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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길 잡아 주셨죠” 25년째 스승의 날 찾아오는 제자들

등록 2024.05.14 15:32:17수정 2024.05.14 15:5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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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종훈 교장과 한상덕 씨 등 고교 제자 '사제의 정'

권종훈(가운데) 선생님과 제자 나영수(왼쪽부터), 김광하, 정용수, 한상덕 씨

권종훈(가운데) 선생님과 제자 나영수(왼쪽부터), 김광하, 정용수, 한상덕 씨

[경주=뉴시스] 이은희 기자 = 경북 경주에서 수십 년째 사제 간의 정을 나누는 스승과 제자들이 있어 화제다.

울산에서 직장을 다니는 한상덕(43) 씨는 5월이면 달력에 적힌 ‘스승의 날’이 꼭 챙겨야 할 기념일 중 하나다.

한씨와 함께 25년째 옛 선생님을 찾고 있는 고교 친구 김광하·류대진·최종훈, 선배 나영수와 정용수·정재수 쌍둥이 형제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오는 15일에도 어김없이 선생님을 만나고, 스승의 날 노래와 함께 큰절로 감사의 마음을 전할 예정이다.

주인공은 오는 8월 말 34년간의 교직을 떠나는 월성중학교 권종훈(62) 교장. 권 교장은 지난 1996년 경주정보고등학교에서 한씨와 처음 만났다.

학창시절 성적을 쑥쑥 올려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시키거나, 유학을 보내 흔히 말하는 사회적 성공을 도운 것은 아니다.

당시 울산에서 중학교를 마친 한 씨는 공부에 그다지 취미가 없어 비평준화 지역인 경주에서 고교 졸업장만 챙기겠다는 생각에 이 학교로 진학했다.

입학 후, 인근 여고와 소개팅을 시켜준다는 선배들의 꼬임에 넘어가 등산부에 가입했다. 등산부는 조용한 날이 없었다.

그때 그 위험한(?) 회원들을 데리고 30대의 권종훈 선생님은 3년간 산을 다녔다. 주말이면 하루, 방학이면 2박 3일씩 지리산을 포함해 전국의 웬만한 산은 모두 올랐고, 갈 때마다 반항기의 회원들을 달래며 닭백숙 등으로 든든히 식사를 챙겼다.    

한씨는 “시장에서 파는 운동화 신고 책가방 메고 처음 산에 올라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면서 “선배들에게 두들겨 맞으며 우정이 쌓였고, 하나부터 열까지 아버지처럼 인생길을 잡아준 선생님에게 존경심이 커져갔다”고 말했다. 
모교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한 제자들

모교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한 제자들


학생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등산부에 자부심이 생겼다. 모범이 돼야 한다는 말에 출석도 학업도 게을리할 수 없었고 졸업을 앞두고는 삶의 방향도 정할 수 있었다.

졸업 후, 이들은 모교를 찾아 캠핑·야영 장비와 장학금 후원, 행사장 재능기부 등으로 받은 사랑을 고스란히 후배들에게 돌려주고 있다.

9년 동안 등산부 지도교사를 맡았던 권 선생님은 한씨와 함께 정보고를 졸업한 뒤, 같은 재단 소속 중학교로 부임했다. ‘인성’을 중시한 학교는 학교폭력 관련 민원도 거의 없고, 학업성적도 뛰어나 현재 지역 학부모들로부터 호응이 높다.    

권 교장은 지리산, 태백산, 월출산, 두타산, 오대산, 치악산 등에서 학생들과 함께 넘어지고 깨지며 인생의 동반자가 됐다. 또 그동안 에베레스트 등 세계 명산을 오르거나 백두대간, 9정맥, 162정맥을 완주하며 산과 하나가 되어 왔다. 
 
권종훈 교장은 “유명 대학에 입학하면 1번 정도 인사하러 오는 데, 그때 만난 등산부 제자들은 말려도 계속 찾아오고 있다”면서 “위험한 순간을 함께 극복하며 산을 통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인성교육이 됐고, 이제 그들로부터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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