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파리에서 지평까지’ 쌍둥이 6·25 참전기념비 제막이 더욱 소중한 이유
![[기자수첩] ‘파리에서 지평까지’ 쌍둥이 6·25 참전기념비 제막이 더욱 소중한 이유](https://img1.newsis.com/2025/11/30/NISI20251130_0002006067_web.jpg?rnd=20251130075220)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29일 오후 2시 경기 양평군 지평면 경의중앙선 지평역 인근 6·25 전쟁 프랑스대대 참전기념비 부지에서는 ‘UN 프랑스대대 소속 한국군 참전기념비’ 제막식이 열렸다.
1950년 11월 29일은 프랑스 참전부대가 한국 땅에 첫 발을 디딘 날이다. 초겨울 쌀쌀 날씨속에 이날 행사를 가진 이유다.
![[양평=뉴시스] 구자룡 기자 = 29일 경기 양평군 지평면에서 제막한 UN프랑스부대 소속 한국군 참전기념비. 한반도 모양이 프랑스 파리 퐁마리 프랑스대대 참전기념비와 쌍둥이처럼 닮았다. 2025.11.30. kjdrago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5/11/30/NISI20251130_0002006078_web.jpg?rnd=20251130083001)
[양평=뉴시스] 구자룡 기자 = 29일 경기 양평군 지평면에서 제막한 UN프랑스부대 소속 한국군 참전기념비. 한반도 모양이 프랑스 파리 퐁마리 프랑스대대 참전기념비와 쌍둥이처럼 닮았다. 2025.11.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韓·佛·美 3국 지평리 전투 참전 퍼즐 완성한 ‘한국군 참전 기념비’ 제막
6·25가 끝난 지가 언제인데 이제야 ‘참전기념비’를 세우나.
더욱이 참전비 기단부에는 프랑스대대에 배속돼 싸우다 숨진 한국군 장병 명단이 새겨졌는데 표기가 여러 가지다. 한글, 프랑스어와 한글 병기, 일부는 프랑스어로만 되어 있다.
전진선 양평군수는 기념사에서 “아직 모든 명단이 해석되지 않은 것”이라며 “마지막 한 분까지 반드시 찾을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전후 이뤄진 전사(戰史) 연구로 1951년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사흘간의 지평리 전투에는 미국, 프랑스와 함께 한국군 장병 140명 가량이 참가한 것으로 확인됐지만 아직도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분들도 상당수다.
중공군 4개 사단과 맞서 싸운 미군 2사단 23연대의 4개 대대 중 1개는 프랑스대대, 프랑스 대대의 1개 중대는 구필 대위가 지휘한 한국군으로 구성됐다.
양평군은 한국군이 프랑스대대의 일원으로 참전했음을 공식적으로 기록한 최초의 기념비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항미원조(抗美援朝)를 구실로 ‘정의롭지 못한 전쟁’에 참전한 중공군의 인해전술 기세를 처음 꺽은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지평리 전투에 참전한 미국, 프랑스, 한국 3개국의 퍼즐이 비로소 모두 맞춰졌다. 기념식 첫 순서로 3개국의 국가가 모두 연주된 것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날 제막식에는 한국군 중대에 배속됐던 참전용사 김봉오 옹(92)이 휠체어를 타고 참석해 ‘명예 군민증’을 받았다. 그는 한·프랑스 합작 부대의 살아있는 증인이다.
한국군 중대를 이끌었던 구필 대위는 그해 9월 단장의 능선 전투에서 전사했다. 프랑스 생시르 사관학교는 209기 졸업생을 ‘구필대위 기수’로 부르며 피로 이어지는 6·25의 인연을 전하고 있다.
지평석(砥平石)으로 제작한 한반도 모양의 1.95m 높이 참전비는 프랑스 파리 퐁마리의 참전비와 쌍둥이다.
페드릭 보두앙 프랑스참전용사협회 회장은 서면 기념사에서 “양평에서 파리까지, 한국에서 프랑스까지를 잇는 피로 맺어진 우정의 상징”이라고 쌍둥이 참전비를 풀이했다.
![[양평=뉴시스] 구자룡 기자 = 29일 경기 양평군 지평면에서 열린 UN프랑스대대 소속 한국군 참전기념비 제막식에서 참전용사 김봉오 옹 등이 참가한 가운데 기념촬영하고 있다. 2025.11.30. kjdrago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5/11/30/NISI20251130_0002006068_web.jpg?rnd=20251130075533)
[양평=뉴시스] 구자룡 기자 = 29일 경기 양평군 지평면에서 열린 UN프랑스대대 소속 한국군 참전기념비 제막식에서 참전용사 김봉오 옹 등이 참가한 가운데 기념촬영하고 있다. 2025.11.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트럼프의 우크라 평화안’과 지평리 전투 참전기념비
1년여가 지나 전황이 교착상태에 빠진 뒤에는 전투 경계선에서 일정한 완충지대를 설정한 뒤 휴전한 후 ‘전쟁이 끝나지 않은 정전 협정’ 체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도 6·25를 닮아간다고 하기도 했다.
어언 6·25 기간을 훌쩍 넘겨 4년이 되어 가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조금만 뒤집어보면 6·25와는 매우 여러 가지 측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된다.
무엇보다 지평에서 ‘조촐하게’ 치러졌지만 ‘참전 기념비 제막식’은 우크라이나가 보면 기적같은 일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특별 군사작전’이라는 미명하에 침략을 당했지만 6·25때처럼 유엔 안보리가 침략으로 규정하고 군사원조, 유엔군 창설 결의안을 잇따라 통과시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다.
안보 파수꾼을 자임하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하나인 러시아가 침략의 주체이고 또 다른 상임이사국 중국은 러시아 지원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미국은 준비 안 된 파병으로 초반 한달여만에 낙동강까지 밀려났지만 연인원 178만 명이 참전해 3만 3686명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이 사망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와의 막후 협상을 통해 작성해 19일 공개된 이른바 ‘우크라이나 평화안’ 28개항은 ‘침략국 러시아에 항복’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전투에서 빼앗기지 않는 지역까지 ‘선제적’으로 내어주고, 러시아 동결자산을 활용한 재건투자 수익의 50%를 미국이 가져가는 내용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국에 대한 안보 제공은 ‘유료 서비스’라는 시각의 결정판이다.
비판과 논란 속에 ‘28개항’은 수정되고 있지만 “침략군을 격퇴한다”는 6·25 당시의 파병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영국과 프랑스 주도의 ‘의지의 연합’은 휴전 후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을 위해 ‘우르라이나 안심군’ 등 어떤 형태로든 지상군을 주둔시키려고 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 초기 미국에도 지상군 배치 희망을 가졌으나 지금은 언감생심이다. 유럽 국가의 러시아의 재침공을 막는 ‘인계철선’ 병력 배치도 난항을 겪고 있다.
최근 한국인 50대 의용군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숨져 예우를 갖춰 장례식을 치렀다고 외교부는 밝혔다.
6·25에 참전한 중공군은 지금도 ‘의용군’으로 부른다.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대규모로 인해전술로 밀려 들어온 것이 차이지만.
6·25 전쟁처럼 국가가 부대를 조직하고 일정 주기로 교대시키면서 유엔 기치하에 타국의 침략군을 막기 위해 참전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서보면 이제 난망인 듯하다.
![[양평=뉴시스] 구자룡 기자 = 29일 경기 양평군 지평면에서 UN프랑스대대 소속 한국군 참전기념비 제막식이 열렸다. 왼쪽부터 아신 라마니 주한프랑스대사관 국방무관 보좌관, 베루아드 등 플라세 부국방무관, 라파엘 브론도 국방무관, 참전용사 김봉오 옹, 전진선 양평군수, 오혜자 양평군의회 의장. 2025.11.30. kjdrago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5/11/30/NISI20251130_0002006079_web.jpg?rnd=20251130083118)
[양평=뉴시스] 구자룡 기자 = 29일 경기 양평군 지평면에서 UN프랑스대대 소속 한국군 참전기념비 제막식이 열렸다. 왼쪽부터 아신 라마니 주한프랑스대사관 국방무관 보좌관, 베루아드 등 플라세 부국방무관, 라파엘 브론도 국방무관, 참전용사 김봉오 옹, 전진선 양평군수, 오혜자 양평군의회 의장. 2025.11.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6·25 전쟁의 게티스버그 전투’와 프랑스대대
지평리 전투가 벌어진 1951년 2월 13∼15일 이전 미군은 3차례나 남한에서 철수할 것까지 고려했다.
처음은 북한군에 밀려 낙동강 방어선이 위태위태하던 1950년 9월 초순이었다.
이어 두 차례는 북진했던 국군이 두만강까지 도달했으나 요란한 피리 소리와 함께 물밀 듯이 인해진술로 몰려오는 중공군에 밀려 오던 12월, 그리고 ‘1·4 후퇴’로 서울을 다시 내준 뒤였다.
화둥사범대학 역사학과 종신교수이자 냉전사 연구 권위자인 션즈화 교수는 6월 양평군 주최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서 중공군이 엄중한 타격을 입었던 첫 번째 전투로 기록된다고 평가했다.
선 교수는 전술적인 면에서 적군을 얕잡아보는 과오도 범했으나 양측은 지평리 전투 이후 38도선 부근에서 교착 상태에 접어들어 휴전 협상이 시작되는 전환점이 됐다고 평가했다.
유엔군측에서 보면 중과부적의 상황에서 ‘고립 방어’ 전략을 통해 승리해 육군지휘참모대학의 교재에 실린 연구 대상이 됐다고 군사편찬연구소 박동찬 선임연구원은 세미나에서 소개했다.
방어 전면을 축소해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고 있으면서 우세한 화력과 공중 지원으로 사흘을 버텨 ‘육지의 한산도 대첩’에 비견되는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이러한 지평리 전투에서 한국군 한 개 중대가 배속된 프랑스대대는 백병전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서쪽 방어선을 지켜냈다.
2차 대전의 상흔이 가시지 않아 유엔 5개 상임이사국 중 하나이면서도 대대 병력만을 파견했던 프랑스는 전역한 3성 장군이 중령 계급으로 스스로 강등한 랄프 몽클라르가 대대장을 맡았다.
양평 ‘지평의병·지평리 전투 기념관’에는 중공군 나팔 소리에 맞불을 놓아 혼란에 빠뜨린 수동식 사이렌 사진이 눈에 띈다.
부상을 입고도 후송을 거부하며 전투를 지휘한 폴 프리먼 미 23연대장의 헌신 등 전승의 서사가 많지만 그 중심에 프랑스대대가 있다.
양평군은 ‘제막식 자료집’에서 지평리 전투의 프랑스대대는 한국군이 보급 인력이나 들것 운반병이 아닌 정규 전투병으로 편입한 최초의 부대였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양평=뉴시스] 구자룡 기자 = 지평리 전투 참전용사 김봉오 옹. 2025.11.30. kjdrago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5/11/30/NISI20251130_0002006080_web.jpg?rnd=20251130083226)
[양평=뉴시스] 구자룡 기자 = 지평리 전투 참전용사 김봉오 옹. 2025.11.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승자와 패자를 아우르는 ‘양평국제평화공원’, ‘피스플’ 구상
양평군도 전투 현장에 ‘피스플(Peaceple)’을 핵심 개념으로 한 공원 조성을 추진중이다. ‘평화’와 ‘사람’의 합성어로 전쟁의 역사와 기억을 ‘사람’ 중심으로 재해석해 적군도 포용하는 용서와 화해의 평화를 지향한다고 한다.
중국은 1992년 수교 이후 그야말로 ‘옷 소매 한 자락(一衣帶水)’의 가까운 이웃이 됐다. 우여곡절이 있지만 소중히 관계를 키워가야 할 터에 평화공원의 지향점은 시사점이 크다.
양평군은 19일에는 프랑스 참전용사협회 관계자 등과도 만나 공원 조성 사업을 논의했다고 한다.
29일 제막한 참전비 옆면에는 내년 한-불 수교 140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세운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남아공 G20 정상회담에서 내년 마크롱 대통령의 방한을 초청했다.
방한하는 프랑스 대통령은 양평의 지평리 전투 현장과 평화공원이 필수 코스가 될 만한 의미와 가치가 충분한 것은 물론이다.
29일 제막식은 비록 중앙 정부 아닌 군(郡)이 주최 주관한 소박한 행사였다.
하지만 ‘지평’이 6·25 전쟁의 과거와 상처를 딛고 ‘국제적 평화의 장’으로 가는 첫걸음은 내딛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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