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양심선언 軍수사관의 고통…"5월은 인고의 시간"
'505 보안부대' 수사관 허장환 인터뷰
1988년 "전두환 광주 왔다" 양심선언
작년 美정보요원 김용장과 재차 증언
"매년 5월이면 넋이 나가는 사람된다"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505보안부대 수사관 활동했던 허장환씨가 지난해 5월14일 오후 광주 서구 5·18 기념재단 대동홀에서 계엄군의 만행을 증언하고 있다. 2019.05.14. [email protected]
허씨는 1988년 양심선언을 통해 당시 대통령이던 전두환이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방문했다고 증언한 인물이다. 양심선언 후 갖은 회유와 협박에 시달리며 몸을 숨기고 살다가 지난해 미국 정보요원 출신 김용장씨와 함께 다시 한 번 전두환의 사살명령을 증언하기도 했다.
◇"홍남순 변호사와의 짧은 대화,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505보안부대 수사관(전남북 비상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국보위 특수부 부장)으로 "입만 다물고 있으면 청와대 간다"는 승진길을 걷던 허씨의 마음에 균열이 생긴 것은 고(故) 홍남순(1912~2006) 변호사와의 짧은 대화였다. 홍 변호사는 민주화운동 1세대로 평생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인물이다.
허씨에 따르면 그 때 보안부대는 이른바 '수괴'를 정하기 위한 작업에 한창이었다. 홍 변호사는 당시 김성용 신부를 대신해 수괴로 지목됐다.
"서울의 총수괴를 김대중으로 정하고, 광주 현지 수괴를 정해야됐지. 김 신부님은 검거가 안 된 사람이었어. 검거도 안 된 사람을 수괴라고 하면 난리가 날 거 아냐. 주먹구구식으로 홍 변호사님을 수괴로 정하게 된거야. 홍 변호사가 사무장이랑 아들을 시켜 동교동에서 자금을 받아서 사건을 꾸몄다고."
이같은 시나리오를 짜서 작성한 진술서와 함께 홍 변호사를 검찰에 송치했는데, 곧 홍 변호사의 신병은 재차 보안부대로 인계됐다. 당시 담당 검사가 이 내용을 보고 "도저히 기소를 못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허씨는 돌아온 홍 변호사 설득에 나서게 됐다. 그는 홍 변호사와의 만남을 "내 인생을 바꾼 순간"으로 기억했다.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몰골을 보면서 잠깐 대화를 했는데, 그 짧은 대화에서도 홍 변호사의 인생 철학과 이념, 사상이 보였어. 번뇌하게 됐지. 아, 내가 잘못살고 있구나. 잠을 자면서도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더라고."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505보안부대 수사관(전남북 비상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국보위 특수부 부장)으로 활동했던 허장환씨가 지난해 5월15일 오후 광주 서구 국군통합병원 옛터에서 5·18 희생자 시신이 소각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병원 보일러실 소각장을 가리키고 있다. 2019.05.15. [email protected]
진압 작전에 속속 반기를 드러내던 그는 5·18 민주화운동 진압 직후 출근길에 보안부대 지하실로 끌려가게 된다. 허씨는 "나라 전체가 숨죽이고 있던 때 였다"고 했다. 일주일 간 고문을 당한 그는 금품 수뢰를 사유로 결국 강제 전역을 당한다.
◇아들의 질문…1988년 양심선언, 2번의 기자회견
1988년 이른바 '광주청문회'가 열리기 전의 일이다. 허씨는 전두환을 비롯한 9명으로 묶여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고발을 당했다. 이 사건으로 뿌려진 호외를 등교길에 본 허씨의 아들이 할 말이 있다며 그와 함께 인근 학교 교정을 걸었다.
"아들이 나한테 그 호외를 내보이면서 물었어. 역사적인 경위가 어떻게 되느냐고. 아버지가 지금 당장 답을 안 하셔도 좋으니,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해서 나한테 알려달라고."
보안사에서 소개해 준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앞서 강제전역 이후 전북 진안에서 숨어 지내던 그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써 둔 원고가 중앙정보부에 유출돼 또 한번 고문길을 걸었다. 영장도 없이 밤중에 진안에서 서울까지 끌려가 19일간 전기고문까지 당했다.
"나를 회유한다고 어느 자리에 취직을 시켜줬는데, 밀가루에 수제비만 먹고 살다가 취직해서 살고 있자니 그 자리를 버리기가 아깝더라고. 내 인생이 또 한 번 끝나게 생겼는데. 고민을 많이 하다가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정의롭게 사실을 밝혀야겠다고 생각했지."
허씨는 1988년 12월 평민당사에서 양심선언을 통해 계엄군의 만행을 증언했다. 보안사 요원들이 평민당사를 에워싼 것은 약 40여분 만이다. 허씨는 "우리집 뿐 아니라 처가집까지 전부 수색하고 잡으려 들었다"며 "김해를 거쳐 일본으로 몸을 피했다"고 했다.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505보안부대 수사관(전남북 비상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국보위 특수부 부장)으로 활동했던 허장환씨가 지난해 5월15일 오전 505보안부대 옛터에서 계엄군의 만행을 증언했다.계엄군이 민주인사와 시민을 잔혹하게 고문한 505보안부대 지하실 모습. 2019.05.15. [email protected]
지난해 미 육군 군사정보관을 지낸 김용장씨와 함께 재차 증언에 나선 것도 이같은 이유다. 허씨는 지난해 5월 김씨와 함께 한 기자회견에서 전두환이 정권찬탈용으로 광주진압을 기획해 학살을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또 1980년 5월21일 광주를 찾은 전두환이 사살을 명령했다고도 했다.
"내 말을 입증해 달라, 당신이 가진 내용을 증언해 달라. 내 말과 당신의 말로 교차 사실확인을 하자고. 그런데 이젠 김용장이 가짜라고 하더라. 사건 자체를 우습게 희석해 버리고. 사람들은 사실 5·18의 진실이 밝혀지길 바라지 않는 것 같아."
◇밝혀지지 않는 진실…여전한 트라우마
일본으로 몸을 피했던 허씨가 강원도 화천의 산골에 정착한지도 수십년째다. 그해 겨울, 귀신의 울음소리를 내는 바람이 불었다. 이사온 첫날 밤 초가집에 불이 나 비닐 천막을 치고 석유 난로 하나로 겨울을 났다. 그때를 기억하면 그냥 다 잊고 싶은 마음 뿐이다.
"5월만 되면 괜히 일이 손에 안 잡혀. 누구한테 쫓기는 것 같고. 꽃이 피고 식물이 자라는 것,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씨앗은 인고의 세월을 견딘다. 내 마음도 그래."
그럼에도 허씨는 개인적으로 5월의 광주를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역사는 기록하는 사람의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지금까지의 항쟁사는 구전의 역사를 짜깁기 해 둔 것에 불과해. 다시 바른 역사를 올려 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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