초가집 공항 건물 주변에는 울긋불긋하게 차려입은 인근의 추장들과 원주민들이 운집하여 뜻밖의 이색적인 환영객을 맞게 되었다.

 이곳에서 우리 어부들을 만나러 가파른 산 밑으로 굴곡이 심한 해안 길을 따라 굽이굽이 약 8㎞를 달렸다. 그동안 망망대해에서 거침없이 밀어붙이는 큰 파도들이 흰 거품을 일으키며 끊임없이 길 밑에 부딪히는 사모아섬의 특이한 정취를 맛보게 해주었다.

 그곳 어업기지에서 삼치어업에 종사하고 있는 많은 우리 어부들을 만났을 때, 개척정신의 상징인 것 같은 그들의 건장하고 늠름한 모습을 접하고 참으로 대견스러웠다. 멀리 고국에 이들을 하루도 잊지 못하는 부모형제와 처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껏 대화를 나누고 싶었으나 다음 일정 때문에 곧 떠날 수밖에 없어 무척 서운한 마음이었다.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야자수 그늘 아래에서 손을 흔드는 어린이들은 매우 귀여웠으며, 곧 우리 일행은 사모아 공항을 메운 태극기 물결 속에 이륙하여 드디어 귀국의 길에 올랐다.

 기내에서 근혜는 서울에 도착하면 바로 다음날부터 시작되는 시험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근혜는 이번 여행 중에 매사에 나보다는 자유스러웠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자기가 만든 일정표에 따라 많은 견문을 넓혔으므로 우리는 서로 자위하기로 했다.

 근혜는 이번 여행에서 평소에 스스로 생활하는 방법을 터득해서인지 시종 우리에게 걱정을 끼치는 일이 없었을 뿐더러 어느 면으로는 이번 친선여행의 뜻을 더욱 살려주기도 했다. <끝>

 이후 46년, 박근혜 대통령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14일 호주를 찾는다.

 온라인편집부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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