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초대석]서봉수 9단, 지금은 속기시대…인터넷과 알파고

서봉수(63) 9단은 반상 위에서만 냉철한 승부사다. 그러나 평소에는 푸근한 동네 아저씨다. 바둑사에 남을 대기록을 세운만큼 끊임없이 자랑을 늘어놓을 법도 한데, 내내 겸손함과 솔직한 심성을 드러냈다.
바둑계만큼 치열하고, 또 어린 나이에 승부를 봐야 하는 곳도 없다. 최근에는 프로 입단 연령대가 높아졌지만 서 9단 때만 해도 최소 15세 이전에 프로가 돼야 성공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 9단은 15세에 바둑을 처음 배웠고, 1970년 '17세7개월'에 입단대회를 통과해 프로가 됐다.
그렇게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이듬해 명인전에서 우승했다. 입단 1년8개월밖에 되지 않은 19세 무명 기사가 '한국바둑의 대부' 조남철(1923~2006)을 이기자 모두를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때 '서봉수=명인'이란 등식이 만들어지면서 '서 명인'은 그의 애칭이 됐다.
이후 MBC TV 제1기 국기전(1974) 응씨배 세계바둑 선수권대회(1993) 국기전(1980) 왕위전(1980) 최고위전(1980) 바둑왕전(1983) 제왕전(1983) 국수전(1986) 동양증권배(1991) 등 다수의 바둑 대회에서 우승했다. 1994년에는 통산 1000승을 달성했으며 1997년 진로배 SBS 세계 바둑 최강전에서 9연승으로 한국에 우승을 안겼다. 1999년에는 LG정유배에서 우승해 6년 만에 타이틀을 따냈고, 2006년 바둑대상에서 감투상을 받기도 했다.
그에게 바둑은 '운명'이란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바둑은 내가 살아온 길이고, 나의 인생 전부다. 바둑만 하고 살아왔다. 바둑으로 평생을 살아왔으니까 내 몸의 일부다."
도대체 바둑의 매력은 무엇일까. 서 9단은 "미지의 세계에서 모험심과 도전정신을 가지고 헤매는 즐거움이 있다. 그 안이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고 답했다. "잘 모르는 길을 가면 헤매는 거 아니냐. 그래서 헤매는 즐거움이 있다. 못 찾으면 평생 고뇌하는 것이다. 문제를 내놓고 못 풀면 한없이 들여다보는 것이다. 천문학자가 우주가 어떻게 생겼는지 고민하듯 말이다. 하하."
-바둑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프로기사가 되니 부모가 좋아했을 것 같다.
"그때는 프로기사는 밥을 못 먹던 시절이었다. 지금처럼 인식도 좋지 않아서 우리 때는 혼나면서 배웠다. 요즘은 아이가 바둑을 좋아하면 엄마가 바둑교실로 데리고 가서 가르치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바둑교실도 없었고 초등학생이 배우려고도 하지 않았다."
-공부는 어느정도 암기를 하면 잘할 수 있는데, 바둑은 외워서만 되는 게 아니고 어렵다.
"창의성을 키우는 교육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암기 위주의 교육은 잘못된 거니까 바꿔야 한다. 바둑 같은 경우에는 암기가 거의 필요없다. 수없이 반복하니까 외우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바둑이 두뇌 계발 등 장점이 많은 것 같다.
"바둑은 여러모로 좋게 해준다. 인내심, 절제력을 길러주고 성질이 급한 아이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다. 바둑을 성질대로 두었다가는 돌이 다 죽는다. 아이들이 저절로 터득하게 해주고 상상력, 창조능력을 길러준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은 무엇이 됐든간에 어려움이 따르는데, 바둑은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남이 하지 않는 새로운 길에 도전하는 모험정신이 있어야 한다."

"지금 너무 어렵다. 입단의 문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고속도로에 차가 막혀있는데 차를 한 두 대, 열 대를 내보내면 소용 없다. 지금은 1000대, 수백대씩 내보내야 한다."
-사법시험보다 훨씬 어렵고, 인원이 너무 적더라. 입단하고서도 다 잘 되는 게 아닌 것 같다.
"되고서 반드시 생활보장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 때부터 시작이다. 그래서 탄광에 비유해서 말한 적이 있다. '네가 프로가 됐다는 것은 광부가 됐다는 것이다. 너는 이제부터 탄광으로 들어왔는데, 네가 여기서 돌을 캐면 '황'이고 석탄을 깨면 하루 세 끼는 먹고 살 것이고 금을 캐면 부자가 될 것이다. 금은 한정돼 있고 소수가 가져가는 것이라 금을 캐기는 어렵다. 그게 네 손에 달려있다. 프로의 세계라는 게 그런 거다'라고 했었다."
-깊이 공감한다. 어떤 시험이든 합격해도 끝이 아니다.
"지금은 뭐든지 보장되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의사도, 변호사도 됐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그래서 공무원 직업의 인기가 높은 것 같다. 모두가 시험에 매달려 있다보니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고,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인 것 같다."
-요즘도 계속 공부하고 연구하는지.

-방송으로 중계되는 대국이 많다보니 기전의 제한시간이 장고보다는 속기 위주로 가는 것 같다.
"속기화 시대다. 바둑 팬, 대국을 보는 사람이 중요해졌다. 바둑의 본질은 원래 인간의 사고 능력을 키워주는 데 있었다. 지금은 TV와 인터넷 시대니까 속기를 안 할 수 없다. 이에 적응을 해야 된다."
-2014년 인기리에 방송된 tvN 드라마 '미생'을 봤는지.
"'미생'은 안 봤는데, '미생'도 그렇고 이창호(41) 9단을 모델로 만들어진 최택(박보검)이 등장한 '응답하라 1988'이 바둑계에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이세돌(33) 9단과 구글 딥마인드 인공지능(AI) 알파고의 대국 역시 많이 이슈가 되는 것 같다."
-결과를 어떻게 예상하나.
"이세돌이 아직은 실력 차이가 있다면서 자기가 이길 것이라고 했다. 정말 놀라웠다. 기보를 보니까 영화 속에서나 등장했던 가상현실을 현실화시키고 있었다.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알파고가 지금 상당한 수준에 와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컴퓨터가 다 하고 인간이 단순노동자로 전락하게 되는' 그런 세상이 올까 싶었는데 그럴 가능성이 커진 것 같다."

"여러가지가 있다. 좋아하는 것에 깊이 빠져드는 성격이다. 개인적으로는 원없이 해본 게 복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는 당구에 취미가 있었다. 젓가락을 가지고 연습했고, 잠잘 때도 머릿속에 당구알만 왔다갔다 했다. 통기타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는데, 음악도 많이 좋아했다. 어떤 한 분야에서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의 강의는 무엇이 되었든간에 재밌다. 그래서 고수들의 강의를 듣고 보는 것을 좋아한다. 또 무협지에 빠져서 쌓아놓고 보기도 했다."
-바둑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응씨배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이다. 조치훈(60) 9단과의 준결승전은 혈투였다. 당시 잠도 못 자고 정말 힘들었다. 마지막에 오다케 히데오(74)까지 꺾고 기적 같은 우승을 해서 기뻤다."
-인생이 한 번 뿐이고, 어떤 선택을 하면 돌이킬 수 없기도 하다. 다시 한 번 선택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그 때도 바둑을 택하겠는가.
"바둑은 많이 해봤으니 다시 태어나면 다른 걸 해봐야겠다. (웃음) 바둑계에서 운이 좋았다. 세계대회 우승도 해봤고 꿈을 이뤘기 때문에 바둑은 나한테 너무 고마운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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